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독서회

내가 바로 그 놈이다! Me too에 화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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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호 작성일18-02-09 05:24 조회2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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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유치원 교사로 일할 때 있은 일이라고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소풍을 나간 날, 뒤에서 따라오던 선생님들이 앞서 가는 자신에 관해 쑥덕대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 얘기의 화자는 유치원에서 유일한 남자 교사인 체육 선생이었고, 그와 보조를 맞추던 몇몇 동료 교사들이 그의 우스개소리에 마지 못해 맞짱구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앞에 가는 황선생 잘 봐봐. 엉덩이가 전혀 흔들림이 없잖아. 신기하지 않아? 원래 여자들은 걸을 때 실룩실룩 하는데 말이야. 가운데 추가 달렸나?..ㅎㅎ”

이런 얘기를 아내도 들으라는 듯이 크게 해서 못 들은 척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같이 웃자고 한 얘기였지만, 아내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어 뒤돌아보며 삐친 듯 눈을 흘기며 한마디 했다고 한다.

“아이~.. 류선생님!!”…

...

엉덩이라는 말에 꽂혀 은근히 분을 삭히고 있던 나는 물었다. “그게 다야?”...
내 기분은 관심도 없다는 듯이 아내는 그게 다라고 했다. 아니, 더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놈이 유치원 원장의 시동생이어서 당시 자신은 물론이고, 동료 여교사 어느 누구도 그 놈의 비위를 상하게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오십 줄에 들어선 아줌마답게 그 때 일을 태연하게 추억했지만, 이 아줌마와 30년 넘게 몸과 마음을 섞은 나를 끝내 속이지는 못했다. 아내의 눈빛, 말투, 그리고 입술의 가녀린 떨림까지 예전의 아내가 아니었다. 서지현 검사의 역사적인 인터뷰가 있은 날, 아내도 내게 처음으로 그 얘기를 털어 놓으며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런 경우, 남편들은 대개 어떻게 하나? 나 역시 아내를 위로한답시고 좀 과장되게 분을 표시했더랬다. 그러나, 똑똑한 아내는 그런 날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아내의 눈빛, 말투, 심지어 입술의 가녀린 떨림까지 전혀 변하지 않은 체 나를 내려다 보았다. ‘너도 그런 점에서 똑같은 남자잖아!..’ 였다.

검찰 내 성폭력 문제를 일찍부터 고발해온 임은정 검사가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이 문제는 젠더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라고!...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그렇다면, 이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도, 검찰 조직만의 문제도 아닌 것이며, 이 땅에서 권력을 누리고 살아온 모든 사람들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사람들 대개가 ‘남자’다.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이 유별났던 이 땅에서는 적어도 그렇다. 그래서 이 문제는 죄송하지만, 권력의 문제이자 적어도 이 땅에서는 젠더의 문제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남자들은 뭐하고 있나? 나는 지금 Me too 운동에 동참하고 응원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의 남자들은 지금 Me too 운동에 즉각 화답해야 한다. ‘내가 바로 그 놈이다!’고 자기고백에 나서야 한다. 특히, 잘 나가는, 존경받는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의 남자들이 먼저 자진해서 ‘내가 바로 그 놈이다’며 왜 서지현 검사처럼 인터뷰하지 않는가. 미국도 그러더니 우리도 그렇게 나서는 놈이 한 놈도 없네...

그래서, 나 같은 놈이 숨을 곳이 없구나...

나는 진화와 문화를 방패 삼아 이 땅이 내게 준 남자로서의 권력을 누리며 살아 왔다. 속물 취급 받을까봐 두려워 음담폐설을 직접 잘 하지는 못했지만, 동료 여성이 있는 자리에서 아무렇게나 터져나오는 음담폐설에 맞짱구 치며 가해자의 웃음을 과감없이 흘렸고, 유흥주점에서 술기운을 빌어 호기를 부리며 젊은 아가씨들을 농락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며, 심지어 여러 차례 성을 돈 주고 산 적도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폭력적이었다.

그렇다. 내가 바로 그 놈이다!
최영미 시인의 ‘괴물’이 바로 나다!

그날 아내에게 이런 고백을 끝내 하지 못한 나의 비겁을 부끄러워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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