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청세

[다음_스토리펀딩] 정의로운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 6화 "학교라는 굴레, 나의 모순을 마주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7-14 20:56 조회192회 댓글0건

본문




소년 인문 토론의 장 정세청세의 이야기 “정의로운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를 
소셜펀딩 페이지 ‘스토리펀딩’을 통해 소개합니다.
정세청세 활동을 하며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배움과 실천을 이어온 
청년 10명의 이야기를 3월부터 연재하고 있습니다.

스토리펀딩 6화 “학교라는 굴레, 나의 모순을 마주하다”가 실렸습니다.
2017 정세청세 수도권을 이끌고 있는 청년 고윤정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당장의 나의 정의를 놓지 않는 것. 
그래야만 ‘우리’가 정의를 꿈꾸며 정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한 명이 그 끈을 놓지 않고, 함께 그 끈을 잡고 있다면, 
그러면 언젠간 정의로운 세상이 도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전국 22개의 도시에서 함께 꿈꾸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보며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하는 빛나는 사람들과 이어진 수많은 희망들을 봅니다. 
오늘도 정세청세에서 정의를 함께 꿈꿀 수 있습니다.

이 청년의 정의로운 목소리에 공감하시는 분들은
스토리펀딩을 통해 모금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펀딩 모금액은 전액 청소년 인문·문화·교육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비용으로 사용됩니다.



[스토리펀딩_6화]

학교라는 굴레, 나의 모순을 마주하다

고윤정

-1. 나는 잘하고 있다-
 며칠 전 자취방에 책장을 정리하다 주황색 노트를 발견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힘든 경사로를 따라 등교할 때 학원에서 홍보용으로 나눠줬던 예쁘지도 않은 너덜너덜한 노트. 단순한 개념을 외우기 위해 과목 구분 없이 막 써내려갔던 평범한 이 노트를 버리지 못했던 이유는 공부를 하다 중간 중간 써뒀던 시들 때문이었습니다. 페이지 한켠마다 저의 고뇌가 번져있는 이 시들을 미처 제 시 노트에 옮기지 못해 나중에 옮겨야지 것을 어쩌다보니 서울에까지 함께 들고 와 버렸습니다. 

 노트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청소를 하다 말고 공책을 폈습니다. 공책을 펴자마자 연필로 쓴 글자들 사이에 볼펜으로 꼿꼿이 써내려간 선연한 잉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공부하다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잘 하고 있다.”

 현 시대에서 과부화 된 인간의 욕망을 돌이켜 보게 하는 ‘비자연적이고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를 비판하며 등장한 쾌락주의’ 정신과,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운동으로 민권 의식을 성장’시키며 민주주의를 향해 걸어온 우리나라의 빛나는 역사를 배우던 저는... 공부를 하다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나봅니다. 힘들다는 걸 인정하면 제가 너무 나약해질 것 같아서 그 말을 저 깊은 속으로 욱여넣으며 새기듯 써내려갔어야만 했던 고등학생 고윤정이 다시 저 분명한 볼펜자국처럼 떠올랐습니다. 공부하면서 힘든 게 ‘현실적’인 거니까, 그게 맞는 거라고, 잘하고 있는 거라고 흐릿한 흑연의 자취 사이에서 나라는 아이가 선명히 보였으면 해서 부들거리는 손으로 볼펜을 부여잡고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갔습니다.

 시를 쓰는 행위는 저를 잃지 않으려는 투쟁에서의 최후의 발악이었지만, ‘나’일 수 있었다고 믿었던 그 순간들조차 저는 수없이 스러졌고 ‘나’를 온전히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노트에 제 마음을 간간히 토해가며 이런 ‘최후의 나’라도 간신히 붙잡을 수 있게 해준 시를 쓰고자 마음먹게 했던 곳이 바로 정세청세였습니다. 

-2. 정세청세와의 첫 인연-
 제가 어렸을 적 국어 교사이신 제 어머니는 다른 선생님들과의 토론 자리에 매번 저를 데리고 다니셨고, 이를 보며 자라왔던 전 토론이 너무나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들어간 고등학교 토론 동아리에서는 대부분이 가고 싶던 동아리에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흘러온 학생들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토론 동아리는 토론하고자 했던 아이들의 목소리조차 삼켜버렸습니다. 아니, 오히려 ‘미숙한 존재로 취급받으며 언제나 수동적으로 들어야만 했던 학교’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과 토론하는 것, 그 자체를 상상한하게 아이러니한 것 아니었을까요.

