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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폐허 속 피어난 희망을 응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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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3-02-17 09:58 조회893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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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솔닛은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를 통해 태풍, 허리케인, 지진, 쓰나미와 같은 천재지변 혹은 9.11 테러, 원폭피해와 같은 대규모 재앙의 순간을 기록하고 탐구합니다. 가진 것 모두를 잃어버리게 되는 참담한 순간, 절망에 빠져 모든 삶이 피폐해질 것이라 예상되는 폐허 속에서 왜 더 찬란히 빛나는 희망이 발견되고, 일상에서 불가능했던 도덕적인 윤리의식, 질서, 협동, 사랑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 이 물음은 결국 하나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믿음이 행동을 결정한다” 기존 질서를 뒤집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재난은 많은 고통과 슬픔, 피해를 수반하기는 하지만 재난은 이전에 존재했던 잘못되거나 오래된 질서를 멈추게 하고, 폐허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의미 있는 역할을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는 평등한 상황이기에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삶의 형태로서 ‘상호부조적 공동체’가 형성된다고 레베카 솔닛은 오랜 관찰 끝에 말합니다. 이를 재난 유토피아(더 유연하고 즉흥적이고, 평등적이고 위계적이지 않으며, 모든 구성원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기여할 여지가 많아지고 소속감이 커지는 사회)라 부르는 그녀는 재난으로 말미암은 폐허는 “야만성보다 아름다움을 더 많이 감추고” 있는 일상생활을 벗어나게 하는 하나의 ‘문’이라고 말합니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폐허의 참혹함이 미래에 축적해야 할 욕심을 버리게 하고, 내가 아닌 누군가가 할 수 없을 만큼 모두의 삶이 피폐해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히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이 된다는 것을 책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왜 참담한 폐허 속에서 이와 같은 희망이 발견되는 것일까요? 일상보다 더 힘들고 참혹한 현장에서, 왜 사람들은 더 선한 선택들을 해내는 것일까요?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위기의 순간이 사라지고 난 뒤, 폐허에서 피어났던 꽃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재난의 상황 이전 혹은 이후의 조용한 시기에 어떻게 유토피아를 실현할 수 있을까요? 재난은 우리가 일상에서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운 가치를 깨어날 수 있도록 하지만, 우리가 "계속 깨어 있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오직 능숙한 노력 뿐”입니다. 과연 폐허의 어떤 속성이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을 깨어나게 한 것일까요? 혹은 폐허 속에서 피어난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를 일상에서 지속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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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제님의 댓글

장인제 작성일

저는 폐허의 긴박함과 인간의 생존력이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을 깨워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는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낄수 없기 때문에 그냥 원래 살던대로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을 하다가 재앙이 발생한다면 그 폐허 속에서 느끼는 긴박함과 같은 감정때문에 생존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생존하기 위해 서로서로가 뭉칩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그러면서 서로서로를 도우므로 그런 곳에서 아름다운 본성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또 저는 폐허 속에서 나타난 인간의 본성이 두 개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을 나쁘게 이용하는 나태한 본성과 이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를 돕는 아름다운 본성으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재난이 일어나면 많은 심각한 범죄도 발생하지만 서로서로가 돕는 모습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런 재난을 그냥 평범한 재앙으로만 여기지 말고 이런 재난을 겪으면서 느꼈던 참담함과 그로 인해 발생한 공동체의식과 모르는 사람과도 나눌 수 있는 따듯한 말과 정들을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하는것이 가장 좋은 방법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다빈님의 댓글

