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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_스토리펀딩] 정의로운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 2화 "결핍을 넘어 민주시민 교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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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4-18 12:11 조회2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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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funding 2화

두려움과 결핍의 교육을 넘어 민주시민 교육으로
- 청소년 인문 토론의 장, 정세청세 

유진재(정세청세 청소년 교육팀장)

안녕하세요. 저는 청소년 인문 토론의 장,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정세청세)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물여덟 살 청년 유진재입니다. 저는 2007년 정세청세가 처음 만들어진 순간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왔습니다. 정세청세에서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과 세상의 중요한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함께 토론합니다. 그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꿈과 사랑, 자유와 정의와 같은 우리 내면 깊숙이 있는 가치를 느끼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런 청소년들의 열렬하고 진실한 토론의 장을 여는 일에 지난 10년간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겐 참 행운이었고, 특권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행복했던 것은 아닙니다. 매년 많은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청소년들의 얼굴에 드리운 우리 교육의 어두운 그림자가 점차 짙어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이 시행하고 있는 입시경쟁 교육과 주입식 교육이 어떻게 청소년들의 가능성을 잠식하고 있는지 보았습니다. 이 교육이 얼마나 시대에 뒤처지고 있는지도 실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부터 2014년 세월호 참사까지,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들의 근본적인 지점에 교육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교육을 바꾸지 않으면 또 다른 비극과 참사가 반복될 것입니다. 저는 이번 글에서 한국 교육이 만드는 근본적인 문제와 여기에 대응하는 청소년 인문 토론의 장, ‘정세청세’의 의미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두려움과 결핍을 만드는 교육 제도
한국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는 학생들이 스스로 내면에 끝없이 두려움을 심고, 결핍을 느끼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교육의 본령은 한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좋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이 가진 고유한 잠재성을 잘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맞는 일을 하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충족하면서도, 다른 이들과 공존하는 공동체 일부분으로 살아갈 때 행복과 삶의 의미를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자신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과 제대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인간은 기쁨과 충만함을 느낍니다.
 반면에 인간은 외부의 상황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거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 행동을 수정하게 됩니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고쳐가는 것은 분명 중요한 사회적 능력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고, 자존감은 떨어지며, 항상 주변의 눈치를 살피거나 권위자의 말에 맹종하게 됩니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봅니다. 분명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재밌기도 했지만, 점점 입시에 다가가면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더 많이, 더 열심히 하기보단 부족한 것을 메우는 데 급급해지는 자신과 마주합니다. 수학이 부족하니까 수학 문제를 더 많이 풀고, 수학 학원에 다녀야지. 이번에 영어 성적이 떨어졌으니 영어에 시간을 많이 쏟고, 과외를 해야지. 끝없이 부족함이 생기고, 그것을 메워가지만 마치 밑 빠진 독처럼 부족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는 초조함과 공포로 이어집니다. 요즘은 대학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학점 관리에 각종 스펙 관리에 내게 ‘부족한’ 것을 메우려는 강박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렇게 부족한 것에 대한 감각은 협박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사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영어학원을 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영어학원 상담 교사로부터 지금까지 뭐했냐며, 이렇다가 인생을 망친다고, 지금 당장에라도 영어 수업을 안 들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자격으로 한 아이의 인생을 재단하고 공포를 심어주었는지에 대해서 알 길이 없으나,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영어를 배우기에 생기는 즐거움과 영어를 통해서 커지는 행복과 자유, 가능성에 대해 말하기보단 어린 학생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협박을 했다는 사실은 큰 충격입니다. 고등학생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중학교 2학년 학생은 국어 시험이 끝나고 나면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1등부터 꼴찌까지 성적을 일일이 불러주며 시험 성적이 낮은 친구들에게는 면박을 준다고 했는데, 그런 경험에서 수치스러움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왜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으로 상처를 받아야 하고, 서로를 미워해야 하고, 경쟁해야 할까요. 