 저는 친한 언니와 만나 푸념을 늘어놓았고 이에 언니는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곳이라는 각주를 달며 ‘정세청세’를 소개해줬습니다. 익숙하지 않았던 “정세청세”라는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폴더 폰 메모장에까지 적어놓고서야 정세청세에 가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행사장에 들어서는데 처음 보는 청소년들이 그 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어색하진 않을까 쭈뼛쭈뼛 조별토론을 시작하는데 웬걸 낯선 사람들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서로 눈을 마주치며 눈빛을 초롱초롱히 밝히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는 빛나는 청소년들을 만났습니다. 저 같은 청소년들이 한 공간에 가득 모여 이야기하던 모습을 보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곳에서 시를 쓰며 삶을 고민하는 친구들을 만났고 그때부터 그들을 닮고파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3. 정세청세에 참여한다는 것은-
 생기가 가득한 그 곳의 공기에 매료된 저는 정세청세를 그리워했지만 정세청세에 잘 가지는 못했습니다. 정세청세를 간다는 것은 토요일 학원과 학교 자습을 빼기 위해 선생님과 부모님께 그 곳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고 배우는지 설득하고, 그 만큼 ‘빼앗긴’ 시간을 어떻게든 채우겠다는 다짐과 계획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그 어떤 이유보다 더 힘들었던 건 제 내면의 불안을 이겨내는 일이었습니다. ‘너가 그러는 사이에 상위권은 오늘도 공부를 하고 있어. 그게 너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 것 같아?’ 그래서 저는 간간이 정세청세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세 달에 한 번 힘들게 찾아간 공간에서 처음 보는 청소년들과 각자가 가슴에 품었던 질문들을 던지고 각자의 답을 공유하며 존중을 통해 서로에게 배우면서 각자의 답을 발전시켜나갔습니다. 그들과 함께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사회에서의 우리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언제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다른 존재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있는가?
나의 꿈은 진정 나의 것인가? 

 ‘나’라는 존재가 없었던 저의 삶에서 처음으로 저를 위한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을 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역동적인 삶에 대한 질문들로 가득한 그 곳에서 저는 존엄한 한 명의 주체로서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4. 정세청세와 학교 그 사이에서-
 그러나 정세청세에서 나눈 가슴 충만한 삶의 질문들을 안고 학교로 돌아가면 숨 막히는 세상은 다시 저를 삼켰습니다. 공부만 해도 시간이 없다고 이야기 하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말라가던 저를 불안감에 더욱 떨도록 만들었습니다. 전교권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정독실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은 박탈감을 느꼈고, 그 안에서도 성적에 따라 자리를 배치하면서 서로를 미워하고 불안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감시자이자 경쟁자일 뿐인 그 공간은 정세청세가 저에게 묻던 그 질문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너는 왜 자꾸 딴 소리를 하느냐고 혼을 냈습니다. 학교 안의 모든 시공간이 힘든 건 당연하다며 다시 저를 착취하는 굴레 속에서 달리게 했습니다. 학생들의 자율권을 주장하며 건의하고 이를 실현하고, 학교의 불법 행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나름대로 투쟁했습니다. 

 그러나 ‘바다’에 씨를 뿌린다고 해서 ‘청무우밭’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저의 날갯짓은 근본적으로 나를 지쳐 무너지게 하는 바다 앞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흰 나비’일 뿐이라는 것을 재확인 할 뿐이었습니다. 

‘정세청세에서의 이야기는 탁상공론에 불과한 것이었나.’

