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독서회

3월 4주 수요독서회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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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늬바람 작성일18-03-23 14:25 조회180회 댓글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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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저자 : 김희경 / 출판사 : 동아시아

시간: 3월 28(수) 오후 7

장소: 에코토피아

 

 

​처음 독서회 사회를 맞은지라, 제가 공지 해야한다는 걸 모르고 있었네요.

왠지 싸~한 느낌이 들어 살펴보니 공지글 쓰신 분과 후기글 쓰신 분이 일치한다는 걸

방금 알았습니다. ^^;;;

​신참의 미흡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옵기를~

이번 독서회의 글감은 효자손 또는 때수건 같은 책입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도 하고,

강력한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무리 깔끔한 사람도 마음의 때가 드러나고야 마는

두 시간을 활활 태울 흥미로운 책입니다.

반가운 얼굴, 따뜻한 수요일 밤에 뵙겠습니다~​

* 참석 여부는 댓글로 남겨주시면 좌석 준비와 음료 준비에 도움이 됩니다!

* 읽을 책은 인디고 서원에서 구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참석 시 1인 1음료 주문으로 장소와 함께 합니다!   ​

 

 

댓글목록

김금옥님의 댓글

김금옥 작성일

이상한 정상가족 /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몇 해 전 수영을 배우면서 스친 소녀가 있었다. 덩치가 매우 큰 엄마와 말라서 뼈가 앙상한, 제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소녀였다. 반짝이는 수영장 물에 반사된 그림자로도  대조적인 장면이었다. 엄마의 매서운 눈초리를 곁에 두고 ‘물’을 그토록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무조건 수영을 배우라고 떠미는 모습이 너무 거슬려 선배노릇을 하며 아이엄마에게 조심스레 훈수를 두었다. 아이가 물을 무서워하니 함께 물에 내려와 하시라고...아니면 선생에게 맡기고 가만히 있으시든지....반대편에서 물에 들어가기를 주저하는 아이의 머리를 억지로 수영장 물속으로 밀어 넣으며 내밷는 말들이 얼마나 살벌한지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이를 레인 건너편으로 데려가기 위해, 가까스로 벽에 메달린, 빼빼마른 살집 하나 없는 소녀를 안았을 때 그 가벼움에 놀라고, 나의 몸에 착 감기며 안겨 붙는 아이의 떨림을 느끼며 이 소녀가 두려워하는 건 ‘물’이 아니라 ‘엄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렇다면 어쩌나~ 이토록 떨고 있는 아이를 어찌해야하나’...맘이 너무 불편했지만 세세하게 알기엔 모두가 바빴다. 몇 번 더 소녀를 보면서 혹시 이 아이가 학대받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러하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스럽기도 했고...그러나 아이 엄마라는데~ 설마 하면서 좀 더 지켜보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수영장 주말수업 자체가 폐쇄되어버리고 더 만날 시간도 갖지 못했다.

 그날 이후 못난 스스로를 떠올리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한 그 순간을 후회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니 그때 그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무서워하던 소녀가 생각나 미안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를 안아주지 못해 안타까웠다. 부디 좋은 연결고리를 만나 떨고 섰던 그 소녀가 평화를 찾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아동인권의 관점에서 가족과 공공성을 생각해보는 이 책의 노력이 정책과 제도로 확실하게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경쟁과 수익 창출이 지상과제일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장소는 공적인 삶이 이뤄지는 곳이기 십상인데 그 대가는 크다. 동네의 놀이터와 골목길은 아이들이 공적인 삶을 배우는 공간이다. 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목적 없이 놀면서 아이들은 낯섦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차이를 협상하고 갈등의 타협점을 모색한다. 그렇게 민주적인 마음의 습관을 키운다. 그런 물리적 공간이 아이들에게 필요하다.(75)

나는 미혼모가 양육을 선택하지 못하고 아이를 버리게 되는 첫 번째 이유로 출산은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일어나야만 정상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벗어나면 ‘비정상’과 ‘부도덕’으로 몰아세우는 한국의 가족주의를 꼽겠다. 한국의 가족주의는 소위 ‘정상가족’인 가부장적 가족만 인정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다.(115)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비혼과 무자녀 가족이 늘어난 요즘 결혼이 출산으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면 차라리 출산과 양육을 잇는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127)

