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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무슨 힘든 일이라도 있습니까?' <국제신문 2017년 7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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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7-15 20:47 조회1,5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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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무슨 힘든 일이라도 있습니까?' /이윤영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7-09 19:16:17
  •  |  본지 30면

   

 

비 오는 날 저녁이었다. 학원 마치는 시간이 다가오자 늘 그래왔듯 인디고 서원 앞 학원가 좁은 골목에는 학원 봉고차들이 들어섰다. 양쪽으로 주차한 승합차 탓에 더 좁아진 골목은 오가는 차들까지 얽히고설켜 엉망이 되었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은 사라지고 사람 한 명 지나가기 어려워진 이 길에서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다행인 상황. 누군가는 빨리 비키라고 소리치고, 또 누군가는 경적만 울려대 온 거리가 시끄러웠다. 하지만 정작 문제를 만들었고 또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은 나와보지도 않으니,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위험만 더해갈 뿐이었다. 결국 참다못한 인디고 서원 직원들이 나서서 차량이 소속된 학원들에 항의하고, 구청에는 주정차 단속을 요청하고, 경찰에는 교통지도를 요구했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학원 차량 주정차 문제의 위험성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며칠 전에도 버스 기사의 무심한 실수가 11살 아이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청주에서 일어났다. 인디고 서원 앞 골목은 이런 위험에 방치된 채 10년이 흘렀다. 해당 건물 주차장은 학원 교사들 차량으로 가득 채워놓고서 골목에서 벌어지는 주정차 문제는 "운전기사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라고 나 몰라라 하는 학원들에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담당 구청의 태도다. 구청의 그 누구도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시정조치와 결과보고를 직접 해달라고 윽박지르듯 요구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구청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다시 전화해보니 무슨 일인지 들은 바가 없으니 다시 설명하라고 한다. 책임회피, 직무유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번엔 구청으로 달려갔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 민원이 10년을 허공에서 떠도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구청의 직원들은 "절차가 있다" "좀 더 기다려라" "우리 입장을 들어라"라고 얘기할 뿐이었다.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명이 걸린 '위험'의 문제라고 얘기하는 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하니, 목소리 높여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만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구청장을 찾아갔지만, 더하면 더했지 다르지 않았다. "당신들은 내게 도움을 받으러 왔어요, 아니면 나를 도와주러 왔어요?"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의 태도가 왜 이렇냐는 구청장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목소리가 이토록 무심하고 소홀한 태도에 묵살당하고 외면당했을지 생각하니 참담했다. 도대체 우리의 공적 책임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불행한 인간에 대해서 깊은 주의를 가지고, '무슨 힘든 일이라도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는 힘을 가졌는가에 인간다움의 자격이 달려 있다."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이유는 인간다움의 조건을 타인의 고통에 외면하지 않는 태도로 정의했다.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더라도, 고통받고 울부짖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한마디의 말을 건네는 것. 우리의 공공 기관은 왜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개인의 무관심과 이기심도 문제일 테지만, 공공의 영역이 그런 얼굴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 재앙이다.

학원 승합차로 인한 아이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문제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생존을 위해 매일 싸워야만 하는 이들이 겪는 문제에 비하면 작은 문제다. 그러나 이 작은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해내지 못하고, 해결할 의지조차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불행한 사람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회는 위험을 방치하는 사회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이고, 권리의 문제다.

여전히 이 골목은 구청의 단속 차량을 피해 학원 차들이 잠시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비열한 거리다. 이곳에서 단 한 명이라도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다. 그 역할을 기꺼이 해내는 자가 진정한 의미의 공인이고, 주인이다.

이 문제가 해당 도로를 수없이 지나가는 시민들과 아이들 안전이 걸린 중대한 문제라는 인식을 우리가 만났던 구청장과 담당자들이 가질 수 있게 하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그러한 인간의 얼굴을 우리는 언제쯤 가질 수 있게 될까.

인디고잉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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