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독서회

2월 4주 독서모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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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묘희 작성일18-03-05 05:46 조회291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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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28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하인리히 뵐/민음사

참석자; 정종임 마종윤 손병철 김석화 박소연 김민호 백혜진 김금옥 김지선 김양희 주묘희

다음책: 314-교수대위의 까치/진중권/휴머니스트-손병철

          328-이상한 정상 가족/김희경/동아시아-김지선

   

영화 더포스트에서 인상 깊은 말이 생각난다. 신문은 역사의 초고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이번 책은 황색 언론에 처참하게 유린당한 개인의 명예에 관한 보고서이다. 사회적 직위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가정부인 카타리나가 진실과는 거리가 먼 신문기사에 의해 분노하게 되고 급기야 신문기자를 총으로 살해하게 되는 5일간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의 기나긴 이름과 갑자기 돌변하는 인칭 변화 때문에 독서가 수월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을 들여서 읽고 난 뒤, 언론에 대한 비판의 날이 뾰족하게 가슴 한군데서 튀어나옴을 제어할 수 없었다.

*등장인물과 카타리나 연대기를 적어 보았다. 언론은 사람 말을 와전 시킨다. 말을 바꾸는 구절은 적어 보았다. 40년전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긍지를 가지고 있는 카타리나는 매력적인 여자이다. 기자는 카타리나에 대해 앙심을 가지고 있었다.

*책은 얇았지만 읽기가 힘들었다. 바이츠메네의 집요한 심문은 진실을 찾아가는 수단이다. 권력기관이 사용하는 언어와 카타리나가 사용하는 언어는 달랐다. 블룸은 언어에 대해 철저하고 확고하다. 사람이 살만한 나라에서 살만한 언어 찾기. 유명인사의 명예는 공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드러난다. 개인적인 명예는 더 지켜지고 보호되어야 한다. 사적인 감정과 관련하여 개인을 해부한다. 현재 미투와 관련이 있다. 성추행 당한 사람과 인터뷰할 때는 피해자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단어 선택이 중요하다. 미화시키지 말고 동사로 구체화시켜 표현해야 한다.

*언론에 치중해서 봐야한다. 영화 내부자, 더포스트, 1987이 생각났다. 언론은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발버둥쳐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잘못을 나눌 때 언론의 양이 다르다. 힘없는 여성은 언론에 휩쓸린다.

*사심이 담긴 책이었고 재미있었다. 빌트지에 대한 철저한 복수였다. 뵐이 하고 싶었던 총질이었다. 제목, 모토, 부제는 이야기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소설이 아니고 불가피한 현실이다. 투명한 사실 때문에 복수라는 측면에서 재미있었다. 주인공의 직업을 가정부 대신에 교수를 염두에 두었다. 자수성가한 가정부라는 주인공은 인민을 대표하는 표본이다. 평범하고 성실한 인민도 언론에 의해 망가질 수 있다. 의도적인 직업 배치였다. 치밀한 작가이다.

*처음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자신의 미래를 구상한다. 카타리나의 재정상태는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다. 수사과정이 언론에 과대 보고 된다. 작가가 직접 설명해주어서 흐름이 부자연스러웠다. 언론이 엄마를 찾아가서 엄마의 죽음이 앞당겨졌다.

*뵐은 정치적 작가이다. 생각 거리가 많아서 영화로 봐도 재미있겠다. 주인공은 내면이 단단하고 매력적인 여성이다. 카타리나는 알로이스 슈트로입래더를 취양을 이유로 거부한다. 기자는 사회 경제적으로 성공한 직업이다. 소설은 성공하지 못한 여인이 확고하게 지킨 것을 이야기한다. 언론은 사회를 반영한다. 따로 노는게 아니다. 진실을 미화시키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 대중의 관심없이 언론이 혼자 가는 것은 아니다. 

*미투의 사회분위기 때문에 책의 선정이 시기적절하다. 위트와 반어법이 책의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보면 흥미롭겠다.

*서술방식, 등장인물의 이름, 사건의 흐름 때문에 읽기가 힘들었다. 읽다가 분통이 터졌는데 우리나라는 더 심하다. 뉴스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같이 분노해야 한다. 이런 류의 소설이 우리나라에도 꾸준히 나오고 언론을 감시하는 단체가 있었으면 한다.