이다빈 작성일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본질적인 가치에 신경 쓸 겨를이 없습니다. 비본질적인 가치가 본질적인 것처럼 여겨지면서 아예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분별능력도 사려져 있기도 하며, '현재 나에게 닥친 일'에 몰두하다보니 본질적인 가치에 신경 쓸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재난이 일어나는 순간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본질적인 가치에 대해 깨달음을 얻습니다. 본래의 일상이 파괴되고 삶과 죽음의 문제가 바로 나의 눈앞에 벌어지기 때문이지요. 저는 이런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깨달음'이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을 깨어나게 하는 폐허의 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에서는 다들 알지 못했던 중요한 가치가 사람들로 하여금 배려하게 하고, 공동체 의식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깨달음을 도시가 폐허가 된 이후에 느낀다면 너무나도 잔인하지 않을까요? 중요한 것은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 사람들이 죽는 것을 내 눈으로 보기 전에, 폐허의 이러한 속성들을 일상으로 들고 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며 살아갈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때는 시험 기간이었는데, 원래 시험이 며칠 남지 않으면 그렇듯 그때도 다들 예민해져있었습니다. 저 또한 시험이라는 중압감 때문에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고, 표정도 좋지 않았지요. 그런데 교과실로 이동하던 중 마주친 다른 반 한 친구가 저에게 정말 환한 얼굴로, ‘안녕, 다빈아?’ 하고 손을 흔들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친하지 않은 친구였고 복도에서 얼굴 몇 번 마주쳤던 게 다였지만 그 친구가 정말 환하게 웃는 순간 제 마음속에 있던 짜증, 분노, 예민함과 같은 감정들이 눈 녹듯 사라지고 따뜻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깨어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덩달아 저도, ‘안녕?’ 하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할 수 있었지요. 아주 일상적이고, 다들 한번 즘은 경험해보았을 일이지만 저는 이렇게 먼저 환한 인사를 건네는 사소한 행동 하나로 폐허를 꽃밭으로 만들 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 환하게 인사를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잊어버린 진짜 ‘폐허’ 속에서 환하게 인사를 건넨다는 것은, 깨어있는 것이고,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별해내며, 자신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행동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폐허의 속성을 일상 속에서 재현시키기 위해서는 커다란 허리케인이나 지진 같은 극적인 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하고 단정지어버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좋은 개인이 되는 것만으로 폐허를 꽃밭으로 만들 수 있는 작은 꽃씨를 하나 날려 보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꽃씨가 꽃을 틔우고 또 더 많은 꽃씨가 또 날아가게 되는 것처럼, 사람들한테 나의 기분 좋은 힘도 계속 퍼져나가서 시험기간의 삭막한 학교도 좀 더 밝게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배희정님의 댓글

배희정 작성일

재난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더 행복해 진다는 것은 어쩐지 역설적이게 들립니다. 그럼에도 폐허 속에서 사람들이 재난이 아닐 때 보다 더 자발적이고 윤리적이며 그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우리의 평상시 삶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일 것이고, 저는 그것이 사회적 유대감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어딘가에 속해있고 그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중 하나가 재난 이라는 것이죠. 이때 재난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행복감이 지속되게 하려면, 우리가 꾸준히 혼자가 아니라는, 모두 하나로 연결된 공동체라는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작게, 그리고 차근차근 규모를 키워나간다면 맨 처음 우리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학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학교도 하나의 작은 사회이듯이 일단 그 속에서 학생이 학교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학생에 의한 여러 제도들도 만들고, 학생과 선생님이 화합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 그것이 점점 큰 범위로 확장되어 간다면, 언젠가는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 모두 서로 마주쳤을 때 웃으며 인사할 수 있게 되겠죠.

최수빈님의 댓글

최수빈 작성일

  혹시 영화 2012를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지역은 다르지만 두 곳에서는 인류에게 끔찍한 대참사가 일어난 상황을 그린 영화였었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 영화는 단순한 재난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쳐온 재난을 어떻게 헤쳐나갔었는지 기억이 나셨는지요. 2012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거대한 방주가 제작되고, 탑승자 우선 예약의 특권을 가진 자들은 부유층, 그리고 명화들. 그 사이에는 시민들이 낄 자리가 전혀 없었나 봅니다. 엄청난 금액을 지불해야만 탑승할 수 있는 범주는 돈이 많은 자들과 값어치가 많이 나가는 것들 밖에 없었습니다. 언제부터 생명의 가치가, 사물의 가치보다 덜떨어진 거였을까요. 하지만 막상 그런 식으로, 돈-을 많이 가진 자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비열한 방식을 사용한다면 반면에 몇 안되지만 사람의 생명을 더욱 가치롭게 여기는 선한 사람들.
그들은 어찌보면 자신의 목숨을 이어붙이기에 급급하지 않고, 감정에 지나치게 치우쳐서 냉정을 쉽게 잃는, 사회에서는 매우 불리한 타입이죠. 하지만 그들에 마음속에는 따뜻함만이 쌓여있을것입니다. 자신이 느끼는 동정과 연민, 그리고 동질감이라는 감정을 느끼며 그들은 남을 사랑으로 돕습니다. 자신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폭력적으로 변하는 이기적인 인간들 사이에서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그들은, 자신이 베풀어 주어도 정작 그 보답은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보답을 해주지 않을 비열한 사람들은 도우며 생존해 갑니다. 만약 우리들의 마음에 생존이라는 무한한 욕구보다 양심이 더 앞선다면, 우리의 사회는 변화할 수 있을까요?

