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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되어야 할, 아름다운 당신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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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4-27 12:40 조회7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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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꿈을 좇아 살아가야 하는가? 인간이 자신을 ‘인간’이라 부르던 때부터, 어쩌면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스스로 던졌을 질문입니다. 꿈이란 가닿을 수 없는 아득한 것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지켜내려는 노력이 향하는 존재, 혹은 그것을 간절한 바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만물이 태동하던 시절, 그러한 의미에서 모든 생명의 공통된 꿈이었을 생명의 부지를, 누군가는 아직도 염원해야만 하는 사회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갈등은 대부분 이념과 종교 간의 대결 양상입니다. 그 어떤 이념도, 그 어떤 종교도 태초에 ‘삶’을 위한 것이었음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듯합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것보다 더 불길한 사실은 미국이 점령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읽을 때마다 저는 우리가 어떤 외부 집단에 점령당한 국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은 폭력배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대통령 한 사람의 손아귀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간의 생명과 자유에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그들은 땅과 물과 공기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우리 아이들과 손자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지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하워드 진, <가디언>과의 인터뷰 중

얼마 전, 시리아는 사상 최후, 그리고 최악으로 남아야만 할 화학무기 공격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한 남성이 차갑게 식어버린 자식들을 품에 안고 오열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두 아가, 부디 고통스러운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나줘.” 매일 누군가는 부르짖기만 하다 마침내 제 한 몸과 함께 산화했을 기적, ‘생명’의 준엄함을 생각합니다. 이것의 무게에 비할 수 없이, 그래서 더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퇴색된 이데올로기들이 겹쳐 떠오릅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 종식을 위한 전쟁’을 시리아에 선포했고, 중국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핵 억제를 위해 두 국가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것을 보며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세계의 평화와 전쟁을 오가는 중대한 사안이 오직 저 두 사람 손에 달려있는지를 말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 ‘인간’이라 했습니다. ‘간間’의 의미가 사라져버린 것은 아닌지, 어쩌면 아직도 도래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이대로 끝끝내 찾아오지 못하지는 않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실제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감수성의 부재로부터 시작됩니다. 타인을 대변하고 함께 한다는 것, 그것 이전에는 필히 그들이 어떤 아픔에 맞서고 있는지에 대한 상상과 공감이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근원은 모두 ‘개인’으로부터 초래됨을 명시하는 사회입니다. 반복되는 ‘나’만의 잘못에 우리는 무기력해지고, 쉽게 좌절하게 됩니다. 그렇게 올곧은 진실, 부정의 한 현실을 직시하려는 의지도 함께 무뎌집니다.
한편, 세상 어딘가에는 안정적인 삶을 거부하고 늘 고통 속의 이들과 함께하려던 이가 있었습니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마치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처럼 여겨지는 게 슬프네요. 그것은 용기가 아닙니다. (···) 저는 전쟁을 경험했고 친구들의 죽음을 겪었습니다. ‘직장에서 쫓겨나려고 그래? 감봉당할 각오가 된 거야? 교수직에서 쫓겨나면 어쩌려고 그래?’ 이 세상 곳곳에서 사람들이 무릅쓰는 위험과 비교하면 이런 말들은 우스울 따름입니다.”

하워드 진은 미국의 대다수 민중이 가는 길을 일평생 따라 걷고자 했던 새로운 시각의 역사학자였으며, 동시의 자신의 신념을 몸소 실천하는 운동가였습니다. 어떤 시대에도 기존의 것에 도전하는 신념은 몽매한 활동으로 폄하되게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상가로 남기를 택했던 이유는, 당신의 실추를 견디는 일이 어떤 이들이 처해 있을 아픔보다 훨씬 더 가볍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온갖 어둠을 뚫고 끝까지 지켜내려 했던 것은 더 많은 이들의 존엄한 삶의 회복이었습니다.
어떤 꿈을 좇아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결국 또다시 이 질문에 당도했습니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오늘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다고 생각하나요? 그런 우리 시대는 어떤 가치가 실현되기를 기다려야 할까요? 또 어떻게 그 가치를 모두에게 보장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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