-5. 학교라는 공간-
 모두가 아프고 반쯤 미쳐있는 예비 고3의 교실에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 입시도, 수능과도 관련 없는 시사 수업을 하셨습니다. 언론의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적인가 제한적인가에 대한 사회적 의견이 갈리었던 프랑스의 샤를리 엡도 주간지 테러사건을 선생님은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며 저희에게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저는 충격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시며, 자는 아이들을 딱히 깨우시지도 않았지만, 반 아이들 모두가 눈을 초롱초롱히 뜨고 선생님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한 공간에서 10개월을 부대끼고 살았지만 반 친구들이 살아있음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반 친구들과 정세청세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다르다고 생각했었고 단 한 번도 반 친구들의 반짝거리는 눈을 마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어쩌면 11년 동안 나와 같은 공간 속에서 공부했지만 의미 없이 지나쳤던 친구들 모두 그런 눈빛을 가지고 있었지 않을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고민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그 빛나는 눈빛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때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수업에서 절망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생각을 너무나 이야기하고 싶었고, 친구들의 생각이 너무나 궁금했지만 저는 차마 손을 들고 이야기 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서 “선생님, 저는 ~게 생각합니다!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한데 책상을 돌려서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이야기 했으면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아마 눈을 초롱초롱히 뜨고 있던 친구들일지라도 탄성을 내뱉었을 것이고 그날 뒷담화의 화려한 ‘나댐’의 주인공으로 등장 했을 테죠.

 ‘가만히 있으라.’ 제 말을 가로막았던 건 친구의 뒤통수였습니다. 제 목소리는 친구의 뒤통수에 막혀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제서야 일괄적으로 칠판을 향한 책상방향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감옥의 감시체계와 같은이 일렬로 쭉 늘어진 교실, 그 중간에 자리 잡은 교무실의 구조는 감시와 통제, 주입에 적합한 곳이었지 소통과 토론과 배움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학생이 한 개인의 인간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교육의 주체는 될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학생들 스스로가 타자로 존재하기에 친구들조차 타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면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고 졸업하면 얼굴과 이름 모두 희미해지는 친구들이 대다수이고, 그래서 작년의에 친했던 친구가 왕따를 당하면 가볍게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곳. 일 년 동안 한 공간에서 살아가지만 친한 친구가 아닌 이상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가치관과 취향,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 채로 사는 것이 당연한 곳. 그렇게 학생들은 학교에서 인간 존엄성에 무뎌지는 법을 배웁니다.

-6. 지역 기획팀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누구든지 진정한 목소리를 내고 들어줄 수 있었던, 청소년들의 생기를 일깨웠던 정세청세가 떠올랐습니다. 제저 스스로가 누군지 찾고 싶었고 삶의 질문들을 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3때 정세청세의 기획팀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정세청세는 그런 저를 따뜻이 맞아주었고 자신의 목소리를 잃었던 많은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온전한 삶을 ‘함께’ 찾아갔습니다.

 참여자 때는 토론을 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기획팀이 되면 한 회 토론을 하기 위해 어떻게 주제에 접근해야 할 지 마음속에 주제를 질문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일상적인 사건들이 깨달음으로 변하고 충만한 순간들이 제 상처를 감싸안고 회색빛 일상들을 메꾸기 시작했습니다.

왼쪽 상단부터. 학교 등교버스를 타기 전에 찍었던 낙엽/벚꽃 수술이 떨어진 학교 운동장과 내 발/벚꽃 수술이 떨어진 학교 운동장 의자
왼쪽 하단부터. 형형색색 우산을 들고 비가 오는 회색빛깔 세상 속의 무채색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에게서 순간 생명력을 느끼고 카메라에 담았던 순간/고3만 학교 오는 토요일, 벚꽃과 햇살이 너무 예뻐서 찍어본 한 컷/야자하다 말고 나와서 찍은 벚꽃. 삼학년 층만 불이 켜져 있는 모습

 8년을 왕따 당해 버리지 못했던 자격지심을 마침내 버리고, 다른 이들을 용서하는 법을 깨달았고, 타인에게 눈치보고 비위를 맞추던 비굴하고 자존감 낮았던 제 모습에서 탈피해갔습니다. 입시를 위해 투자했던 평범했던 하루들이 일상이란 이름으로 다가오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행복임을 깨달았고 쉬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공부했던 제가 친구들과 운동장 한 바퀴라도 걸으며 고민과 불안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7. 나의 모순과 마주하다-

<나였던 아이는 어디있을까. 여전히 내 안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中> 고3 때 썼던 스터디플래너 중
 어느덧 수능 입시 원서를 넣고 나서 친구들과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단짝친구들이 쉬는 시간에도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하는 저를 보면 깨워달라는 말조차 걸기가 무섭고 미안하다는 고백 아닌 고백을 했습니다. 일상을 찾으려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다시 입시 기계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제가 불쌍했습니다. 친구들이 보는 저는 대입 입시에 불안해하며 쉬는 시간에 조차 쉬지 못하는 독종이었습니다. 

