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독서회

3월 2주 독서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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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손병철 작성일18-03-18 12:26 조회392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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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서 : 교수대위의 까치. / 진중권 저

날   짜 : ​3월  14일  오후 7시

참석자 : 박소연, 주묘희 김석화, 박근수, 박은수, 김지선, 김금옥, 조미영, 김민호, 정종임, 하천욱, 마종윤, 사회자 총 13명 참석

사회자 : 손 병 철​

다음책 : 3월 4주  - 이상한 정상 가족​/ 김희경저

             4월 2주  - 조난자들 / 장강명저​

 새로운 분야, 새로운 시각을 배운 것 같아 좋았습니다. 우선 각자 느낀점을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

 선정 그림이 유명치 않아, 잘 모르는 그림 이어서 당황, 그동안 쉽게 본 그림 속에 많은 내용 숨어 있었다. 그림 속에 작가는 의도를 가지고 그렸으며, 그 의도를 알 때, 그림의 느낌자체 까지도 달라진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림책 역시 쉽지 않았으며, 뒤틀린 사형대가 인상적이었다.

  진중권의 책을 보는 계기가 될 듯. 그림 해석이 특이 했다. ‘폰크툼’(도상학적, 일반적), ‘스투디움’(개인적인 느낌, 특이적) 중 스투디움이 중요 한 것 같다. 나름의 개인 그림 콜렉션 해보고 싶었다.

  자기만의 시각으로 본 소신에 대한 작가의 자신감 느껴진다. 한국미술의 상업적 행태에 대한 분노가 생긴다.

  그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즐거운 교양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교수대는 남의 말을 한사람이 당하는 벌이라는데, 남의 말을 하는 사람은 곧 밀고하는 사람이란 뜻에 놀라움 가졌다

  글이 어려운 편이며, 그림도 너무 작거나 어두워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성경을 스토리로 접근 해보고픈 생각 들었다.

  지식이 많으면 감동은 적어지는 것 같다. (진실), (도덕적 행위), (--> 으로 가기위한 매개체 또는 동기로 가 필요)에 대한 해석이 생각난다.

  ‘회화는 그려진 시라는 페이터의 말처럼 그림은 스투디움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림을 제일 먼저 보고 그다음 제목을 그다음은 설명을 듣거나 본다, 그림의 대할 때 들어오는 그 첫 느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예술감상에 수준층은 없다고 생각한다.

  미술 문외한으로 작가 진중권에 비중 가지고 읽었다, 역시 저자의 발칙과 불경스러움이 드러나는 작가 닮은 책이었다. 도서내 그림을 보며 왠지 <누구든지 저와 같지 않다면>빨간머리의 소년은 아무리 보아도 소녀같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보편적인 화풍에 반하는 작품에 끌린다. ‘빨간머리 소년은 왠지 그 눈과 인상이 싫어진다. 마야의 시녀들은 직접 보았는데 보는 즉시 감동이었다. 개인적으로 램브란트의 빛 과 그림자를 좋아한다.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는 어렵지만 좋은 책. 주관적 감정은 좋다고 끝날 수 있지만, 객관적 지식가질 때 해석이 가능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림도 자기 틀이 있다.

 

그 외 푼크툼스투디움이란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하며, 기초적인 푼크툼을 갖추고 스투디움을 가질 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지각을 넓힐 수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현대예술의 미래가치는 다분히 정치적, 상업적 이어서 평론가와 갤러리의 농간에 의한 수가 많다는 이야기 등으로 여전히 수독은 빤짝이는 눈과 살아있는 정신으로 밝고 즐거운 배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댓글목록

손병철님의 댓글

손병철 작성일

'푼크툼'과 '스투디움'의 뜻이 바뀐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책을 돌려주고 없는 가운데 후기를 적어며 그날 기록한 내용들을 정리하다 보니 이런 큰 실수를 했군요.
 지적 감사하며, 어려운 단어로 머리에 잘 안들어 왔는데 개인적으로 기억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박근수님의 댓글

박근수 작성일

풍크툼-> 개인취향, 스투디움-> 있는 그대로 보기...정의가 바뀌었습니당.....프랑스 철학자가 정의한 명칭이니 우리는 우리대로 '주관적 몰입', '객관적 수용' 정도로 읽어도 될 것 같습니다..

나의 풍크툼은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김민호님의 댓글

김민호 작성일

이 책을 나름 재밌게 읽었다. 진중권이라는 이름 석 자가 어쩌면 내겐 이미 재미를 보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미술에 대해 뭘 알아서 재미를 느낀 건 아닌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미술에 대해 쥐뿔도 아는 게 없다. 몰라도 너무 몰라 가끔 내 나이를 생각하면 한심해지곤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뭘 보고 재미를 느낀 걸까. 굳이 따지고 든다면, 나는 그가 걸어 놓은 작품에 반하기보다 그의 현란한 말빨(?)에 홀렸던 것 같다. 수수께끼 같은 그림들을 걸어 놓고, 탐정처럼 의문의 단서들을 하나하나 찾아내는 그의 스타일이 좋았다. 그림들이 발칙하고 불경스러울수록 그의 기지는 더욱 빛났다. 감동보다 지적 유희를 선사하는, 아니 그 놀이가 너무 재미있어 감동적이기까지 한 그런 책이었다.

그런데 이제 막 섹스를 끝낸 10년 차 부부처럼 책을 덮자마자 물밀듯이 밀려오는 이 허탈감은 뭐지? 모임을 마치고서도 또 한번 들었던 그 느낌의 정체를 나는 종잡을 수 없었다. 사실, 이런 느낌이 엄습해 오리라는 불안은 책 읽는 도중에도 살짝살짝 들곤 했다. 뭔가 축적되지 않고 묻히고만 있다는 느낌. 그래서 샤워를 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히 지워질 것 같은 그의 얘기가 난 불안했던 것이다.

물론, 그의 탓도, 미술에 무지한 내 탓도 아니다. 어느 예술도 마찬가지겠지만, 이는 예술 작품이 돈이 되고 때론 권력이 되면서부터 생긴 일종의 ‘소외 현상’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예술이 대중들에게 ‘교양’으로 팔리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된 셈이다.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그 지식마저도 장식처럼 달고서 인정투쟁에 나서야 하는 현대인들…. 참 피곤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은 한탸가 또다시 그립다. 사무치도록…. 그는 비록 폐지 압축기에서 스스로 고독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삶은 예술로 충만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폐지 더미에서 찾아낸 소중한 책들을 비록 복제화였지만 명화들로 감싸며 꾸러미를 만들던 그의 모습. 그의 몸에선 지린내가 진동하고, 주머니에선 생쥐가 튀어나올 정도로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지만, 그가 진정 교양인이었음을 한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교양이란 안으로 축적되는 것이지 밖으로 날리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한탸의 문장에서 찾아 읽어 본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 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김민호님의 댓글

김민호 작성일

병철샘과 함께 있으면 어려운 얘기도 편하게 할 수 있어 늘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임도 좋았구요. 이건 예의상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샘한테서만 느끼는 저의 푼크툼입니다. 그런 점에서 샘의 후기에 적힌 '푼크툼'과 '스투디움'에 대한 정의가 뒤바뀐 것은 아닌지 또 편하게 알려드려 봅니다. 늘 편한 언덕이 되어주시는 샘을 존경하며... 제 후기 이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