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고 러브레터

letter 56. 다시, 봄은 기필코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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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4-03 18:09 조회3,2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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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여섯 번째 인디고 러브레터



 

 

다시, 봄은 기필코 올 것입니다

이윤영(인디고잉 편집장)

다시, 봄입니다.
봄이 오는 것이 사계절 중에서 가장 반갑게,
또 가장 뚜렷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차가운 바람에 한껏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희망을 노래하게 되는 계절.
그런데 이번 <인디고잉>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아 보이기도 하는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하나의 관습처럼 느껴질 만큼
오래전부터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의 부가 커지면 개개인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몫도 커질 것이란 믿음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과 시도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지되고 있고,
오히려 다시 주목받아 확장되고 있지요.
왜 이미 그로 인한 수많은 모순을 겪었음에도
그 믿음은 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증거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이야말로 그 확실한 증거 아닐까요?
해방을 맞이했던 70년 전, 그리고 동족의 전쟁을 끝낸 65년 전
이 땅은 그야말로 가난하고 피폐하고 황폐했을 것입니다.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그 치욕을 씻기 위해
우리 어버이 세대는 부단히 노력했을 테지요.
희망이 없을 것 같은 그 황무지에서 거두어낸
이 비약적인 경제의 발전은 분명 배고픔을 해결해주었고,
몸 누일 곳을 주었고, 일자리를 주었습니다.
경제발전은 그야말로 생존 그 자체였던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절대 빈곤의 어려움에 처한 나라가 아닙니다.
경제발전은 이제 더 이상 생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들어야 할 사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루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가난은 우리 사회 전체의 부가 모자라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경제발전이 계속되면 가난이 모두 사라질까요?
다른 양식의 가난과 고통이 생겨날 뿐입니다.
이제 가난은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것이라,
가난한 사람은 더 고통스럽게 모멸감을 견뎌야 합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감춰진 가난과
늘어난 욕망으로 인해 생겨난 사람들 개개인의 ‘상대적 빈곤’의 크기를 다 더하면
결코 우리 사회는 부유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가난하더라도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를 위해서는 가난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가난의 이유는 모두 다릅니다.
개인의 무능과 게으름이 가난을 초래한 경우도 분명 있을 것이고,
그보다 더 많은 경우가 사회 구조적인 이유로
가난해지거나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지요.
이 두 가지로도 다 설명하지 못할 만큼
가난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가난함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가난이 모두 같은 이유로 발생했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힘들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반화입니다.
그렇기에 그 고통의 기원을 찾아 나서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오늘날 가난의 근원적 기원은 무엇일까요?
저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가난함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1년이 지나도록 세월호를 인양하지 못했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피해자에게
지원금 하나 주지 못한 이 사회는 분명 가난한 사회입니다.
그나마도 있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예산도 삭감시키는 이 나라가
돈이 없어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것 외엔
그를 이해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급식을 개선해도 모자랄 판에 지원을 중단하는 나라,
취직률이 낮다는 이유로 학과를 통폐합해야 하는 나라,
극심하게 가난한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지원을 해주는 나라가 잘 사는 나라일 리 없습니다.
이 가난한 나라에서 이렇게 사치스럽게 전기 쓰고 물 쓰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매일 경쟁하듯 높이 들어서는 건물과
도로를 가득 메우는 자동차가 매우 부끄럽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풍요에 도취된 것 같은 우리 사회가 안타깝습니다.

청소년들이 <인디고잉>을 만들며
우리 사회가 절박하게 극복해야 할 것은
내면의 가난함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난은 물질적 결핍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에 대한 윤리적 기준이
너무나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지금 무엇이 시급하고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지 전혀 관심도 없고,
그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능한 사람들이 권력을 쥔 사회.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 가난하고 고통받는 약자들이
더욱더 벼랑으로 몰리는 이유입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돕는 것이
내 아까운 세금을 쓰는 것으로 여기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괴롭습니다.
하지만 1등이 있는 이유는 2등이 있기 때문이듯,
내가 누군가보다 부유하다면 그것은
나보다 못 가진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의 부는 나의 오롯한 능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주고받는 영향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렇기에 이 사회의 가난에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충분히 풍요롭습니다.
우리 국민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를 도울 만큼의
경제력을 갖춘 훌륭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더 잘 사는 나라가 되는 방법은
더 많은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이 나라의 가난한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
재난과 참사를 당해 큰 상처를 입은 사람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때
우리나라는 진짜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싶은 나라는 그런 나라입니다.

저는 가난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사회가 올 때,
봄이 왔구나, 비로소 움츠렸던 몸을 펼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봄은 기필코 올 것입니다.
그 믿음만이 이 봄에 제가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희망입니다.
봄은, 기필코 오고야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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