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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물의 호수처럼, 가슴 설레는 근사한 표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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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4-05 20:26 조회2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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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디고 서원 뒷마당의 큰 나무 두 그루를 옮겨 심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10년 동안 한자리에서 살아온 나무이기에 신중을 기해 옮겨 심었습니다. 한동안 꽃도 피우고 잘 지내나 싶었는데, 둘 중 큰 나무가 시름시름 앓는 것 같았습니다. 나무는 점점 더 시들어갔고, 그 자리에 새 나무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화훼농장의 사장님께 연락했습니다. 휴대전화로 나무의 사진을 보내고서 이 나무가 죽었다고 하던데, 어떻게 보이는지 여쭸습니다. 아직 푸른 잎이 많은 걸 보니 죽지는 않은 것 같고, 옮겨 심으면서 몸살이 난 것 같다는 답장이 왔습니다. 겨울에는 나무가 면역력이 떨어지고 회복력도 낮으니, 조금 천천히 지켜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다 죽으면 어떻게 하죠, 라고 한 번 더 물었더니 버럭 화를 내셨습니다. "아직 살아있는 잎들이 이렇게 많은데 죽긴 왜 죽어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만 고민해야지 죽을 걸 왜 걱정해!" 순간 소설 '빨강머리 앤'이 떠올랐습니다. 앤은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붙입니다. 그것도 '근사한' 표현으로 말입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를 그저 '예쁘다'로 표현하면 안 되고, '훌륭하고 아름다운, 빛나는 물의 호수'라고 불러야 합니다. 제 것 같이 적합한 이름을 찾아주지 않으면 사람이건 사물이건 기분이 상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그렇게 이름 불러야만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아주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신중하게 그것의 입장에서 상상하면 그제야 보이는 제 모습이 있습니다. 앤이 하는 일은 단순히 예쁘고 좋은 말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상상을 통해 가슴 설레는 적합한 이름을 찾는 것입니다. '근사하다'는 말은 '그럴듯하다'는 뜻 이전에 '거의 같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 사물, 현상, 느낌을 근사(近似)한 말로 표현해 보는 것, 이는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혹은 공감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아닐까요. 우리는 그런 말을 하는 것에 서툽니다. 그냥 좋고, 예쁘고, 슬프고, 화가 난다고 표현합니다. '그냥'이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마냥 좋은 것이 아니라, 좋긴 좋은데 어떻게 좋은지를 모르는 것이지요. 내가 느끼는 감정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데 다른 존재를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근사한 표현을 해봅시다. 오늘 왠지 모르게 들뜨는 기분이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 기분을 묘사해 보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멋있어 보이는 친구가 어떻게 멋있는지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고 사소한 일상을 섬세하고 정직하게 표현하다 보면 더 나아간 생각도 가능할 것입니다. 지난 며칠의 극심한 한파 속에서 고통 받았을 누군가의 심정이 헤아려지고, 아직 자식을 물속에서 건져내지 못한 부모의 마음도 조금이나마 이해되지 않을까요. 뒷마당의 나무를 도와줄 방법이 없겠느냐고 화훼농장 사장님께 다시 여쭸습니다. 사장님은 진지하면서도 단호하게 "매일 나무에게 가서 '힘내. 살 수 있어, 꼭 살아야 해!'라고 진심으로 말해주라"고 하셨습니다. 몸살을 앓는 나무는 열심히 이 겨울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런 나무에게 필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을 용기와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 그 옆을 지켜주며 회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를 ‘훌륭하고 아름다운, 빛나는 물의 호수’라고 부르는 앤처럼, 우리도 우리를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 생명들, 물건들에 새로운 ‘근사한’ 표현을 붙여봅시다. 찬바람이 매섭게 스치는 요즘, 매일 지나가는 길 옆 아직 떨어지지 못해 아찔하게 매달려있는 이파리 하나에도 단지, ‘겨울나무 잎’이라는 이름대신 더 근사한 표현을 붙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지친 학교 일상 속 옆 창문으로 추운 날씨에도 간간히 들어오는 작은 햇빛에도, 혹은 지쳐있다가도, 함께 있으면 웃음이 나는 옆 친구에게도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어떨까요. 가장 근사한, 가장 정확한, 그래서 들으면 가슴이 설레는 표현들이요! 여러분들의 가슴 설레는 표현들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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