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청세

[다음_스토리펀딩] 정의로운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 3화 "인생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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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4-30 12:57 조회2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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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인문 토론의 장 정세청세의 이야기 “정의로운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를 
소셜펀딩 페이지 ‘스토리펀딩’을 통해 소개합니다.
정세청세 활동을 하며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배움과 실천을 이어온 
10명의 청년의 이야기를 지난 3월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스토리펀딩 3화 “인생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가 실렸습니다.
정세청세를 만나고 자신의 생각과 삶이 혁명적으로 바뀐
 청년 홍록기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제가 정세청세에서 만난 인문학이라는 것은, 
하루하루를 멋진 꿈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소통이고 운동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 태어나 당연히 받아야 할 존중을 받고 존엄한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꿈을 꾸지 못했던 사람들이 의미 있는 삶의 목표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자신을 충만하게 사랑하지 못하고, 뒤틀린 어린 시절을 보내는 청소년들이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나라의 교육이 바로 서고, 복지가 바로 서길 꿈꿉니다.”

이 청년의 진솔하고 뜨거운 목소리에 공감하시는 분들은
스토리펀딩을 통해 모금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펀딩 모금액은 전액 청소년 인문·문화·교육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비용으로 사용됩니다.

대한민국 청소년이 함께 모여
세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유롭게 소통하며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길에 여러분이 함께 해주시길 희망합니다.








인생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 정세청세는, 사랑입니다.
안녕하세요, 정세청세에서 사랑을 배우고 나누는 법을 알게 된 23살 청년 홍록기라고 합니다. 제가 정세청세에서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이유, 정세청세에서 얻은 가장 빛나는 보물, 정세청세에 몸담은 동안 매 순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가치의 어렴풋한 실루엣을 이번 기회를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정세청세를 만나고 제 생각과 삶은 정말 혁명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정세청세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제가 정세청세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고민했습니다. 그 끝에서, 저는 어떻게 인문학이 우리 삶에 스며드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우리네 청소년들에게 인문학은 일상과 삶의 차원에서 이야기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선 지식 위주의 ‘공부하는 인문학’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진정 풍요롭고 가치있게 하는 것은 ‘생각하는 인문학’입니다.

생각이야 우리가 항상 하는 것인데, ‘공부하는 인문학’이 아니라 ‘생각하는 인문학’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질문을 조금 달리하면, 인문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게 ‘인문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하는 물음은 곧 ‘어떻게 하면 생각의 다른 이름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저는 정세청세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인문학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팠던 제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토론하면서 도대체 뭐가 그렇게 감동적일 수 있지?’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를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어릴 적의 이야기를 조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선천적으로 면역력이 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 벌써 관절에 물이 차서 발에 추를 달고 입원하는가 하면, 언젠가는 새벽에 손과 얼굴이 부풀고 건드리기만 해도 번개를 맞는 것 같아서 소리를 빽빽 지르며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고, 지금은 창궐하는 미세먼지를 이기지 못하고 콧물과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는 지경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심각한 아토피 피부염과 알레르기 발작 증세였습니다. 눈을 뜨고 있든, 감고 있든 긁어대는 통에 몸에는 살색만큼이나 노란색과 붉은색이 덮여있었고 천식 때문에 목에서는 쉭쉭 소리가 나곤 했습니다.
지금도 봉사를 하거나 교육 사업에서 초등학생들을 만나면 느끼는 것인데, 어린이들은 참으로 순수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보고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데에 아주 거침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을 지내는 동안 저는 ‘괴물’이고, ‘좀비’였습니다. 친구들은 정말로 저한테 물리면 똑같이 되는 줄 알았나 봅니다. 그다지 덩치도 없고 싸울 줄도 모르는 것이, 많이도 싸웠습니다. 3학년 즈음에는, 저랑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까지 모조리 맞고 왕따를 시키니 원….그냥 ‘내 편 만들기’는 포기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를 버티게 해준 것은 ‘어른들’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항상 제가 소중한 존재라고 이야기해주셨고, 올바로 자라야 한다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스스로를 ‘뭐라도 되는 놈’으로 여길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미술학원 선생님께서도, 태권도 학원 관장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개나리가 막 피어나려고 준비하는 중이어서, 아직은 담장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잘 보였던 초봄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운동장에서 그다지 저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흠씬 마사지를 받고는 담장 밑에 누워서 숨을 몰아쉬고 있었을 때, 두 아주머니께서 지나가면서 하는 말을 듣고야 말았습니다.
“어머, 쟤 얼굴 좀 봐요. 무슨 애가 얼굴이 저래?”
“어머 징그러워라, 보니까 싸운 것 같은데 저렇게 생겼다고 한 성깔 하나 봐~호호”
저는 그 날, 훗날 철학 공부를 하게 된 주춧돌이 세워졌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세상에 이런 건지, 나라는 존재는 왜 살아가는 것인지, 다른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잘났는지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런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가슴 깊이 새겨진 제게 캠프에서 만난 정세청세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들이 내게 물어올 때 눈이 마주쳤고, 분명히 내 얼굴을 보았을 것인데 어떤 혐오도, 놀람도, 심지어 연민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얼굴이 새빨개지고 아무 말도 못 했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답니다.
그 빛나는 시간이 지나가고(눈물도 닦고), 지나가던 키가 큰 멘토 선생님께 “선생님, 여기 있는 사람들이 공부하는 게 뭐에요?”라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이 ‘아마도 이게 인문학일 것이다.’였습니다. 그때, 인문학이 무엇인지는 전혀 몰랐지만, ‘아, 인문학이란 걸 공부한 사람들은 정말 멋있고 빛나는 사람들이구나….’이라고 생각하며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 신(新)바람

