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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의 아포리즘(인디고잉 47호)-여자친구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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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7-01 20:32 조회2,3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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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구함

박용준( 편집장)

 

 

 

 

 

 

 

 

 

 

 

“오늘날 연인을 선택하는 것은 특히나 쉽지 않은데, 우리는 늘 이상적인 짝을 구하고자 애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파트너에게서 원하는 자질과 특성을 목록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자신을 특정한 시장가치를 지닌 존재로 제시하고 싶어한다. ”
- 레나타 살레츨,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중에서

나는 몇 점짜리 파트너인가?

한 결혼정보회사의 회원 등급표는
총 15등급으로 사람을 나눈다.

학벌, 직업, 소득, 재산으로도 모자라,
키와 몸무게, 연령차이, 부모직업까지.

나는 이상적인 배우자인가,라는 질문은
나는 이상적인 조건을 가졌는가,라는 질문으로 환원된다.

그럼 나는 몇 등급짜리지?

 

 

 

 

 

 

 

 

 

“저는 차라리 제 흥미를 끄는 주제를 논하고 실제의 저 자신보다 단순한 척하지 않는 쪽이 좋아요. 안 그러면 거짓을 바탕으로 타인의 애정을 얻게 되는 거니까요.”
- 수전 손택, 『수전 손택의 말』 중에서


나는 철학자 미셸 푸코를 오랫동안 좋아했고,
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를 열렬히 사랑해요,라는 말은
나에 대한 복잡한 설명이다.

이런 것 말고 단순한 정보들, 그러니까
내가 다닌 대학, 현재 직업, 소득 수준 등을
말하는 건 간단하다. 나에 대한 쉬운 설명.

하지만 그건 사랑이라기 보단 취조,
혹은 정보 검색이라고 해야지.

복잡한 나/너를 어렵게 사랑해야지,
그냥저냥 대충 사랑할바엔 시작도 하지 말아야지.

 

 

 

 

 

 

 

 

 

 

 

 

“나는 관계의 ‘마케팅’ 같은 것을 증오해요. 이런저런 방식으로 여자의 환심을 사려고, 남자 위에 군림하려고 자신의 인격을 거의 팔아야만 하죠. 구역질이 나요. 끔찍하죠. 나는 유혹할 줄 몰라요. 유혹, 그것은 기술이에요. 이 유혹의 춤, 가짜 글과 가짜 태도의 과시, 이런 것은 외설적인 짓이에요.”
- 로맹 가리, 『인간의 문제』 중에서


구애를 위해
영혼까지 팔아 넘기진 말아야지.
연애 시장에서
높은 등급을 받으려는 애처로운 노력은 하지 말아야지.
환심을 사려고
가짜 태도로 포장하는 거짓부렁은 하지 말아야지.

그런 노력 없이도 사랑받는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지.

 

 

 

 

 

 

 

 

 

 

 

 

 

 

 

 

 

 

“랭보는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 했지만 재발명될 수 없는 것에 사랑이 있다, 라는 것도 이즈음 절실히 느낀다. 사람보다 자연이, 의미 없었던 잡풀이, 철 이르게 익은 과일, 물, 돌이 더 나를 꿰찌를 때가 있다. 이런 일들은 애초부터 늘 있어 오지 았던가. 변하지 않는 불문율.”
- 김윤이, 「사랑을 향한 변론」, 『독한 연애』 중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은
구애의 불문율.
그/녀의 불완전성 속에서 완벽함을 발견하는 것은
사랑의 불문율.

그러니 여자친구를 구한다는 건
탐하고, 취하고, 가려서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묻지도 따지지 않고
그저 꿰찔리는 일에 불과하다.

가벼운 유혹의 춤일랑 당장 접고
조건 리스트도 쓰레기통에 버려야지.
그래야 비로소 진짜 나로 사랑받을 수 있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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