 한 고등학생은 자신의 영혼이 ‘땅콩 거북이’이처럼 될까 봐 무섭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땅콩 거북이란 어린 시절 바닷가에 쓰레기로 떠다니던 캔 홀더에 몸이 끼인 거북이가, 몸의 다른 부분은 자라는데 끼인 부분만 자라지 않아서 땅콩처럼 허리 부분이 홀쭉한 채로 자란 상태를 묘사한 것입니다. 바다 쓰레기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는 상징으로 회자가 되곤 합니다. 그런데 청소년 시절 두려움과 결핍의 경험이 마치 캔 홀더처럼 우리 영혼의 한 부분에도 흔적을 남기게 되는 것은 아닌지 청소년들은 걱정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기원을 찾아서
얼마 전 EBS 다큐멘터리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험 공화국’이 된 한국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였는데요. 이 다큐멘터리 4부에서는 ‘서울대 A⁺의 조건’에서는 서울대학교 이혜정 교수의 연구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 최고의 명문대인 서울대학교, 그 서울대에서도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는 이들의 비결이 과연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얼마나 창의적이고, 지혜로우며, 자신과 국가의 발전에 기여하는 이들일까요.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는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공포와 충격을 줍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이들의 공부 비결은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말한 것을 농담까지도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 적어 외우고, 그것도 모자라 수업 전체를 녹음하여 몇 번씩 들으며 암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시험에 나온 질문에 교수님의 생각보다 내 생각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 때 거기에 내 생각을 적겠느냐고요. 대부분 학생들은 손사래를 치며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자기 생각, 소신, 신념, 양심, 주관보다는 교수님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 적는다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실보단 윗사람 눈치 보기에 급급한 지금 사회 지도층이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가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선, 돈을 벌기 위해선, 똑똑하게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선 사회 정의와 진실을 덮는 한이 있더라도 권력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이 아닌지요.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처음부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점차 행동을 교정하게 된다는 보여주기 때문인데요. 처음에는 창의적이고 수업시간에 질문도 많이 하는 학생이었지만, 성적이 잘 나오지 않자 이 학생은 앞서 나온 비법들처럼 그저 수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는 학습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그리고 성적은 ‘폭풍상승’했고, ‘질문왕’은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회 지도층이, 그리고 그 지도층이 되려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따르기보단, 사회의 정의와 공공의 행복을 위해 힘쓰기보단, 윗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것에만 급급하다면 결국 사회는 근본에서부터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눈치 보는 것을, 자신의 신념보단 권위자의 말에 따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나요?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과 세월호 참사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로, 어른들의 말을 들어야만 하는 존재로 이해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교육 속에서 청소년들은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해본다든지, 우리 사회에서 책임감 있게 무언가를 기획하고 진행해볼 경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청소년인 너희는 부족하니 내가 하는 대로 따라오라 하는 식의 문화, 혹은 끝없이 인간 내부에서 불안과 공포와 결핍을 조장하는 교육 체계가 존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향하고 있는 것은 대체 어디입니까. 지금의 교육은 당장 시험 기계를 만드는 것은 유용할 수는 있으나, 인간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는 미래에 우리 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드는 일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교육 체계로 인한 피해는, 사실은 아무 책임도 없는 어린 미래 세대가 져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에 수백 명의 어린 학생이 죽어간 세월호 참사는 결코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닙니다. 어른들이, 기성세대가 만든 문제에 대한 책임을 돌이킬 수 없는 어린 생명의 목숨으로 져야 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근원에 교육 체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거나, 교육이 바뀌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인간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교육 체계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때 우리는 더욱 행복한 삶과 세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 교육이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참사가 더 은밀하고, 끔찍하게 반복될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두려움과 결핍의 근원에 경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경쟁 사회 속에서 살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더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들의 노력과 상관없이 그 개개인들의 삶의 바탕에 자리 잡은 우리 사회 구조는 경쟁하고 노력할수록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사회 구조는 감히 단언하여 말씀드리건대 ‘낡았습니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이던 시절, 산업화 단계에 있던 시절에 모두를 ‘표준화’ 시키고, 무조건 많이 외우게 했던 주입식 교육은 그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공장식 노동에 기초한 대량 생산에는 표준적인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시대적 요구와 맞아떨어진 것이죠. 한국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한 주요한 요인 중엔 산업화에 적합했고, 뛰어난 ‘인적 자원’이 바탕이 된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는 학교 교과서 중심의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끝없는 비극을 낳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학교에서조차 자유와 비판보단 수용과 주입을 가르치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속에서 권력에 복종하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기적인 인간은 끝없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비열하게도 가장 약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찾아옵니다. 물론 세상에 정의를 외치는 뛰어난 사람들이 없는바 아닙니다만, 우리 교육이 바로 그런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을 ‘존경’, ‘선망’하게 만드는지 어떻게든 남을 짓밟고 이기는 것을 ‘욕망’하게 만드는지 우리는 냉정하게 지켜봐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시험을 잘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공부, 삶을 위한 공부가 더 중요합니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타인과 협력하고, 상호작용하며, 공존하고 공감하며 공생하는 삶이 더 중요합니다. 명령으로 이뤄지는 수직적인 의사소통이 아니라 소통과 설득, 대화로 이뤄지는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더욱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은 앎이라도 실천으로 옮기고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대학을 다니고, 어떤 회사에서 얼마의 돈을 받으며, 어떤 지위에 있느냐보다, 내가 누구이며, 나는 어떤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살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민주시민 교육
현재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은 민주시민 교육입니다. 그리고 민주시민 교육은 한 인간이 스스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며, 이미 완전한 존재로서 자존감을 되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청소년들은 결코 부족하거나 미성숙한 존재가 아닙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지, 어떤 일에 흥미가 있고 좋아하며 잘하는지, 찾아가고 고민하는 존재입니다. 그런 청소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사유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 어떤 기성세대보다도 순수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삶과 세계에 대해서 정의를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며, 뛰어난 감수성으로 공감할 수 있습니다. 환경 문제, 전쟁의 위기, 경제적 양극화, 서로를 혐오하는 문화 등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진짜 문제들은 기성세대의 논리와 방법으로는 풀 수 없는 것들이며, 오히려 강화해 온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과제를 책임지고 풀어갈 세대들을 우리 교육은 키워내야 합니다. 그런 교육혁명이 필요합니다. 제대로 된 민주시민 교육이 절실합니다.
