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독서회

4월 4주 독서 웅크린 말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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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묘희 작성일18-05-02 22:34 조회85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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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손병철 정광모 김석화 박소연 김지선 주묘희 김금옥 김민정 하천욱

 

책을 편하게 읽지 못했다. 마음이 답답했다. 감정적인 언어보다 르포로 접근하고 싶었다. 시사는 시사로, 문학은 문학으로.

 

그래서 읽기가 힘들었다. 시사고발 내용을 봤을 땐 갑갑했다. 버거움, 복합적인 짜증, 그럼 어쩌라고.

이번 독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치밀어 오르는 울화와 그럼 어쩌라고로….

저자 이문영은 관심이 가는 기자다. 글을 읽다 보면 남다른 글로 내게 다가오는 기자가있다.

그런 사람의 커가는 과정을 지켜 보는 것은 독자로서 또 하나의 기쁨이다. 타인의 고통은 애써서 배우지 않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고 본다. 우리가 가진 행운에 대해 성찰, 반성과 더불어 겸손하고 또 겸허 해야 한다. 그것이 작가가 치열하게 현장에서 채집하여 문학으로 절절하게 이글을 남긴 이유다. 삶의 밑변을 목숨을 걸고 지탱하는 이들의 가혹한 현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책표지부터 달랐다.

글자가 깨져 있다. 가려져 왔던 이야기들을 암시하는 제목 같다고나 할까. 조심스레 읽기 시작했고 뒷부분으로 갈수록 읽고 말겠다는 의지로 하나로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세월에서는 목놓아 엉엉 울었다.

해피콜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계란, 미결, 제휴 인력, 넘어가다.

아침마다 먹는 계란 후라이. 며칠 동안 계란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렇게 웅크린 말들이 나의 일상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커피를 마시다가 건너편 건물에 촘촘히 매달려 있는 실외기를 보면 마음이 쿵 내려 앉는다. 안전 장치 없이 추락하는 날개 없는 인간 새. 사람의 목숨이 새의 깃털보다 가벼울 수 있다는 생각에 또 한번 심장이 쪼그라든다.

올 초에 이 책을 읽었는데 가슴 중앙에 날카로운 얼음 송곳이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시공간적으로 꼼꼼이 연재했었다. 우리 일상의 사각지대에 있는 소수자나 약자를 살펴 보았다. 20년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백골에서 죽은 사람의 입을 빌려 서술하는 문장이 놀라웠다. 두번째 읽을 때에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사건 말고 이야기로 접했을 때 느낌이 또 달랐다. 알고 있는 지식을 경험 안에서 맥락을 잡고 서사화 하라. 근접해서 다가가야 그 사람이 되어 걸을 수 있다.

사건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냈을 때 또 다른 감동이 나를 들었다 놓았다 하였다.

오랜 시간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것은 무언가 말해질 필요가 있다는 직감.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들. 나는 스스로 중요한, 혹은 전문적인 작가라기보다 그저 빈 곳을 메우는 사람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고통에, 참혹한 사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비트겐슈타인은 내가 쓰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아는 세상의 한계라고 했다.

농노리아, 강도리아, 등골빼네.

이 책을 앍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갈 뻔 했다.

두 세계를 구성하는 두 언어가 있다. 언어는 거울이면서 거짓이다. 삶을 비추기도 하지만, 삶을 비틀기도 한다. 삶과 조응하기도 하지만, 삶을 조롱하기도 한다.

나와 가치관이 절대 좁혀지지 않는 업체의 사장님과 두시간을 이야기하고, 너무 피곤하여 24시간을 내리 잠만 잤다. 사람을 만나면서 이렇게 힘들 수 있구나 생각했다.

개인의 경험에서 뼈 속 깊이 체득한 자기만의 이야기(경험)는 깨트리기가 힘들다. 그래서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회적 합의와 신뢰로 이 모든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후기를 적는 이 순간 또한 무거운 마음은 하루 종일 내리는 비와 더불어 우울의 극치에 달한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것을 왜곡하거나 부정함으로써 상황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행복만 삼키고 불행은 내뱉는 감탄고토의 자세가 결국에는 성장을 방해한다. 부정적인 에너지는 아예 침투하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 안에서 시시각각 일어나는 어두운 감정들은 어디로 갈까. 감정은 어떤 방식으로든 분출을 원한다. 분출의 물꼬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언제가는 온갖 억압된 감정들이 쏟아져 나와 더 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다.

가난한 꿈의 연표에서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 온다.

발을 쓰는 것들은 열심히 발자국을 찍어야 사라진 뒤에도 길에 남을 수 있었다.

쓰는 것들이 어찌 발 뿐이랴.

나의 두 눈, 머리, 가슴, 열손가락.

갑자기 힘이 쏟는다. 이 책은 결코 웅크린 말들이 아니었다. 가슴을 활짝 펴고 일어나는 말들이었다.

 

댓글목록

김금옥님의 댓글

김금옥 작성일

수고하셨습니당~~

‘없음’에서 ‘있음’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존재가 드러날 때 비로소 아픔이 길이 될 수 있다고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가 말하듯이 ‘웅크린 말들’은 어쩌면 그들의 ‘말’이다. 그들의 말을 그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함께 그 ‘말들’을 드러내고 배우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면 ‘사회적 약자’가 되는 길이 생각보다 곁에 있기도 하고 또 현재도,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저주받은 비극의 눈을
그 축복'을 글로 쓰는 이 '이문영'

<나는 거미줄을 쓰네/문정희>
산다는 것은
거미줄을 타고 오르는 것
곡예를 하듯 오르고 또 올라가보면
아무것도 없지
허공뿐이지

시를 묻는 젊은이에게
이렇게 답장을 써서 보내고
돌아서서
나는 또 시를 쓰네

산다는 것은
시를 쓰는 것은
거미줄을 타고 허공을 오르는 것이라고

거미줄에는 이슬 몇 알이 전부
하지만 그 거미줄과 이슬이
어느 거대한 건축보다 부동산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는
저주받은 비극의 눈을
그 축복을 시로 쓰네

나는 시를 쓰네
나는 시를 사네

정광모님의 댓글

정광모 작성일

자세한 후기가 기억을 되살리네요. 이문영은 자신만의 집요한 취재 능력과 고유한 문체를 지닌 드문 신문 기자이다. 공간과 현장에 대한 충실성과 매력적이며 단단한 문체가 함께 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의 글은 드물게도 이 두 가지를 성공적으로 겸비하고 있다. (4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