가족 안팎에서 아이들을 둘러싼 폭력과 차별의 배후에 똬리를 틀고 있는 ‘정상가족’주의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두 가지 질문을 품게 됐다. 첫 번째, 왜 우리 사회의 가족은 개별성을 존중하지 못할까. 아이의 개별성에 대한 존중이 없으니 과도한 통제와 체벌, 학대, 과보호 등 관계에서 신체적, 정서적 폭력이 잦다. 두 번째는 왜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할까 하는 점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내치는 배타적 태도와 차별, 편견은 왜 약화되지 않을까.(162)

나는 모두가 ‘용 키우기’에 달려드는 대신 미꾸라지들이 사는 개천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자는 강준만의 문제의식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태어난 계급의 격차가 삶의 여러 기회를 차단하고 아무리 ‘노오력’해도 소용없는 ‘헬조선’이 굳어질수록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개천의 미꾸라지들,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다. 빈부의 양극화가 교육, 주거, 생활의 모든 면에 걸쳐 분리를 가속화할수록 그에 따른 희생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집중된다. 인권과 평등의 가치를 앞세운 민주주의도 ‘겉만 번지르르한 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179)

“자녀가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이 대신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선택해왔다. 덕분에 아이는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가진 성인이 됐지만 결정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갖출 기회를 놓쳤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무엇을 결정하지도 모험하지도 못하는 어른이 되어 세상에 나갈 문 앞에 서게 된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했던 일들이 사실은 아이에게 독이 되어버린 아이러한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186)

“폭력 없이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우리가 영원한 평화의 상태 안에서 살아갈 새로운 인류를 만들 수 있을까요? 아마 어린이 책 작가들만이 그렇다고 대답할지도 모릅니다. 그건 유토피아겠지요. 이 가난하고 아픈 세상에서 평화를 원한다면 해야 할 다른 많은 일들이 있음을 압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전쟁 중이 아닌데도 세상에는 잔혹함과 폭력이 가득하고 아이들도 여기에서 눈감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도 이 폭력을 매일 보도 듣고 읽습니다. 그리고 결국 폭력은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믿게 될 것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고 우리가 집에서부터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여주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요? 결코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부엌 선반에 작은 돌을 올려두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일 것입니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는 세계평화에 대한 작은 기여가 될 것입니다.”(린드그렌의 연설,211)

복지국가의 사회적 계약에서 드러나는 개인-가족-국가 간의 관계유형을 비교해보니 미국은 개인-가족의 관계를 중시하고 독일은 국가-가족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스웨덴은 국가-개인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발표자들은 이처럼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가 중심에 있는 스웨덴 식의 사회적 계약 방식을 ‘국가주의적 개인주의statist individualism'라고 불렀다. 여기서는 개인의 자율에 대한 강조가 국가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신뢰와 상반되지 않는다. 되레 국가는 시민들의 동맹으로서 개인의 자율성을 수호하는 조력자다. 오히려 개인들 사이에 위계와 불평등이 심한 전통적인 가족의 가부장제가 국가주의적 개인주의자들이 맞서야 할 상대다. 어떤 학자들은 이 같은 스웨덴의 국가주의적 개인주의를 ’차가운 신뢰cool trust'라고 불렀다.(223)

“네 이웃과 적을 죽이지 마라. 설령 그들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정책과 규범이라야 한다. 그것이 제2의 본성이 되어 감정이입에 굳이 호소하지 않아도 되어야 한다. 감정이입의 확대보다 권리의 범위 확대가 더 중요하다.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의 선을 정하는 게 먼저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상해보는 공감의 감수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이를 개인의 도덕적 과제, 감성의 영역으로만 남겨두어선 안 된다. ‘우리’의 폭을 넓히려는 교육이 공교육에 제도적으로 포함되어야 하고 <차별금지법>,<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게 우리를 같이 살아가게 해주는 공감의 제도화다. 역지하지하고 공감하는 능력보다 사적 관계에선 예의, 공적 관계에선 정책과 제도가 우리의 공존을 가능하게 해주는, 더 인간적인 장치다.(257)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장소,환대>에서 이 공공성을 ‘절대적 환대’라는 말로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가 설명한 절대적 환대, 즉 공공성의 창출은 “타자의 영토에 유폐되어 자신의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일, 그들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자리를 주는 일, 즉 무차별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사회 안에 빼앗길 수 없는 자리/장소를 마련해주는 일”이다. 그는 뒤르켐의 말을 인용하여 “공공성이 강화될수록 사생활의 자유는 오히려 커진다”라고 설명했다.(264)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미래의 낯선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존재의 의미를 다음  세대에, 아이들에게 빚지고 있다.(267)

하늬바람님의 댓글

하늬바람 댓글의 댓글 작성일

200% 공감합니다. ^^*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작성일

장성희 님, 황지영 님 참여 전화로 말씀주셨습니다!