*빌트지가 나쁜 언론이라는 것을 전세계로 알렸으니까 뵐은 성공했다.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언론이다. 가십위주의 타블로이드 신문이다. 뵐은 47그룹의 멤버로 전후 독일문학을 이끈다. 이차대전에 대한 반성을 하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문학을 한다. 현실 그대로의 문학, 날것의 현실을 보여준다. 소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하층민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상황을 파고 들어 가면 보수언론은 썩어빠졌다. 보수언론은 돈과 힘이 있는데 명료하게 답을 주니까, 진리라고 착각하기 쉽다. 내 입장에 맞춰서 언론을 보아야 한다. 나는 어떤 계급이고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언론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미디어 비평을 해야한다. 여러 번 읽을 수 있는 책이 고전이다. 고전의 힘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몇 번이고 읽어야 한다.

댓글목록

김민호님의 댓글

김민호 작성일

"사람이 죽었습니다. 사람이!..."

누군가 이 작품을 보고 이렇게 하소연할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노벨상이라는 후광을 받은 채 널리 읽힐 때, 어느 경건한 인도주의자는 그렇게 저항했을 것이다. 어쩌면 '빌트'지의 사주를 받은 비평가는 그 점을 파고 들며 카타리나의 살인이 과연 문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지, 오히려 테러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닌지 따졌을 지도 모른다. 혹은, 작품을 사적인 복수의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비난하며 '문학의 도구화'를 개탄했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널리 읽힌 만큼 그렇게 논란도 많았으리라.


그렇게 10년을 견디고서 저자는 후기를 썼다. 여기서 저자의 성정이 잘 드러나는데, 저자의 결기는 하나도 죽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작품을 허구인 소설로 읽지 말 것을 주문하며, 불가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현실 이야기이자 정치적 팜플렛임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계속 싸우겠다는 소리다.
 

좋다!... 하지만, 그의 싸움이 공공의 적을 향한 것이라면, 이 작품은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적어도 살해당한 자의 명예(생명의 존엄)를 생각해야 했으며, 언론의 폭력뿐만 아니라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도 공평하게 고려했어야 했다. 또 왜 언론이 개, 돼지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지 그 이유도 함께 물었어야 했다. 하지만, 카타리나의 인격과 행동이 일방적으로 정당화된 나머지 두 언론인(저자에 의해 악마로 표상되었지만, 이들은 명백한 언론인이다)에 대한 살인이 지극히 온당한, 혹은 사필귀정의 사회적 복수로까지 간주될 정도다.


실제, 모임에 참석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살인'에 대한 도덕적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언론인, 아돌프 쇠너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물론 이는 이야기꾼인 소설가의 역량이기도 하다. 얼마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잘 지어내었으면 그럴까. 하지만, 사심을 너무 드러낸 나머지 이 작품은 알고보면 헛점이 많다. 특히, 작가의 주장대로 이 작품이 정말 소설이 아니라 정치적 팜플렛이라면 더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도무지 정치적 정당성(법리)과 해법(타협)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의견에 대해 죽은 저자가 살아서 오늘날 후기를 또 쓴다면, 어떤 얘기를 할까. 난 적어도 저자가 여전히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둥, '정치적 발언'이라는 둥, 그런 소리는 안 했으면 좋겠다. 특히, 충분히 읽혀 복수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제 다시 문학의 정신으로 돌아가 이 작품을 재평가했으면 좋겠다.


문학의 정신이란 뭔가?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문학만이 가지는 그 제한없는 상상력을 고려할 때, 그건 아마도 '자유'이지 싶다. 저자 당신이 사심을 듬뿍 담아 쓸 수 있는 것도 문학의 그 정신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문학이 때론 무기가 될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독자는 문학을 통해 당신의 사심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녹아 있는 당신의 자유에 전염되어 스스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바로 당신이 창조한 카타리나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로써 존엄과 명예를 가진 인간으로, 언론의 폭력에 맞서는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문학이 저항이자 무기가 된다는 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 저자여.. 이제 안심하고 편히 잠드소서..

김민호님의 댓글

김민호 작성일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수독 모임도 하나의 작은 언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언론의 중심인 묘희샘의 역할과 수고에 늘 감사하며 제 후기 이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