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고 러브레터

letter 63. 굴복하지 않는 근기, 그것이 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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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05 18:38 조회2,8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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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세 번째 인디고 러브레터




굴복하지 않는 근기, 그것이 승리입니다
이윤영(<인디고잉> 편집장)


“선배, 미래라이프 사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난 8월, 한 후배가 물어왔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평생교육 단과대학을 세워
누구나 이대 졸업장을 취득할 수 있게 하는 사업에
‘학위 장사’를 한다며 이대 학생들이 대대적인 시위를 막 시작한 때였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당시 그 사업에 대해 잘 몰랐고,
그저 일상적인 시위가 일어났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일상적’이라 함은 분명 잘못된 일에 대한 부당한 외침인데,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또 잊히고 마는 그런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이제까지 봐온 모든 것은 그렇게 잊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확히 20대 전체를 소위 ‘보수’라고 불리는 정권 아래에서 지냈습니다.
20살이 되던 해에 이명박 정권이 시작되었으니 말입니다.
저와 같은 시대의 또래들 모두가 그러하겠지만,
단 한 번도 진실이나 정의에 대한 승리의 기억이 없습니다.
그토록 반대했던 4대강 사업,
황망한 죽음에 대해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라 요청했던 용산 참사,
동네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온몸으로 막아섰던
제주 강정마을의 미해군기지 건설과 밀양 송전탑 건설, 그리고 세월호 참사.
무엇하나 진실에 가닿을 수 있는 일이 없었고, 늘 실패했으며,
너무나 공고한 권력의 벽 앞에 절망해야만 했습니다.
참여를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집회 현장에 나설 때마다
“승리의 기억,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다녔던 이유는
저 역시 그것이 무엇인지 경험해보지 못했고, 절실히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끈질기게 학교의 비리에 의문을 제기하고 진실을 요청했던 이대 학생들의 노력은
결국 미래라이프 사업을 철회하고 총장을 물러나게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공은 또 다른 진실을 향한 용기로 이어져,
현 정권의 국정농단을 파헤치게 했습니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고,
특검은 부패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의 과오를 파헤치는 데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헌재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이것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물러날 수 없는 법입니다.
만약 단 한 명이라도, 단 하나의 진실이라도 놓친다면 이것은 또 한 번의 실패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한 이들의 끈기,
혹은 굴복하지 않았던 그분들의 존엄한 근기에 대해 생각합니다.
2014년 4월 16일, “사월 십육일”이라 소리내어 말하기만 해도
눈물부터 나는 이 참혹한 사태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까지 진상규명을 요청하고 있는지요.
진실이 침몰하지 않음을, 어둠은 빛을 가릴 수 없음을 믿어야만 했던
유가족분들의 그 절박함을 저는 결코 다 헤아리지 못할 것입니다.
타협하지 않기 위해, 좌절하지 않기 위해, 절망하지 않기 위해
수천수만 번을 다짐해야 했을 그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반드시 진상규명으로 보상받아야 합니다.

설악산 대청봉에 이르는 케이블카 사업 역시 철회되었습니다.
환경평가를 무시한 채 억지 주장으로 밀고 나가던 사업이
결국 그곳에 서식하는 동물들에게 주는 피해를 고려해
철회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입니다.
애초부터 그랬어야 했던 일에 4년의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국 곳곳에서 설악산을 지켜내려 애쓴 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를 하지 않는 일 역시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면서도 침묵하고 외면하는 일은
양심의 가책과 함께 자괴감마저 주는 일이라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국에 침묵하고 방관하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이들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자에게 ‘우수한 학생’이라 칭송했던 것이
이 나라 교육 제도의 실패를 증명합니다.
머리 좋고, 성실했고, 성적이 우수해
좋은 대학을 들어가 훌륭한 직업을 가졌던 이들이 저지른 수많은 부정의가
수십 년간 오로지 경쟁에서 남을 짓밟고 이기기를 요청했던
성과위주와 성적위주의 우리 교육이 빚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끈질기게 물어야 할 지점입니다.
이러한 교육을 견디고 있었던 모든 이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하는 대목입니다.

특검 조사로 밝혀지고 있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이름에 인디고 서원이 있습니다.
군부독재 시절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김대중내란음모 사건 선고공판에서
판사가 사형을 선고하자 김종태 전남대 학생회장이 판사를 향해 “영광입니다!”를 외쳤고,
그다음부터 사형 선고를 받는 피고들이 모두 “영광입니다!”를 외쳤다고 하지요.
저 역시 영광입니다.
이 암흑의 시대에 그 암흑을 외면하지 않고 써내려간 것을 인정받은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것에 마냥 기뻐할 수 없습니다.
입과 귀를 닫게 하고,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버린 이 시대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꾸어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문화계를 말살하고자 했던 이들이 두려워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더 외쳐야 할 것입니다.

2017년 역시 끈질기게 진실을 향해 갈 것입니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께서“우리가 믿고 있는 바를 위해 다른 이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승리입니다”라고 말씀하셨듯
우리는 승리의 경험을 이미 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아름다운 영혼의 목소리가 <인디고잉>을 통해 전해질 수 있도록,
저희 역시 이 자리에서 늘 희망을 노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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