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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석화 작성일18-01-07 20:31 조회3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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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day

  허술한 나무 문 안쪽으로 가족은 잠들어 있다. 그들의 뒤척임을 놓아둔 채, 슬리퍼를 신은 발에 힘을 주고 흙길을 걷는다. 오늘도 캄캄한 길을 헤집듯 걸어간다. 등 뒤에 어둠을 업고서. 새벽의 어스름은 금세 소진될 것이다. 그러면 밤은 없었던 듯 빛의 기운이 당도하겠지. 허름한 걸음으로 숲에 도착해 나무 앞에 선다. 어제 도끼질 몇 번으로 흔적만 낸 나무다. 오늘은 베어내야 숯 작업을 해서 킨샤샤에 내다 팔 수 있다. 도끼질. 태양빛의 세기만큼 도끼질을 해야 한다. 오래되어 굵직한 나무는 어제 생긴 생채기로, 온 몸에 힘을 더 주고 있다.

  검은 대륙이라 불리는 척박한 대지. 이 곳에서 원시적인 도끼질을 한다. 나무의 죽어가는 호흡과 삶을 향한 나의 거친 호흡만이 있다. 서로의 숨이 뒤엉키는 동안 나무는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쓰러뜨린 나무에 앉아 물을 마시는 동안 저 어딘가에서 또 다른 도끼질 소리가 들려온다. 검은 피부로 흘러내리는 그와 나의 땀. 그것만이 삶을 유지시킬 수 있다. 이 거대한 나무가 장작이 되려면 다시 도끼를 들어야 한다. 나무처럼 내 몸도 함께 부서져야 한다. 가족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내 몸밖에 없다. 이제 바짝 마른 나의 팔 다리처럼 조각난 장작들을 쌓아올린다. 그 위로 마른 흙을 덮고 불씨를 놓은 후, 삽을 던져버렸다.

  저 근원적이고 솔직한 연장들. 오직 인간의 땀만을 요구하는 가난한 도구들.

  내게 도끼와 삽은 연명의 유일한 도구다. 다행히 아직 흘릴 땀이 남아있으므로 저 도구들은 유효하다. 유효하지만 효율적이지 못한 삶의 도구와 내 몸을 지금 절감한다지도에서 비껴난 이 마을은 고대의 시간을 품고 있다. 자본, 기계, 효율은 먼 미래 혹은 먼 도시의 것이다. 그러므로 기계화되지 못한 땅에서 도구를 사용하는 내 몸이 기계가 되면 될 것이다. 삐거덕거리는 몸에서 성긴 기계음이 들린다. 내가 정직하게 지어올린 시간의 더미. 나무를 덮고 있는 흙이 폭신해지고, 그 사이로 습습한 연기들이 피어오른다. 나의 흙집에서는 가난한 저녁 연기가 피어오를 시간이다.

#2day

  길을 나서기 전 내가 꿈꾸는 집을 그려 아내에게 보여줬다. 슬레이트 지붕을 올리고 방과 부엌이 존재하는 집. 온전한 집의 형태를. 아내는 숯 작업을 얼마나 해야 가능하냐고 묻는다. 그런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슬레이트 가격도, 집을 지을 수 있는지 여부도 모른다. 다만 집을 꿈꾸었을 뿐이다. 꿈조차 갖지 않는다면 나는 버티지 못한다. 길을 나서지 못하고 검은 땅에 삼켜지고 말 것이다. 배운 것 없고 딱딱한 몸뚱이 밖에 없는 나는, 꿈을 소망한다. 그것에 이르기 위해 다시 길 위에 서야만 한다.

숯의 상태에 따라 나눠 담은 포대 열 다섯개를 오래된 자전거에 싣는다. 싣는다기보다 안장위에 억지로 걸친다. 그 위로 물통과 신발 하나와 마른 빵을 올린다.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를 진, 이 불안하고 괴이한 형체가 흡사 나와 닮았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낡은 형체다. 숯 더미에 가려 몸체는 보이지도 않고 바퀴만이 쓸모 있어진 자전거. 이제 내 몸에 기대어 이틀을 버텨야 한다. 내 슬픈 노동으로 만들어진 숯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콩고의 마른 잎맥 같은 길. 작은 마을길들이 대로로 모이고, 대로는 도시로 이어진다. 물도 영양분도 부족한 강마른 길들. 도시에 가까이 가서야 누런 흙길이 끊길 것이다. 숨이 다 빠진 잎맥 위로 버석한 모래가 날리고, 연약한 사람들이 위태롭게 걸어간다. 태양빛 아래 흙먼지를 삼키며 저마다의 몸을 동력삼아 걷는다. 큰길로 나선다. 이제는 걸음이 아닌 나의 의지가 길이 된다.

#3day

  오늘 시내에 도착하기 위해 말없는 걸음을 걷는다. 숯 더미 자전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여러 명씩 무리지어 나를 앞서간다. 동행이 동력이 되고 있다. 그들의 길은 덜 고단할까. 나는 감당하기 힘든 고난의 무게와 동행하고 있다. 빈 몸과 쇠락한 자전거로.

  자동차가 점점 더 많아진다. 짐이나 사람을 잔뜩 실은 트럭과 오토바이들이 속도를 내며 흙먼지를 일으킨다. 앞뒤로 오가는 차들은 경적소리로 길에 선 사람들을 위협한다. 오늘은 숯의 무게보다 아슬아슬한 걸음에 지쳐 버렸다. 길가에 잠시 세워둔 나의 자전거가 슬프다. 물을 마시는 동안 트럭이 내 자전거를 치고 지나가버렸다. 포대가 널부러지고 숯들이 쏟아져 내린다. 나의 내장 같은 숯덩이들 앞에서 그만 무너져 버리고 만다. 나는 순례자가 아니다. 고행의 길을 가고 싶지 않다. 거친 흙길이 삶이 되지 않고, 그저 길을 경유하고 싶을 뿐이다. 길과 동등해지고 싶다.

 

#4day

  저녁이면 도착했어야 할 길이다. 공부를 위해 킨샤샤의 친척집에 맡긴 큰 아이를 멀리서나마 보려 했는데. 밤을 넘기고 이 새벽까지 걷고 있다. 이제 숯의 무게와 내 몸의 무게를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다. 내 발이 땅을 딛는 것인지, 땅이 내 발을 미는 것인지. 이제 차들은 헤드라이트로 나를 위협한다. 자본을 싣고 달리는 자동차를 위해 나는 잠시 멈추어야 한다. 그들은 이미 저기에, 나는 아직 여기에 머무른다. 이 길은 평등하지 않다.

  낮이 되면 적당한 값에 숯을 팔 것이다. 시골의 작은 아이를 위해 약을 사고, 큰 아이 신발 한 켤레를 사고. 슬레이트 값을 물어봐야지. 그리고 아내와는 내 꿈을 나눠가질 것이다.

말 없는 발. 길 끝에 아직 당도하지 못한 발.

내 가난의 속도를 절감하는 길. 어둠과 내가 하나가 된, 길 없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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