정세청세를 만나고 함께 하는 동안, 제 인생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멋있어 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부산에서 토론하면서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 것 중에 하나는, 서로 질문을 하는 데에 거침이 없고 대답을 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 제일 많이 생각하는 것이 뭐예요?”
“왜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을 신경 쓰면서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왜 공부해야 할까요?”
캠프에서 처음 만난 정세청세에서 서로에게 던져진 질문들이었습니다. 저는 3가지 질문 모두, 잘 모르겠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정세청세는, 아아,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나’를 찾아가는 여행입니다. 어떻게 하면 온전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지, 나의 삶에 중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매일 내가 하는 선택들이 옳은 선택인지, 나는 언제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이 한 번뿐인 인생을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고민하고 말해야 할지.
2011년도,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정세청세 행사에 참여하면서 저는 살면서 처음, ‘꿈’이라는 것을 꿔보게 됩니다. 직업이나 계급에 대한 계획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고민한 결과이자 한 번뿐인 인생에 이뤄내고 싶은 그런 멋진 그림말입니다. 23살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도 변하지 않고 건재한, 그때 세운 목표는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은 다시는 이 세상에 없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게 큰 꿈입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문장으로 표현해본 꿈이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꿨던 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초등학교 때엔 ‘경찰’이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주위에 참으로 많았던 나쁜 사람들을 혼내줘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한데 경찰이라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주위에 물어보니 무서운 사람들이랑 싸우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어리고 여린 초등학생 홍록기는 무서운 사람들이랑 싸울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습니다(ㅋㅋㅋㅋ). 그 다음 장래희망은 ‘의사’였습니다. 나쁜 사람들을 혼내줄 수 없으면, ‘왜 나만 이렇게 아플까’하고 괴로워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싶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꽤 성적이 좋았던 홍록기 학생은 그럭저럭 그 꿈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포기했습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평생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결과적으로, 저는 지금 장래희망이 없습니다!
그렇게나 결핍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던 제 인생은, 제 주위에 나쁜 사람들이 없어지거나 제 병이 나아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매일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행복한 삶을 만드는지, 혹은 무엇이 더 가치 있는 삶을 만드는지 고민했습니다. 그것들은 그렇게 먼 미래에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 ‘나’를 찾아가는 여행

