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고 러브레터

letter 62. 선善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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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10-05 20:47 조회3,5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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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두 번째 인디고 러브레터




선善의 평범성

이윤영(<인디고잉> 편집장)
 

지난 9월 12일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 기억하시는지요?
저녁 8시경 5.1과 5.8의 지진이 연이어 발생했고,
부산에 사는 저 역시 생전 처음 느껴본 크기의 진동에 놀라
아파트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올해 들어 지진이 잦아지고 있어 대피방법을 찾아보다
“내진 설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은 한국 대부분의 건물에서는
바깥으로 피신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마저도 잘못된 정보임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현재까지도 지진이 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확한 매뉴얼이나 대비책은 마련되지 못했습니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공포에 맞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합니다.
당장 부산에는 핵발전소가 있고,
심지어 지진의 근원지인 경주에는 핵방폐장이 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도 7.0 수준의 대규모는 아닐 것이기에
핵발전소는 안전하다고 거듭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공사에서는 발표합니다.
그러나 자연재해는 인간이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진을 막을 수 있을 리도 만무합니다.
핵발전소가 안전할 것이라는 말은 한낱 기대와 염원에 불과합니다.
정말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만에 하나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기라도 한다면,
그 피해는 과연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것은 과연 책임의 문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요?
생활의 터전을 잃고, 목숨을 잃고,
모든 희망을 잃는 그 순간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지요.
그것은 비단 지진의 문제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수히 많은 죽음을 떠올려봅니다.
지진이 일어난 12일 당일 새벽 1시경에
열차 선로에서 기차에 치여 2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2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 운행이 일시 중단되어 KTX가 연착했으나,
이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하고 예정대로 선로의 자갈 교체작업을 하다
화를 당하신 것입니다.

이분들께서 왜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까?
사람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이 잔인한 시대상은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들에서 불쑥불쑥 참혹한 현실로 드러납니다.
자신이 탄 택시를 몰던 기사가 심정지로 쓰러져도
그를 버리고 갈 수 있는 승객들이나,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한 시위 진압으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한 사람이
317일간의 고통스러운 시간 끝에 세상을 떠나도
사과 한 번을 않는 국가 권력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 비열하고 잔인한 시대는 결국 우리 개개인의 모습과도 닮았습니다.
그 사실에 치가 떨리게 화가 나다가도 한없이 두려워집니다.
과연 우리는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더 큰 재앙들을 막을 수 있을까요?

이 두려움을 이겨낼 힘을 평범한 한 청년에게서 얻습니다.
바로 故 안치범 의인입니다.
모두가 잠든 시각, 서울 서교동의 한 원룸에서 화재가 났고,
화재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밖으로 대피해 가장 먼저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시 원룸으로 뛰어들어가 모든 집의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그 덕분에 모두가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지만,
단 한 사람, 안치범 씨는 끝내 계단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열흘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왜 불길 속으로 다시 뛰어들었을까요?
그 순간, 그를 움직인 마음은 무엇입니까?
저는 그의 인생이 지향했던 가치와 그를 움직였던 마음을 기억하며 배우고 싶습니다.
그것이 그를 추모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의인들의 숭고한 정신을 배우는 것이
우리 교육이 해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시대임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이는 다만 한국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리아 내전의 격전지 알레포에는
일주일의 임시 휴전이 끝나자마자 최대 규모의 공습이 시작되었고,
피난처마저 공격받아 이제 도망갈 곳조차 없습니다.
한 시민은 이 끔찍한 상황에
“세상이 우리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죽음보다 더한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이 사람들에게 희망은 무엇일까요.
그 역시도 한 인간의 선한 용기라고 말합니다.
시리아에는 ‘하얀 헬멧’이라 불리는 민간 구조대가 있습니다.
그들은 폭격으로 무너진 집에서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해내는 평범한 시민들입니다.
또, 2016 인디고 유스 북페어 초대 손님이었던
시리아 난민 출신 스웨덴 기자 누어 사이드는
난민을 환영한다는 편지와 사탕을 건네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이 극단의 시대를 헤쳐나갈 방법은
바로 선함의 평범성에 있습니다.
특별한 재주와 능력이 있는 소수의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지만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의인들이 우리를 깨어 있게 합니다.
그 가능성을 모든 인류가 갖고 있음을 상기하기 때문입니다.
인간 선함에 대한 기대는 결국 우리가 살아갈 희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원칙일 뿐 아니라 능력이기도 하다.
즉, 인간은 이성과 사랑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만큼 자신의 본질에 도달한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이성과 사랑의 능력이 있으며 그 반대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인 것이다.
자신을 자각하고 자신과 자신의 실존적 상황에 대해 진술하는 능력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능력이 인간 본성의 기본 요인이다.
- 에리히 프롬,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중에서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 알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를 모두 살펴보아도 그 두 가지 힘 중 무엇이 더 강한지
정확한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 본성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통감합니다.
무엇이 인간답고 정의로운 삶인지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인간 선함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부디 제 안에 있는 선함이
위험에 처한 누군가를 구할 힘으로 발현될 수 있기를 꿈꾸며,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더 뜨겁게 고민하고 실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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