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고 러브레터

letter 60. 정의롭지 않은 시대,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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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4-03 15:02 조회3,6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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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번째 인디고 러브레터




정의롭지 않은 시대,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이윤영(인디고잉 편집장)

 

시간은 더디게 가면서도 참 빠릅니다.
작년 이즈음 봄이 오는 소리와 함께
우리 사회에 불어올 따뜻한 변화를 기대했던 것이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1년이 흘러 새로운 봄이 왔습니다.
‘봄’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이렇게 아픈 단어가 되었는지,
그러면서도 ‘다시, 봄’이라며 절박한 심정으로 희망을 노래하게 되었는지요.
2014년 4월 16일 이후 그렇게 두 번째 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3월이 되면 새 학기가 시작되듯
이 세상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인간이 정한 날짜, 계절, 주기, 이런 시간들의 경계로는
다 막지 못한 일들이 여전히 2016년에도 남아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뿐만은 아닙니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거나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고,
시리아 난민들은 더욱더 심한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또 IS의 폭탄테러는 자꾸만 슬픔과 분노를 극단으로 치닫게 하고 있지요.

이번 <인디고잉> 50호에서 청소년 기자들은
이러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가 행복한 곳”을 찾아 나섰습니다.
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공간들을 살피고,
또 그러한 공간을 일상의 영역에 만들어가자고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런데 이번 호 교정을 하며 유달리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아이들의 문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변화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더 좋은 세상을 바라고 꿈꾼다면,
우리 다음 세대는 변화된 곳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제 자식과 또 그의 자식이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문장만 두고 본다면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엔 이 아이들은
이미 변화에 대한 희망을 단념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제 막 중학교를 들어간 14살 아이들이
자기 자식이 살아갈 세상에서나 희망을 찾을 수 있다니,
이것은 어쩌면 참담한 현실의 방증이 아닐지요.

그러나 영화 <동주>를 보며 또다시 희망을 찾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즈음, ‘동주’는 자기 삶에 대한 고백을 합니다.
늘 시대의 암흑에 정면으로 맞섰던 친구 송몽규와는 달리,
시를 쓰고 싶고 시인이 되고 싶었던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다는
절규에 가까운 그 외침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단지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윤동주의 시 속에는
그 부끄러움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비록 어두운 시대이지만,
그렇기에 더 지키기 어려웠던 시를 쓰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용기는 지금도 우리를 깨어있게 하는 진실한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미나마타 병으로 괴로워하는 환자를 보면
글을 쓰는 사람은 그 압도적인 현실에 말을 잃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무언가를 언어화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말로 무엇이 가능할까」)
지금이야말로 죽은 자를 비롯해 재난을 겪은 이들이
말하지 못한 생각을 무력감 뒤에 있는 강한 정신으로,
확실한 말로 바꾸는 번역이 필요한 때다.
-이소마에 준이치, 『죽은 자들의 웅성임』 중에서

2016년 첫 <인디고잉>의 편지를
아프고 힘든 일을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그것들을 잊어버리고 외면하려는 저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반성이며,
밀려오는 무력함을 이겨내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수없이 말한 것 같지만, 아직 그 고통을 끝내지 못한 것은
저의 말이 정확하지 않았던 탓이고 또 누군가에게 전달되지 않은 이유일 것입니다.
책임진다는 것은 응답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못한 것은 정확한 응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디고잉>에 글을 쓰는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자 더 정확한 말을 찾아,
더 정직하고 진실한 언어를 찾아 끊임없이 읽고 쓰는 것이지요.
그것은 ‘부끄러움’을 알고,
그를 인정하는 정의로운 청소년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구호기구 옥스팜에서 2016년 1월에 발표한 「세계 1%를 위한 경제」에 따르면
인류 절반인 하위 36억 명에 맞먹는 재산을 가진 부자의 수가
2010년 388명이었다면, 2015년에는 그 숫자가 62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불평등이 빛의 속도로 극심해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지요.
취업이 잘되는 학과에 지원금을 주는 ‘프라임 산업’으로
전국 대학교에서는 인문학, 예술 분야의 학과가 통폐합되고 있고,
취업이 잘 안 되더라도 공부하고 싶으니 배움의 기회를 빼앗지 말라고
학생들이 무릎 꿇고 비는 참담한 일이 일어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그것에 대한 확실한 말을 찾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그것이 인류 역사를 지탱한 정신임을 잊지 않으며,
정직하고 진실하게 정진하여 이 또 다른 봄을 맞이하는 것만이
행복을 쟁취할 유일한 방법이고 최선의 선택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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