2011년도에 만났던 당시의 토론 주제들은 ‘공동체와 민주주의’, ‘생명과 자연’, ‘아름다움과 사랑’, ‘공동선을 향하여’였습니다. 매 행사가 충격이었습니다. 정세청세에서 만난 청소년들을 그곳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함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제 과거의 상처들을 진심 어린 눈으로 함께 마주해주었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함께 고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어릴 적 생겼던 수많은 결핍을 딛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청소년이나 학부모님들이 제게 묻습니다.
“정세청세를 하면서 성적이 크게 떨어지진 않았나요?”
네, 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졌고, 정말 행복에 겨워하느라 공부를 좀 덜 했기 때문입니다. 철학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목표를 가졌고, 읽고 싶은 소설과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함께 토론하던 친구들과 무대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강의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자기 공부하기도 바쁠 시간에, 저는 성적이 낮았던 친구들을 모아 같이 공부하고 성적을 올려놓는 모임까지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놓고 저는 성적이 조금 떨어졌었답니다.
정말 충만하고 행복한 수험생활이었습니다. 다시 돌려보내 준다고 해도 똑같이 살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지 상상하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다시 묻습니다.
“학생(혹은 어머니), 이 정도면 성적이 조금 떨어져도 되지 않을까요?”
방금 약 3년의 시간을 몇 줄로 짧게 요약했지만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정말 진하게 남는 기억 중의 하나가 음악에 관한 기억입니다.
친구들과 노래하는 것이 좋아서, 팀을 만들어서 수원시 예술제에 나갔습니다. 그렇게 노래를 엄청나게 잘하는 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출전자가 서로의 잘함을 뽐낼 때 저희 팀은 심사위원을 웃겼습니다. 결과는 단체 1등이었습니다. 그 친구들과 함께 경기도 대회에 진출하고, 케이팝스타 PD에게 러브콜을 받아서 오디션에 나가보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아직도 제 삶에 신념을 지탱해주는 것 같습니다. 결국, 스스로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행복한 것을 고민할 때, 결국은 최고의 결과가 얻어진다는 신념입니다. 이런 경험들이 지금도 제 삶을 많이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용기를 길러줬습니다. 제 장래희망과는 전혀 상관없이, 대학을 다니면서는 뮤지컬 무대에 서고 버스킹을 했습니다. 영어 학원에서 기타 클래스 조교를 맡아보기도 하고 학교에서도 교양수업으로 연극 수업을 들었습니다. 장애인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보기도 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봉사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특출나게 잘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1등 했다는 것 혹은 하려고 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런 경험들이 모두 동떨어진 별개의 취미생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인문학적인 삶이라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청소년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일에 유난히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사회와 구조들은 개인을 온전한 개인으로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 한 명의 시민으로서의 권리조차 온전히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사회 구성원으로 이익을 창출할 것을 강요합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기도 전에, 나의 행동거지와 언어는 이미 하면 안 될 것과 해야 하는 것들에 의해 점철됩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경험해보지 않고서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못하면 부끄러워야 하고 모르면 창피를 당하기 일쑤입니다.

“버스킹 해서 뭐하려고? 가수 할 거야?”
“네 삶에 확실한 게 뭐가 있다고 봉사하느라 그렇게 시간을 많이 써?”
“네 등급을 알기는 하니? 노래 대회가 무슨 말이야?”
“아직도 꿈이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뭐, 책은 아무나 내는 줄 알아?”

