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고 러브레터

letter 53. 2014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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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06-25 14:46 조회3,1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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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세 번째 인디고 러브레터



2014년 4월 16일 이윤영(인디고잉 편집장) 2014년 4월 16일. <인디고잉> 43호 대부분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약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잊히지 않는 저 날의 기억이 여전히 우리 모두의 온몸을 휘감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사를 작성하고 교정을 보는 내내 열두 번도 더 차오르는 눈물을 멈출 방법을 저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차가운 바닷속에 갇혀있는 12명과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오늘도 잠을 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만으로도 이겨내기 버거운데,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참사들은 좀처럼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고 돌아보니 세월호 참사가 특별할 것 없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문제적 사건들은 모두 하나같이 시간만 지나갔을 뿐, 아직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야, 얼마만큼의 충격과 고통을 겪어야 이 모든 잘못들이 변화의 기점에 들어설 수 있을까요? 지난주, 밀양의 송전탑 건설 반대를 위한 촛불문화제에 참여하였습니다. 매주 열리는 문화제이지만, 이번에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가야겠다 마음먹은 것은 6월 11일에 벌어진 사건 때문입니다.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밀양 주민들이 만든 농성장을 경찰 2천 명이 투입되어 강제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이 시행되었습니다. 말이 좋아 행정대집행이지, 너무나 무자비한 무력행사였습니다. 속옷마저 다 벗은 채 온몸에 쇠사슬을 걸고 필사적으로 저항했던 할머니들은 가차 없이 들이대진 칼과 절단기에 속수무책으로 농성장에서 끌려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시민활동가, 인권위, 변호사 모두 무력할 뿐이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10년 가까이 고향 땅에서 버티며 지켜왔던 수많은 의미들이 단 몇 분 만에 철거되었지요. 그건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이 폭력을 용인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촛불문화제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밀양의 '덕촌댁 할매'는 미안하다 하셨습니다. 농성장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럴 힘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문득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이 청와대 앞에서 죄송하다고, 그러니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은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한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나오지 못해 죄송하다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왜 이들이 미안해야 하는 세상이란 말입니까. 저는 이제까지 집회를 막아선 경찰들 역시 피해자라 생각했습니다. 악에 받쳐 이유도 모른 채 곤봉을 들어야 하는 그들 역시도 시스템의 희생자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아닌 것 같습니다. 농성장에서 끌려 나와 정신을 잃고 쓰러진 할머니들께서 숨이 가빠 다급히 들것을 요청하는 외침에 "나도 숨이 가쁘다"고 비아냥거리는 것을 왜 이해해야 하는지요? 작전을 마치고 카메라를 향해 승리의 V를 그리는 이들을 '수고했으니 그 정도 마음은 이해'해줘야 할 만큼 우리 사회는 바닥이란 말입니까?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나치가 정확히 그러했습니다. 그것은 상부의 명령이었을 뿐이고, 자신들은 그 명령에 따른 시스템의 희생자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그 정도로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장 극단적인 역사가 만들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이것은 예측 가능한 징후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우연이 아니었듯, 우리 사회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참사는 이미 예측 가능한 것들입니다. 지난 <인디고잉> 42호의 표제는 "하얗게 웃어줘 대한민국 청소년"이었습니다. 이 말이 무색하게 된 우리 사회가 참으로 야속합니다. 그런 상상을 해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순간 기업들이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완화된 규제를 스스로 재정비하는 그런 장면을 상상합니다. 핵발전소 역시 우리가 책임질 수 없는 일임을 인정하고 모두 가동 중지를 선언하는 정부를 기대합니다. 세월호처럼 우리 사회에서 ‘말할 수 없는 자들’이었기에 손도 써보지 못하고 수장당했던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돌이켜 보는 사회 분위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용산에서 황망히 죽어간 이들을, 해직되어 생을 포기한 노동자들을, 으스러져 간 모든 이들의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이는 그런 사회를 꿈꿉니다. 가슴을 울리는 시 한 편이,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영화 한 편이,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연설 하나가, 절박한 울음을 담은 하나의 죽음이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상식적이지만 영적인 순간이 우리 사회에 도래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축구선수 디디에 드록바는 2006년 월드컵에서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조국을 향해 축구경기가 있는 단 일주일만이라도 전쟁을 멈춰 달라 호소했습니다. 그의 메시지에 거짓말처럼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이 멈췄습니다. 드록바를 '드록신'으로 부르는 이유이지요. 저는 우리 사회가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디디에 드록바가 있기를 바란다기보다, 그의 메시지를 듣고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사회이길 꿈꿉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청소년들과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점은 아이들이 겪고 있는'무력함'과 '피로함'이라는 것입니다. 침몰사건이 일어난 직후의 슬픔은 본능적인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애도가 굉장히 형식적임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수학여행을 취소하고, 체육대회를 취소하고, 축제를 취소하고.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결정이라기보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다가오니, 그저 이 시간들이 흘러 가버리기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어른들의 "미안하다"는 말이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 슬픔과 애도의 시간이 지나갈 때까지 "미안해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일까 봐 말이죠. 정부가, 어른들이 말하는 "책임지겠다"는 말의 구체적인 실천 형태는 지금까지로 봐서는 "기다리는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 말이지요. "기다려라"는 명령에 죽어간 시대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단원고 학생들은 이 글을 쓰는 오늘 직접 SNS를 통해 심정을 고백합니다. "함께 빠져나오지 못한 친구들을 생각할 때마다 먹고, 자고, 웃고, 떠드는 모든 일들이 죄짓는 일 같다"고 말이지요. 이 아이들은 지금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돌아가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애쓰고 있습니다. 힘내라는 말이, 괜찮냐는 안부가, 미안하다는 사과가 자신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시선이니, 아무 말도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다만, 아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라 당부합니다. 우리는 이 부탁을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스파이 누명을 쓰고 추방당한 드레퓌스 대위가 진범이 아님이 밝혀졌음에도 그저 잊기를 원하던 프랑스 정부와 군부, 그리고 시민들에게 소설가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를 외치며 망각을 멈추고 진실의 힘을 기억하라 외쳤습니다. 졸라는 결국 진실을 바라보게 하는 언론, 시민, 정부, 군대를 성취하게 하였고, 그 기억은 프랑스 시민들에게 스스로에 대한 '명예와 저력'을 주었습니다. 프랑스가 질서보다 무질서를 바라게 될 때에도, 진보보다 보수적 입장을 취하고자 할 때에도, 그들에게 다시 상기되는 것은 바로 그때의 '진실의 성취'라 합니다. 우리에겐 그런 기억이 필요합니다. “한 국가의 역사가 지닌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항상 그 국민들의 무력함이 아니라 '명예와 저력'이기 때문"입니다. 8월, 인디고 서원은 10주년을 맞습니다. 15일부터 17일까지 열릴 인디고 유스 북페어의 주제는 '새로운 세대의 탄생'입니다. 이 기획이 모든 것을 다 바꿀 수 있는 힘은 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개인의 선택이 전 지구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용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꿈꿉니다.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희망으로 전환할 힘 있는 담론이 되기를 꿈꿉니다. 이 잡지 한 권이, 인디고 서원에서 외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여러분께 진실의 성취를 통한 명예와 저력을 만들어낼 빛 중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그를 위해 늘 기억하겠습니다. 진실을 향해, 정의를 위해 늘 나아가야함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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