김은비님의 댓글

김은비 작성일

인간은 원래 함께하는 동물이었습니다. 먼 옛날, 우리가 함께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했을 시절로 돌아가 봅시다. 어떤 도구도 사용할 수 없었고, 연약한 피부로 둘러싸여있던 인간들은 무시무시한 맹수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었습니다. 함께하지 않으면 어느것도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 사람들은 무리지어 동굴에서, 움집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무리 속에서 남자가 여자를 만나고, 또 생식활동이 이루어지면서 개체수가 늘어나게 되었죠. 그렇게 오랜시간동안 함께 살아오던 사람들은, 어느날 생겨냔 철저한 개인주의로 인해서 서로의 얼굴도 모르고 살아가게 됩니다. 범죄자인줄 알고 경계했던 아저씨가 사실은 이웃이었다는 농담들은 우리가 얼마나 나홀로 살아왔는지 느끼게 해주곤 합니다. 스마트폰이 생겨난 이후부터는, 대중교통을 타던 길거리를 걸어가든 귀에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푹 숙이고선 손 안의 작은 세상에 빠져사는 사람들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변해버린 것일까요?
재앙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사회에서는 이런 문명에 길들어져있던 우리들이 늘 의지했던것들을 사용할 수 없게 되버립니다. 사람들은 잠시동안이지만 늘 함께했던 그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게됩니다. 인간은 뛰어난 사회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 모르고살았던 사람들이라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건 '사람' 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의 너무나 아름다운 능력인 '공존'을 잠시나마 되찾게됩니다. 비록 폐허가 복구되면 다시 나홀로 살아갈지라도, 그 잠깐동안 우리는 '사람'과 살아가며,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웃음짓고 눈물짓습니다. 인터넷속 작은 유머가 '피식' 하는 웃음을 준다면, '사람'과 마주보고 하는 유머는 같은 내용이라도 더 재미있습니다. 웃기는 이야기를 하는 그 사람의 얼굴만 봐도 깔깔깔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함께 살아가는 공존. 우리는 다시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인가요? 큰 의미의 공존을 이야기하기 전에, 지금 손에 쥐고있는, 귀에 꼽고있는 전자제품부터 한번 놓아보시는게 어떨까요? 메신저 속의 사람과 이야기하기 보다는, 지금 옆에있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해보세요. 함께살던 아름다운 그 시절은 반드시 돌아올 수 있을것입니다

김동빈님의 댓글

김동빈 작성일

폐허라는 단어를 보고, 초등학생이었지만 신선한 충격을 느꼈던 2010년의 상황이 기억났습니다. 그때 썼던 일기도 찾아보고, 그 당시의 뉴스도 찾아보며 이 질문의 예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2010년 10월 14일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8월 5일에 칠레에 있는 산호세 광산이 붕괴되면서 매몰되었던 광부 33명이 69일이 지난 10월 14일에 구조되는 일이었습니다. 매몰된지 17일만에 발견하여서 70일쯤 되는 날만에 구출한 것이었습니다. 광부들은 매몰된 상황에서도 그들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고 생활해나갔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음식을 나눠먹으며, 그들만의 생존 규칙을 세워 생존했습니다. 이 일에서 우리는 사람의 살아남으려는 끈기,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의 본성 등을 느낄 수 있습니다. 힘든 여건이지만 서로서로 의지하며 견뎌냈고, 결국은 칠레라는 한 국가의 영웅으로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인상깊게 보았었던 뉴스장면은 칠레의 대통령이 달려가 껴안고 감격하는 모습과 구조 순간을 축제로 만들어내며 같이 환호하는 국민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무한 경쟁 사회임에도 불구한 현실 속에서 폐허는 사람을 하나로 뭉치는 힘, 희망의 힘, 의지의 힘, 서로를 먼저 생각하게 하는 힘 등의 무궁무진한 힘을 가지지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알게된 사실 중 하나인데, 가장 마지막으로 구출된 사람에게 동료 광부들이 건넸던 말이 "불은 끄고 나왔니?" 였다고 합니다. 폐허는 사람들의 긍정과 낙천적인 힘도 끌어낼수 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