‘나’에 관한 충분한 고민이 없는 청소년이라면 이런 질문들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올바른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는 과정을 겪어보지 못하면 건강한 자아가 형성되지 못합니다.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슬퍼하게 되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됩니다. 나조차 스스로 수많은 결핍을 느끼는데 타인과 세계에 쏟을 힘이 생길 리가 만무합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스스로 연구해보고 찾아보는 법을 익히기 위한 시간과 환경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언어와 경험을 통해 타인에게 다가가는 법을 익혀가야 합니다. 내 삶의 요소들을 스스로 선택하고 선택에 책임지는 법을 익혀가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가정과 학교와 같은 사회 영역들에서 그러한 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세청세와 같은 사회 조직들이 그러한 기능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는 청년들에게 실전 경험과 실용적인 삶의 기술들을 요구하면서도, 청소년들이 자라오는 과정에서 그러한 능력을 기르고 경험을 해볼 환경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정세청세에서 청소년들은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나의 언어와 행동이 타인과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팀으로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인가를 제공하는 생산자의 책임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특히나 정세청세를 함께 만드는 기획팀들은 정말 많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어떤 세일즈맨이 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제품 A을 팔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알아야 할까요? 제품 이름과 가격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품을 웹상에 올려서 홍보하기도 해야 하고, 이 제품이 소비자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 제품이 만들어진 배경과 과정은 의미가 있고 문제가 없는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잠재적 소비자의 상태와 필요를 섬세하게 체크해야 하며, 제품을 파는 자신조차도 소비자에게 모든 면에서 호감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세일즈가 좋은 비교 예시는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분명히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세청세를 만들어가는 기획팀들은 행사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부모나 정세청세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이 연락하면, 정세청세에 대해 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이 쉬워 보이지만, 그 한 번의 통화를 위해서는 스스로 수많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나는 왜 정세청세를 하고 있는지, 정의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어떤 것인지, 기획팀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책임감이 필요한지, 무엇을 배우는지 알고 있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처음 기획팀이 된 청소년들은 11시부터 시작하는 행사 준비를 10시 50분에 끝마치곤 합니다. 처음 오는 장소에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러 오는 사람들이 일찍 올 수도 혹은 늦게 올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 처음에는 힘든 것입니다. 한 번, 두 번 경험이 쌓인 기획팀원들은 미리 모여서 10시 반에 행사 준비를 모두 마치고 일찍 도착하는 참여자들을 맞이할 수 있게 됩니다. 용기를 내어 힘든 결정한 참여자들이 기다리는 동안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느끼게 해주기 위해 잔잔한 음악을 깔아놓은 섬세함까지 곧 갖추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질문하는 법, 다른 사람의 경험 속에서 공감대를 끌어내는 법, 공적인 자리에서 대화하는 법, 예산을 쓰고 기록을 남기는 법, 다른 기관에 자신을 어필하고 연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감수성을 곤두세우고, 윤리적인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문학적인 삶’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걸어온 길에 조금이나마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기도 하고, 나와 다른 존재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합니다.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 절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남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서로의 경쟁을 강요하거나 부족한 것을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는 공간에서, ‘나’라는 존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을 때 나의 생활 영역뿐만 아니라 세계와 타인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모든 지금이 우리의 꿈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며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에 어떤 시점에 이르면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 중에서
제가 뭐라도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땅의 수많은 영혼의 빈민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스티브 잡스가 이야기했듯이, 우리의 삶의 궤적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순간들입니다. 많은 사람이 어떤 불확실한 미래의 시점에 꿈이라는 것을 놓아두고, 주위를 둘러보지도 자신을 돌보지도 못하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제가 정세청세에서 만난 인문학이라는 것은, 그런 이들에게 하루하루를 멋진 꿈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소통이고 운동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 태어나 당연히받아야 할 존중을 받고 존엄한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청년이었던 시간에 꿈을 꾸지 못했던 사람들이 의미 있는 삶의 목표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자신을 충만하게 사랑하지 못하고, 뒤틀린 어린 시절을 보내는 청소년들이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나라의 교육이 바로 서고, 복지가 바로 서길 꿈꿉니다.

1등이 되거나 무언가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을 해서, 박수를 받는 것은 모두의 의무가 아닙니다. 하지만 올바른 가치를 실현하고, 약자를 보호하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는 이들에게,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이들에게 박수를 쳐주는 것은 모두의 의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세청세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스스로에게 박수 쳐주시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청소년, 청년, 어른들과 함께 해주시길,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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