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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의 아포리즘(인디고잉 41호)-얼굴을 어루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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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01-14 14:53 조회2,1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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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어루만지다

박용준

 

“죽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보게 될 얼굴이 누구의 얼굴일지 난 정말 그게 궁금했어.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이 말이야. 뱃속에 있는 아기들도 그런 생각을 할 거 아니겠니?
밖에 나가면 도대체 어떻게 생긴 작자의 얼굴을 제일 먼저 보게 될까?
양수 속을 뒹굴뒹굴하다가 그런 의문이 들겠지.
(…)
그러면 내가 걔네들이 있는 배에다 대고 말해줄 수 있어.
왜, 태아들도 다 듣고 있다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면 좋아하고, 밉다고 말하면 싫어하고.
이렇게 말할 거야. 일단 거기서 건강하게 나오는 게 제일 중요한데, 나오고 나면 좋든 싫든 네가 처음으로 보게 되는 얼굴이 있을 것이야. 그게 누구냐면 바로 네 엄마란다. 그
엄마는 죽을 때 아마 제일 마지막으로 네 얼굴을 보게 될 거야.
인생은 그런 식으로 공평한 거란다. 네 엄마의 삶에 너무 많은 고통과 너무 많은 눈물만 없다면 말이야.
그러니까 죽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보게 될 얼굴이 평생 사랑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그건 불행하다고 할 수밖에 없어.”
- 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중에서

당신이 태어나서 처음 본 얼굴은 누구의 얼굴인가?

기억나지 않는 그 최초의 얼굴을 이제 우리는
세계의 끝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자, 그렇다면 다시,
당신이 죽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보게 될 얼굴은 누구의 얼굴일까?

 

 

 

 

 

 

 

 

 

“얼굴의 현현은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 즉 참된 인간성의 차원을 열어준다.
얼굴은 일종의 계시이다. (…) 얼굴은 현상이 아니다.
얼굴은 우리에게 다른 사물처럼 주어지는 현상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현현할 뿐이다.
얼굴은 그 자체로 유일한 것이다. 얼굴은 예측할 수 없고 표상할 수 없다.
어떠한 전조나 예고를 통해 주어지지 않는다.
얼굴로 나타나는 타인은 이러한 의미에서 언제나 ‘처음 온 사람 le premier venu’이다.”
- 강영안, 『타인의 얼굴』 중에서

얼굴의 현현 l'épiphanie de visage.
“여기에는 환대가 있고, 기대가 있고, 인간적인 영접이 있다.”(레비나스)

이 처음 본 얼굴로부터
지금까지의 나의 세계는 붕괴된다.
그 순간부터 이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얼굴을 받아들임으로써
나는 세상에 ‘처음 온 사람’ 마냥 다시 태어난다.
나의 닫힌 세계를 밖으로부터 깨뜨려
무한히 열린 세계로의 초월을 가능하게 하는 바로 이 얼굴.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란
늘 예고 없이 준비 없이 처음 보게 되는 얼굴이 아닐까.

 

 

 

 

 

 

 

 

 

 

“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천사가 엄마 뱃속의 나를 방문하고는 말했다.
네가 거쳐온 모든 전생에 들었던
뱃사람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일랑 잊으렴.
너의 인생은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해.
말을 끝낸 천사는 쉿, 하고 내 입술을 지그시 눌렀고
그때 내 입술 위에 인중이 생겼다.
(…)
태어날 때 나는 이미 망각에 한 번 굴복한 채 태어났다는
사실을, 영혼 위에 생긴 주름이
자신의 늙음이 아니라 타인의 슬픔 탓이라는
사실을, 가끔 인중이 간지러운 것은
천사가 차가운 손가락을 입술로부터 거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삶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고
태어난 이상 그 강철 같은 법칙들과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죽음,
기억 없는 죽음, 무의미한 죽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일랑 잊고서
인중을 긁적거리며
제발 나와 함께 영원히 살아요.”
- 심보선, 「인중을 긁적거리며」 중에서

얼굴의 중심, 인중人中
“얼굴에 터를 잡은 이후, 이 인중은 세월의 풍화와 침식을 지나
온 살의 연화작용.”(김경주)
이 시인은 인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웅숭깊다’는 말이 자꾸 생각난다고 했다.

삶의 비밀이 궁금할 때마다 우리는 인중을 긁어
내가 지나온 그 무한의 세계에 노크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죽음도 절망도 두려움도 없으니까.

“제 연인이 무슨 일로 모욕을 당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는 그 상처를 어루만진다. 따스한 언어로. 제 연인이 계단을
급히 내려오다가 발목이 접질렸을 때, 우리는 그 발목을 어루만진다.
따스하고 섬세한 손길로. 그러니까 어루만짐은 일종의 치유이고
보살핌이고 연대다. (…) 어루만짐은 더 나아가, 때로는 죽음으로
이르는, 절망이라는 이름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
- 고종석, 『어루만지다』 중에서

생명(사랑)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를 하나로 아우르는 것은 가능한가.
작가 고종석은 “어루만지다”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글에다
“사랑의 처음과 끝"이라는 부제를 달아놓았더라.

각설하고, 나는 여전히
“죽음이 없으면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죽음이 없다.”는
시인 김수영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진 못하지만,
그래,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비록 여전히 내가 닿을 수 없는 무한의 세계일지라도,
나는 그 얼굴을 그저 어루만짐으로써
사랑의 처음과 끝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엄마가 뱃속의 태아를 어루만지듯
아이가 엄마의 얼굴을 어루만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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