 분명 청소년, 청년들은 지금 사회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한 책임에서 기성세대보다는 자유롭습니다. 우리가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가 만들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이 세계의 주인이며, 이 세계에 발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책임 있는 민주시민입니다. 또한, 지금부터의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랬을 때 나는 정말로 살아있는 민주 시민인지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다른 친구가 질문할 때 “쟤 좀 나댄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누군가가 따돌림 당할 때 그 따돌림 당하는 아이의 편에 서지 못한 적은 없는지, 나를 둘러싸고 옥죄는 결핍과 두려움과 공포에 져버린 적은 없는지 생각해봅시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는 더욱 깊이 있는 나 자신과 만나야 합니다. 진정으로 나는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잘하고 즐거워하는지, 어떨 때 나는 행복하고 그 행복을 더 많이 나누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이 한 번밖에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진실로 뜨겁게 질문해야 합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서, 또한 이 세계의 일원으로서 나는 이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큰 뜻을 품고, 끝없이 성찰하고 반성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 청소년으로 존재하기
교육의 장에서 청소년은 아직 온전한 주체로 인정되지 못하거나 배제되어온 계층입니다. 이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지 않는 것이 그 단적인 예이겠지만,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청소년, 특히 현재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은 학생 이상의 정체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보호대상, 기존의 법칙을 따라야만 하는 존재, 부여된 것을 따르고 그를 습득해야만 하는 주체. 불완전하고 유약하며, 아직 삶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자이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학생이기 때문에 교과 이외의 사유, 행동, 경험 등에 대한 가치평가 자체를 거부당합니다. 새로운 모험과 도전 없이 교실에 앉아 주어진 시험지와 사투하는 것밖에 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이 한 생명체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민주시민에 적합한 인간은 탄생할 수 없겠지요. 다른 세대와 청소년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들이 새롭게 민주주의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청소년 또한 그들의 존재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며, 그것이 수렴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청소년에게 민주적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훈련 또한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평등한 공생의 원리, ‘하나의 공통된 주인’으로서 공감하고 공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청소년기는 그를 훈련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육 혁명
민주시민 교육은 인간 내면에 있는 감정을 재해석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진짜 꿈꾸는 삶은 무엇인지, 이 세계에 대한 나의 책임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토론하는 것입니다.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고, 소통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진정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그래서 자유로운 인간이자 민주시민이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면서 했던 선택들이 이 세계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왔는지에 대해 반성하며 생각해본다는 것을 뜻합니다. 
 제가 정세청세를 통해 배운 가장 큰 깨달음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두려움과 결핍을 조장하는 교육과 사회에 살고 있더라도, 그래서 내 삶이 자유롭지 않다고 느끼는 그 순간조차도 실은 단 한 번도 자유롭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 개인으로서 세계를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드는 순간조차도, 저는 단 한 번도 세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깨달을 때, 저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세계를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사회란 이 사회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라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 선생님은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혼자서 용기를 내기란, 혼자서 진실을 말하기란, 혼자서 행복하기란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만납시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뜨거운 숨결을 나누면서 우리 사회의 정의와 행복을 토론합시다. 우리가 만들어갈 세계의 모습을 토론합시다. 우리 가슴 속에 있는 촛불을 켜고, 그 촛불을 모아 시대의 어둠을 조금씩 걷어갑시다.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바로 지금 여기에서부터 실천합시다. 두려움을 넘어 희망으로 나아갑시다. 굴종을 넘어 자유로 함께 걸어갑시다.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 이것이 제가 정세청세를 하는 이유입니다. 전국 어디에서든 정세청세를 원하는 청소년이 있다면 달려가겠습니다. 그곳에서 청소년 인문 토론의 장을 열어가겠습니다.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자유와 정의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청소년들이 토론의 장을 열어 간다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교육 혁명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실 당신께서도 함께해주시길 간절히 기다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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