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고 러브레터

letter 64. 친애하는 미래의 민주시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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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3-11 11:20 조회2,1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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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네 번째 인디고 러브레터




친애하는 미래의 민주시민께

이윤영(<인디고잉> 편집장)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졌고, 그 결과는 당연했지만
그에 따라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합니다.
탄핵이 결정되면 우리 사회가 당장 좋아질 수 있을까요?
이 비정상적인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최근 시민사회에서 ‘탄핵 이후’를 고민하듯이,
탄핵 여부와는 상관없이 시민으로서 고민해야 할 지점은
좀 더 본질적이고 실질적인 부분입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한 연예인의 이야기가 화제이기에 찾아서 보았습니다.
오랜 시간 무명 연기자로 활동해오던 한 배우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가난한 집안 형편에 대학교 등록금을 마지막 날까지 마련하지 못해 포기하려던 찰나,
공장에서 일하시던 어머니께서 어렵게 돈을 모아 학교까지 직접 달려오셨다고 합니다.
이미 마감 시간이 지나 불이 다 꺼진 원무과 복도에서
어머니가 곧 도착하실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하는 아들과,
그 아들을 위해 어려운 형편인 동료 공장 노동자들에게
십시일반 돈을 모아 헐레벌떡 뛰어왔던 어머니.
눈을 감으면 늘 그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는 그 배우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눈물을 지었습니다.
방송이 나간 후 어려운 시절을 딛고 배우로서 입지를 다진 그분께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저는 웬일인지 그 방송을 보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왜 가난 때문에 그렇게나 상처 입어야 했을까요.
대학을 모두 가야만 한다고 여기는,
그러면서 지나치게 비싼 등록금을 요구하는 사회 구조를 알고 있기에
그분의 아픔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구조에서 고통받는 개개인의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그들의 삶을 보듬지 못하는 것을 과연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을지요.
저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연구자 김동춘 선생님은 이번 인디고 인문학 캠프에서
“정의란 본래 가진 것으로 인생이 판가름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암기력이 조금 좋지 않다고 해서,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돈이 없다고 해서, 한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받거나 그로 인한 고통을 받는 것이 바로 부정의라고 말입니다.
인간은 각기 다를 수밖에 없으나,
그 속에 내재한 인간 보편의 존엄성을 인정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인간을 향해있지 않은 잘못된 제도와 구조 속에서
개인이 노력을 통해 자기 삶을 개선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계급이 다시 생겨나고 불평등이 심해지는 이유,
가난이 죄가 되고 그로 인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특별히 나빠서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구조를 공고하게 하는 이기적인 사람도 있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선한 마음으로 잘 살고자, 인간답게 살고자 노력하지요.
그러니 우리가 봐야 할 진짜 문제는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가기를 불가능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 제도, 문화입니다.
경쟁만 부추기고 정해져 있는 정답만 요구하는 교육제도,
오로지 대기업만을 우선시하는 경제구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어 차별하고
노동자의 인권이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노동환경.
이 속에서 좀 더 선하고 좀 덜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은
진정한 변화를 위한 선택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음 대통령으로 어떤 사람을 선출해야 할까요?
또 선거권이 없는 만 19세 미만 청소년의 의견은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까요?
후보들 중 한 명을 선택하는 일은 너무나 간단하고 쉽지만,
우리가 직면할 삶의 무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탄핵 이후의 삶이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구조적 폭력에서 우리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도록 더 예민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세계를 못 참겠다는,
그러니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움직임들이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의 부정의함에 무뎌지지 않을 수 있도록,
일상의 행복을 위하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읽고 쓰고 생각하고 느껴야 할까요?

2017년 새봄의 <인디고잉>은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시민으로 어떻게 거듭날 것인지
고민하는 청소년의 목소리를 담고자 하였습니다.
이 세계에 대한 나의 책임이 무엇인지 묻고
그 세상과 ‘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소명을 다 하자고 다짐해봅니다.
<인디고잉> 54호는 “My Dear 민주시민”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이번 <인디고잉>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함께 상상할 수 있길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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