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고 러브레터

letter 55. 바라건대 버리지 말고 끝내 아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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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12-31 10:44 조회3,69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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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다섯 번째 인디고 러브레터


바라건대 버리지 말고 끝내 아껴주세요 이윤영(인디고잉 편집장) 한 해의 마지막, 지난 시간들을 돌아봅니다. 1월, 2월, 3월, 4월. 4월. 4월. 4월에서 멈춘 시간은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대로 ‘세월’이 가버리면 그 속에 타고 있던 삶들이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전쟁과 5.18 광주민주화운동만큼 큰 역사적 사건이라는 말을 점점 실감합니다. 삶의 모든 순간이 세월호로 치환되어 이해되기도 하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모든 사회적 문제가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매년 11월이 되면 치르는 수능이 이번에는 유난히 신경 쓰였습니다. 수능치고 자살하는 수험생이 혹여나 있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수능 당일 한 아이는 자살을 하였고, 그는 그저 안타까운 일이 아니라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로 생명을 잃은 황망한 죽음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에어포켓’이 있을 것이라 믿었던 3일, 우리가 매일 아침 뉴스를 보며 구조자 수가 한 명이라도 늘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그 마음은 그 이후 한 명의 삶도 허투루 보지 않게 합니다. 그로 인해 지구 반대편에서 기아로 죽고 있다는 아이들의 수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리아 내전으로 사망자가 20만 명에 이르렀다는 소식은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 허망한 죽음들은 견뎌내기 힘든 것들입니다. 지켜주겠다, 책임지겠다, 잊지 않겠다고 말한 우리 모두는 초기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결과의 원인은 분명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분명한 책임은 특정 누군가에게 있겠지만, 그것과 아주 유사한 형태로 우리 삶 전반에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책임이란 어떻게 질 수 있는 것일까요? 과연 잘못을 딛고 변할 수 있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미 몸에 베어버린 나쁜 습관들은 내가 눈치채지도 못한 순간 모난 돌처럼 삐죽 튀어나오고, 그로 인해 일어난 일을 책임질 능력이 당장 나에게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나쁜 습관과 능력과는 무관하게 그렇게 되지 말았어야 했던 일을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그러지 않겠다, 책임지겠다 말하지만 그 의지의 허약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아직 모르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이해했다고 하지만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에 합당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지만, 우리는 종종 핵심에서 벗어나 그 언저리에서 배회합니다. 미안하다 말했으니 정황이 해결되었다고 믿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책임은 철저히 결과에 대한 것이라 합니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마음이 어떠하였든, 일어난 결과만이 내가 책임질 영역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를 깨달아도 정확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기도, 그 방법이 틀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임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기에 몇 번이고 끝날 때까지 시도해야 합니다. 그것도 가능한 한 빨리 책임질 방법을 찾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지쳤다고 말하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이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어디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요? 1964년 창간된 월간지 ≪인물계≫의 창간사에는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다하는 한 피치자로서의 국민은 결코 고독하지 않다. 국민에게 뜻을 발표할 입이 있고 막힌 가슴을 대변할 양심의 소리가 있을 때 악의 독재자도 결코 부패할 수 없을 것이다. 진실로 부패할 수 없는 곳에서 참다운 민주주의가 발아하는 것” 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악의 독재자조차 부패할 수 없는 양심의 목소리. 우리가 아주 천천히라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끝끝내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서서 악한 무리조차 악할 수 없도록 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내는 것. 실천이라는 것은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내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제대로 할 깊이와 넓이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디고잉> 기자들과 함께 어느 언론사의 인터뷰에서 인문학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몇몇 친구들이 답을 했지요. 그런데 한 친구가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근데, 괜찮아요.” 학교 다니면서 공부하랴 기사 쓰랴 잠을 못 자는 경우도 허다하고, 경쟁을 중요시하는 학교에서 인문학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계속해도 될까 의문이 들 때도 많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때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것마저 자신의 삶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합니다. 『노인과 바다』 속, 실패할지언정 삶이라는 바다에 뛰어들었던 노인의 뒤를 이어 저 망망대해를 헤쳐나가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다짐했습니다. <인디고잉>이 청소년들에게 언론다운 언론이 되어 그들이 고독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이 새로운 세대의 양심과 정의의 소리가 ‘악의 독재자’가 올지언정 부패하지 않도록 할 힘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1950년대,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잡지 ≪학원≫이 있었습니다. 그 잡지의 짧은 창간사 마지막에는 “본디 ≪학원≫은 여러분의 참됫 벗이 되고 싶어 세상에 나온 것이다. 바라건대 버리지 말고 끝내 아끼어주시압”라며 아주 간명한 부탁의 말이 적혀 있습니다. 이 잡지는 무려 10만 명의 독자를 거느려 ‘학원세대’를 이룰 만큼 새로운 세대의 목소리는 이끄는 역할을 해냈다고 합니다. 그 시기가 전무후무한 잡지의 성행기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숫자입니다. <인디고잉>도 또 다른 ‘학원세대’의 시대, 그들의 양심을 이끌 수 있는 잡지가 되겠습니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들도 지켜봐 주십시오. 희망의 씨앗이 더 많은 곳에 퍼져나갈 수 있도록 “바라건대 버리지 말고 끝내 아끼어주시압.” 끝으로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분들에게 보냅니다. 이렇게, 당신은 죽어서도 바다에 돌아갑니다. 몸을 마지막으로 바다에 던지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육지라고는 보이지 않는 대양 한가운데서 당신은 홀로 최후를 맞을 것입니다. 수면 위로 분기공을 내밀고 마지막 숨을 내쉽니다. 그 잠깐 동안 본 별빛이, 바로 당신이 본 마지막 빛일 것입니다. 꼬리 지느러미가 힘을 잃는 순간, 큰 덩치가 균형을 잃고 천천히 바다 한가운데로 가라앉을 것입니다. 별빛을 담았던 당신의 눈도 투명함을 잃고 서서히 흐려질 것입니다. 심연은 어둡습니다. 수십 년 동안 누비던 생활의 터전이자 태어난 고향이지만, 그런 암흑은 당신에게도 처음일 것입니다. 4,000m 혹은 그 이상으로 깊은 심해저까지 가라앉는 시간은 영원보다 길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간 바다에서, 당신은 다시 바다가 됩니다. - 윤신영,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중에서 고래는 죽어서 바다 생물들의 정원이 된다고 합니다. 커다란 고래처럼 당신이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 마지막 담았을 순간의 별빛을 가만히 상상합니다. 바다 아래까지 가라앉는 영원의 시간 동안 당신이 꿈꾸었을 세상에 대해 생각합니다. 끝까지 여러분의 정원에서 서 있겠습니다. 끝끝내 정의의 편에 서기 위해 이 바다에 뛰어들겠습니다. 다시 바다가 되어 자유롭게 헤엄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부디 그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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