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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52. 봄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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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03-28 00:01 조회2,1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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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두 번째 인디고 러브레터



봄의 기적 이윤영(인디고잉 편집장)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펴게 되는 따뜻한 햇볕이 행복하게 느껴지는 봄이 왔습니다. 가벼워진 옷과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어쩜 이렇게 기분 좋은지요. 피어나는 꽃들과 돋아나는 새싹이 황홀하게 느껴지는 나날입니다. 문득 제가 봄이 오는 것을 이렇게나 반겼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계절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하는 탓에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봄을 기다리거나 봄이 왔다고 기뻐하기는커녕, 봄은 제게 늘 ‘겨울이 가서 아쉬운 계절’이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무엇 때문에 이번 봄을 이렇게 기다려왔는지 불현듯 궁금해지더군요. 얼마 전 인기리에 방송되던 TV 프로그램이 출연자 한 사람의 죽음으로 폐지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직 조사 중이지만, 기존에 그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던 논란 지점에서 촉발된 일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안타까움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드러난 문제지점 때문에 TV 프로그램은 폐지를 맞는데, 왜 더 수많은 사람이, 셀 수도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생명이 죽어가는 곳들은 폐지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땅에 도대체 얼마나 더 성적을 비관하거나 경쟁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많아야 이 교육제도는 폐지될 수 있는 것인지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죽고 고통받아야 핵발전소는 가동을 멈출 것인지요? 2011년 일어난 아랍의 봄 이후 중동에서는 계속해서 시민들의 저항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을 저지하는 것은 ‘한국산 최루탄’이라 합니다. 시민혁명을 이끌어낸 자유의 가치와 정신이 다른 나라들에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을 막아선 독재정권의 진압기술들이 수출되고 있습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 엄청난 기술 앞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폐지하여 책임을 질 수 있는지요. 이 글에서 다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상황의 심각성을 고발하거나 증명하는 일들이 아직 이 세계에는 만연해 있습니다. 어떠한 과정이 가지고 있는 병폐가 가장 극단적으로 좋지 않은 선택을 초래하게 되었을 때, 그것은 선택할 여지 없이 즉각 중지하고 깊게 생각해야 문제입니다. TV 프로그램의 사례처럼,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일은 도대체가 용납이 안 되는 선택이어야 합니다. 만주에서 정세청세를 열기 위해 5일간 만주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는 일제 강점기 도저히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었던 극악무도의 시절,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저항하고 투쟁했던 사람들의 역사가 묻혀 있었습니다. 저 멀리 만주의 땅에서 항일운동을 하다 스러져간 3천여 명의 사람들, 일본의 침략에 처참히 살해되었던 중국 인민들, 참혹한 현장에서 치열하게 저항했던 전사들. 그 마음을 헤아리면 서늘하게 느껴지는 기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러한 기운을 안고 귀국하던 날 들어와 열어본 인터넷의 검색어 1위는 ‘2.28 대란’이었습니다. 이동통신사들의 영업정지가 시작되는 3월 하루 전날, 엄청난 보조금을 투여하며 가격폭탄할인을 실시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생긴 해프닝이었습니다. 순간 섬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버려질 엄청난 양의 기계들을 생각하면 대란입니다, 엄청난 대란입니다. 이 순간에 혹시 우리는 폭리를 취하던 통신사들에 낮은 가격을 지불하며 소비자의 권리를 다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이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권리입니다. 노동착취와 환경파괴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휴대전화기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미화될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봄을 이야기한다면서 너무 어둡고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은 우리는 이미 윤리적 선택을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 인간적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많은 사례들이 증명해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인류가 윤리적인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다만 잘못된 윤리적 정당화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내가 하는 선택과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근거들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끊임없이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분명 힘들고 어려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봄의 기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T.S. 엘리엇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습니다. 시인은 아마도 얼었던 땅을 열고 새 생명이 태어나는 희망을 꿈꾸어야 하기에, 불가능할 것 같아 보이는 새로운 도전에 부딪혀야 하는 계절이기에 역설적이게도 ‘잔인한’ 달이라 표현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합니다. 탐색전이 끝난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서열을 세우기 위한 학교폭력이 급증하는 달이기 때문이랍니다. 대학생들도 올해 첫 중간고사를 치르는 시기이지요. 저 역시도 늘 시험기간에 흐드러지게 폈던 벚꽃은 시험이 끝나면 이미 지고 있었던 기억뿐입니다. 그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이 봄을 기다릴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봄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경쟁과 싸움이 시작되는 계절이기에 ‘더욱 잔인한 달’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옵니다. 이미 우리 곁에 성큼 찾아온 봄을 우리는 어떻게 맞이하면 좋을지요? 적어도 아랍에 불어오는 봄의 기운을 막아서는 전술과 무기를 수출하여 GDP를 올리는 것으로 봄을 느끼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이렇게나 아름다운 봄을 시험기간과 서열경쟁의 시기로 지나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봄은 ‘정말 잔인한’ 봄일 뿐입니다. 봄의 기적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길 꿈꿔봅니다. 아름답고 찬란한 봄을 만끽할 수 있는 우리는 분명 전 세계에 봄의 기운을 부르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만큼,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자랑스러운 일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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