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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함이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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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30 17:59 조회256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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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고 서원에서는 2012년 인디고 유스 북페어의 주제로

"공동선을 향하여"를 외쳤습니다.

보편의 선함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그를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도모하는 기획이었지요.

 

그러나 우리 삶은 '선함'과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교육 현장에서 선하고 윤리적인 선택이

어떤 세계적 변화를 이끌어오는지에 대해 가르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 점수에 급급하며 이기적인 인간이 되도록 이 시스템은 정교하게 짜여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선한 선택에는 반드시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언론에서 보여주는 현실은 무척 단편적이고 편협합니다.

연예계에서 열애설이나 추문이 연일 보도되는 반면

시리아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나 지진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도되지 않는 것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선한 존재로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지요?

 

그런데 그 전에, '선하다'라는 것의 정의에 대해 생각합니다.

선함이란 단순히 착한 것일까요? 착하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요?

선함의 기준은 어디서 찾을 수 있고, 그를 판단할 근거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요?

 

최근 골프를 치러 가던 사람들이 타고가던 택시에서 기사가 심정지를 일으켰지만

본인들의 항공시간을 맞추려 그 기사를 버려두고 떠나 기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택시 기사를 고의로 죽인 것은 아니지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외면한 것은 큰 죄악입니다.

선한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은 이처럼 한 생명을 저버릴 수도 있는 매우 중대한 사안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선함'은 무엇인가요?

그 선함이 지켜지려면 이 사회에 무엇이 필요한가요?

댓글목록

윤나라님의 댓글

윤나라 작성일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방법을,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수능을 수업하는 교실에서 '선'이 얼마나 무의미한 기호인지..

잘은 모르지만 '선'이 '혼자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사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연민'을 이야기하면 지하철에서 500원짜리 동전 던져주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타인을 가슴으로 이해하며 공감하는 것을 연민이라 한다고,
그 감정은 참으로 고귀한 인간만의 감정이라고 가르칠 수 있는 수업을 하고,
그것을 배운 아이들이 그 감정을 어떻게 실천해야하는지를 물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렇게 살아도 바보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할 듯하네요.
'착한' 우리 아이들이 '착하게'살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최준혁님의 댓글

최준혁 작성일

'선'은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입니다. 이런 본성은 '욕구'에서 기인 하지요. 인간이 지닌 수 많은 욕구가 어떤 행동으로 나타 나느냐에 따라 '선' 혹은 '악'으로 평가 받습니다. 선함은 그 욕구를 한차원 높은 단계의 행동을 할 때 나타나는 결과라고 생각 합니다. 욕구를 단순히 '욕구' 그 자체를 해소하는 행동으로 매듭지어 진다면 결국 우리는 결과에만 도취되고 맙니다. 타인은 안중에 없어지고 오로지 나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겠지요. 잘못된 과정은 사회와 타인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칩니다. 이는 '악' 입니다.
하지만, '선'은 다릅니다.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보다 높은 단계의 행동 양식에 통제를 받는다면 결과는 선으로 나타 압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도덕' 입니다. 도덕이 욕구를 통제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생각 합니다. 예를들어 나의 욕구 해소 행위가 과연 타인이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따졌을 때 그 방법이 옳지 않다면 욕구를 억제 하거나 혹은 다른 방법을 생각 할 것입니다. 결국 '선'과 '악'은 높은 윤리의식과 비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은 무엇으로 지켜 질까요? 고도화된 경제 사회에서 자칫 인간의 본질을 잊고 산다면 '선'이 자리 할 여지는 사라집니다. 물질은 인간 욕구를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타인과 비교되는 경쟁 사회는 물질의 지배를 받고 인간 욕구를 자극 합니다. 과정 보다는 결과만 중요시되는 사회는 결국 '악'으로 넘쳐나게 됩니다. '선'을 지켜내려면 수학 공식. 영어 단어를 외우기 보다 '인성'에 기초한 교육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물론 사라져 버린 '가정교육'도 되살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