김민호님의 댓글

김민호 작성일

1. 친근하고 겸손하다 못해 싼 티가 나는 표지처럼, ‘정상가족’을 넘어 가족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이 책은 언뜻 보기에 참 편해 보인다. 그래서 심드렁하게 읽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라고 할까. 읽는 내내 불편했다.

‘내 가족만큼은 절대 건드리지 마라!’고 주인공 사내가 비장하게 한마디 하지만, 영화는 그럴수록 잔인하게 흐르듯이, 이 책도 꼭 이와 같았기 때문이다. 가족주의의 망령이 그칠 줄 몰랐던 내 가족의 내밀한 가족사를 돌아보게 되고, 부모인 위를 봐도, 아래인 자식을 봐도, 그 적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오늘의 신세가 괴로웠다.

이처럼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때론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피하고 싶은 유혹이 거부할 수 없는 춘곤증처럼 생겨난다. 하지만, 봄이 왔다고 누구나 봄날을 사는 게 아니듯이 사람답게 살려면 피할 수 없다. 끝없이 날 돌아보는 수밖에….

2. 회초리 대신 돌멩이를 들고 온 아이 이야기를 읽고서 결국 울컥했다. 내 아이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내 아이에 대한 폭행(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체벌도 아니었다.)을 멈춘 계기는 아주 단순하다. 내가 얼마나 한심한 부모인지를 절감했을 때였다. 자신에 대한 분노를 자신의 형상을 닮은 또 다른 자기에게 퍼붓는 꼴이라니…. 그래서 부모는 본질적으로 투사하는 존재이다.

투사의 연대기. 이것이 가족 신화를 이루는 구조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 안에 내면화한 부모의 모습과 싸우고, 달래고, 도망치고, 이해하는 과정이 곧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성장의 과정이다. ... 나는 그 과정을 어떻게 치러내는가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라고 한 작가의 말은 깊이 새길만 하다.

3. 그럼에도 가족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혈육이어서 그런가. 착각하지 마라. 여전히 가족이 전적으로 날 먹여 살리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가족이 아닌 다른 무엇이 날 먹여 살려 준다면, 날 살아있게 해준다면 나는 가족을 헌신짝처럼 버릴 놈인데도 말이다. 나만 그런가. 우리 일상을 둘러보라. 돈 때문에, 사랑 때문에, 혹은 출세를 위해, 자신의 종교와 신념, 심지어 조국을 위해 가족을 버리는 일도 과거에는 심심찮게 있어 왔지 않은가.

굳이 ‘도구적 가족주의’라고 명명하지 않더라도, 원래 가족이란 게 그렇다. 날 살아있게 해주는 한에서만 가족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가족 말고 날 살게 하는 것이 하나둘 늘어날수록 꼭 그만큼 가족의 울타리에서 걸어 나왔던 것 같다. 다만 그게 아직 돈이나 출세 같은 속물적인 것이 아니어서 다행일 뿐이다. 나도 작가처럼 국가가 날 먹여 살려주길 바란다. 그럼으로써 내가 가족으로부터 독립되고, 독립된 내가 다른 독립된 개인과 연대할 수 있길 고대한다.

하지만, 아직 난 국가가 가족보다 덜 미덥다.

손병철님의 댓글

손병철 작성일

참석합니다.

김석화님의 댓글

김석화 작성일

참석합니다

주묘희님의 댓글

주묘희 작성일

공지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리 말씀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참석하겠습니다.

하늬바람님의 댓글

하늬바람 댓글의 댓글 작성일

미리 여쭙지 않은 제 실수입니다. ^^
요즘 낮의 생활이 쉽지 않아서 제가 경황이 없었습니다.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요일에 뵐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