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고 러브레터

letter 58. 우리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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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10-06 17:55 조회3,4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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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여덟 번째 인디고 러브레터





우리도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윤영(인디고잉 편집장)

인디고 서원 앞 좁은 골목에는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불법주차하는 차량 단속하랴, 쓰레기 버리고 가는 사람 잡으랴,
종종 몰래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도 타일러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너무 깐깐하게 군다며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잦지요.
끝내 경찰을 불러야만 하는 상황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소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한 남자아이가 골목 벤치에 앉아 침을 뱉는 모습을 보고서
제 동료는 그러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뱉은 침을 물로 씻어내고 가라고 했지요.
아이는 본인이 왜 그래야 하는지 되물었습니다.
두 사람의 언성이 자꾸 높아지기에 제가 다시 아이에게 천천히 물었습니다.
지금 상황을 초래한 최초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잘못한 일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당연한지를 말이지요.
아이는 그제야 이해했다 했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자세히 설명했다면 자기도 순순히 했을 것이라 말하면서 말이지요.
아이가 평소에 어떤 입장에 놓여 있는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이제까지 아이의 삶에는 그렇게 설명을 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었나 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이해할 수 있는 아이이고,
제 손으로 모든 것을 원상태로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는 아이인데 말이지요.

저는 그 아이가 인디고 서원 앞뿐만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침을 뱉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갈등의 상황이 되었을 땐
먼저 대화로 풀어나가는 마음 또한 갖추었으리라 기대합니다.
이러한 능력은 학교 교육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삶의 기술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은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윽박지르고 재단하며 틀에 맞추기 급급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동의하고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고 이해할 수 있는
사회의 질서를 익히고 배우는 곳이 학교이고 교육의 장이지,
누군가 만들어놓은 규칙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면 그것은 인간 자유에 배반하는 일입니다.

교육 제도가 매년 바뀌는 것을 보면 분명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사회 전반적으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제도가 시행되든 제자리걸음 혹은 후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 문제의 본질이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우리가 부러워 마다치 않는 북유럽 교육의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도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도 목공 수업을 하고, 바느질을 배우고, 체육도 하고,
진로 탐색의 시간도 있고, 봉사 시간도 반드시 채워야 하지요.
그러나 교육의 목표와 교육의 주체들이 누리는 자유의 범위는 확연히 다릅니다.
바느질을 얼마나 일직선으로 잘하는가를 평가하는 우리나라의 경쟁 시스템은
결코 자신의 취미활동을 위해 목공 시간에 기타를 만드는 북유럽의 교육보다 훌륭한 인재를 길러낼 수 없습니다.
인디고 서원에서 아이들과 요리 수업이나 연극 수업을 해보면
우리 아이들도 북유럽 아이들만큼 행복하게 웃습니다.
그 아이들도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는 훌륭한 아이들입니다.
제도냐 사람이냐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의 목표와 철학을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자유인이 되는 것, 노예의 삶을 벗어나는 것은 의외로 쉽다.
나의 존엄을 내 손으로 지키기만 하면,
내 모든 권리와 자유를 압류했다고 착각하는 권력자에게 굴종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고객이라는 이유로 진상을 부리지 않고, 소비로 점철된 삶을 거부하는 것.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자유의 날개를 얻고,
목까지 차오른 자발적 복종의 냄새나는 썩은 물에서 탈출할 수 있다.
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 인간이지만,
그 사실을 망각하지 않고 스스로 지켜낼 때에만 우리는 인간에게 부여된 가장 고귀한 사치를 비로소 누릴 수 있다.
-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역자(목수정) 서문 중에서

사회 경종을 울리는 사건과 사고가 많이 일어나지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너무 많이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꾸 잊어서는 안 될 일을 잊자 하고, 해서는 안 될 말들이 자꾸만 허용되며,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세월호 참사가 그러하고, 혐오 문화가 그러하며,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설악산 개발이 허용되는 이유가 그러합니다.
수많은 노동자의 삶이 짓밟히는 이유가 그러하고,
젊은 세대들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이유가 그러합니다.

소설가 김탁환 씨는 「진상규명에는 시간제한이 없다」라는 글의 첫 문장을
“당신은 공룡이 멸종한 이유를 몇 가지나 아는가”라 썼습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가 원하는 것에 가닿고자 얼마 동안 노력했고,
어떠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았으며, 그 상상은 얼마만큼 증명되고 검증되었는지요?
어렵고 잘 보이지 않고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진실과 정의에 기필코 가닿고자 하는 이유는
알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일 것입니다.
알면 돕게 되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감히 알려고 하라!”라는 명령을 온몸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 앎이란 내가 이 세계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인지,
그래서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자유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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