 들키지 않았던 제 진심을 알고선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웠습니다. 반 친구들과 서로 어디에 넣었는지 이야기하다 저보다 전교등수 100등정도 낮다고 알고 있던 친구가 저와 (대학순위가) 비슷한 대학들에 넣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서로 “우리 같은 학교 되면 정말 좋겠다.”라고 말은 했지만 저는 불안했습니다. ‘나보다 쟤가 더 대학을 잘 가면 어쩌지. 쟤만 붙고 나는 다 떨어지면 어쩌지.’ 제일 낮았던 학과의 경쟁률이 49:1이었고 그 경쟁률을 보며 이 생활을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이 저를 괴물로 만들었습니다. 저와 성적이 비슷한 친구가 쉬는 시간에 일어나지 않으면 저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보다 성적이 낮았던 친한 친구들은 어디에 대학을 넣었는지, 어디 학과를 가는지 기억도, 비교하지도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저의 불안감은 알고 있었기에 쉬는 시간에도 조심히 말을 걸며 저를 배려했지만 저는 제 사랑하는 친구들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제가 끔찍했습니다. 대학에 가서도 나는 절대 학력으로 차별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왔었고 반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했던 제가 스스로 사랑하는 친구들을 성적의 잣대로 멸시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나는 결국 이 거대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라는 시대 흐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가. 나도 공부와 친구 중에서 공부를 선택하는 아이구나. 내가 정세청세 속에서 이야기 했던 정의로운 세상은 나부터 이렇게 무너지는 것이구나. 나의 정의는 이렇게 모래성 같은 거였구나. 제 삶의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은 잊고 어느새 성적이 낮은 친구들이 더 좋은 학교를 가면 어떡하나 매 순간 부끄러운 비교를 하고 불안에 떨고 있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8. 정세청세팀원으로 살아간다는 것-
 정세청세를 해내는 것을 힘들게 하는 것들은 많았지만, 정말 정세청세를 놓고 싶은 순간은 그 앞에서 자신의 정의가 나약해지던 순간들, 자신의 모순들과 마주해서 좌절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국가적 이기주의와 각자도생이라는 거대한 시대 흐름 속에서 연어처럼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서있는 것조차 힘들고 때로는 물에 휩쓸리며 그냥 모두 물살을 따라가는 것처럼 나도 같이 가면 안 되나 타협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정의를 이야기하기 위해 거대한 세상 앞에서 당장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음을 실감할 때의 무력감, 그 앞에 나약하게 스러진 자신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인간의 존엄성과 고귀함조차 투쟁해야만 지킬 수 있다는 걸 느낄 때 내려놓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의를 이야기 하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모순과 마주해가는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투쟁해야만 각자의 정의를 살아낼 수 있습니다. 그 힘든 투쟁의 순간 속에서 저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며 정의를 실천해가고 있습니다. 

 정세청세의 정의는 생각하는 것처럼 엄청난 정의가 아닙니다. 세상의 정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나의 정의를 놓지 않는 것. 그래야만 ‘우리’가 정의를 꿈꾸며 정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음을 압니다. 나 한명이 그 끈을 놓지 않고, 함께 그 끈을 잡고 있다면, 그러면 언젠간 정의로운 세상이 도래할 수 있음을 이제는 압니다. 그래서 오늘도 전국 22개의 도시에서 함께 일하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보며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하는 빛나는 사람들과 이어진 수많은 희망들을 봅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그 자리에 버티는 것조차 힘들고 물이 덮쳐올 때도 있지만 나와 함께 나아가는 수많은 동료들이 있음을 알기에 오늘도 정세청세에서 정의를 함께 꿈꿀 수 있습니다.

함께 이 물살을 헤쳐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