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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회] 정혜윤 선생님과 함께한 주제와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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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10-10 20:33 조회4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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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는 사랑하게 된다


김상원(22세)


책을 읽는 일만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일은 없다. 어떤 공간의 어떤 시대에서든 책 읽기는 늘 사람들의 생활을 바꿔왔다. 그렇다면 삶을 바꾸는 책 읽기는 무엇일까? 내 삶을 바꿔줄 책은 무엇일까? 제74회 주제와 변주는 『삶을 바꾸는 책 읽기』의 저자인 정혜윤 선생님과 함께했다. 책에서 그러했듯 실제로도 선생님의 말씀마다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배어 나왔고, 우리는 함께 눈 몰아치는 러시아를 걷거나, 사막을 여행하거나, 칠레의 밤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은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들을 듣는 것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무한적으로 발견하시는 듯했다. 그래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가능성을 믿고, 그것이 너무 소중하기에 갖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전하려 열정적으로 말씀하신다고 하셨다. 그런 선생님의 에너지를 통해 삶에는 일어나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크고 작은 일들의 아픔들에 대해 위로받고 기쁨들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정혜윤 : 안녕하세요, 저는 라디오 PD로 20년째 근무하며 시사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오신 대부분이 고등학생이라고 들었는데 저는 고등학생 때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한 가지 특징이 부모님을 생각하면 막연히 고생하신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 아빠는 신문을 좋아하시니까 아침에 아빠 머리맡에 신문을 갖다 주는 것, 그것을 몇 년 동안 했던 것 같아요. 신문이 보면 종이 냄새, 잉크 냄새가 나잖아요. 그게 가슴 속에 울리는 기분이었어요.
저희 오빠가 먼저 서울로 대학을 갔는데 방학 때 책을 여러 권 가져왔어요. 그중에 전태일에 관한 책이 있었는데 그걸 제가 읽다가 울기 시작한 거예요. 너무 슬픈 소설이라고 오빠에게 말했는데 오빠의 반응을 보니 이건 소설이 아닌 거죠. 근데 나는 왜 이런 걸 하나도 몰랐을까요? 오빠가 그러더라고요. “이런 건 신문에 안 나오잖아.” 저는 그래서 신문기자가 돼야겠다, 이런 걸 쓰고 싶다고 생각해 언론사 입사를 준비했고 얼떨결에 라디오 PD가 됐어요.
그때도 책을 정말 좋아했어요. 종로에서 언론사 공부를 위한 학원에 다니면서 《TIME》으로 영어 에세이 해석하는 공부를 했는데, ‘찰리 채플린처럼 걸었다’는 문장이 나오면 해석은 하지만 진짜 무슨 뜻인지 몰라요. 찰리 채플린이 어떻게 걷는지 모르니까요. 다행히 종로 서적이 아주 크게 있어서 책을 사서 그 계단에서 허겁지겁 책을 읽으며 궁금한 것을 찾아봤어요. ‘무엇처럼’에서 무엇을 이해하려면 책 한권을 읽어야 했던 거예요. 그때는 그래서 혼자 바쁘고 시간이 되게 소중했어요. 왜냐하면 ‘무엇처럼’을 이해해야 하니까. 나중엔 하나를 알기 위해 이렇게 어렵게, 어렵게 가는 그 감각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된 걸 알게 되었어요.
이 공간이 B612호이죠? 저는 『어린 왕자』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생떽쥐베리의 소설 중에 아주 좋아하는 책이 『야간비행』이에요. 여기서 주인공은 인간이 모두 나의 하루, 운, 고민, 인생을 교환하는 것, 나를 어디에 바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무엇의 이름으로 자기를 희생해야 하지? 전부를 걸어야 하지? 인생은 그걸 찾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거예요. 우리도 인생에서 길을 모르지만 뭔가를 걸고 교환하려고 걸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여행을 갈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털어내기 위한다는 이유로 가지만 저는 돌아와서 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요. 원래의 삶을 더 잘살기 위해서.
이전에 여러분 또래의 학생들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양아치’ 같은 고등학생 일곱 명이 글 쓰는 수업을 했던 기록이에요. 도서관에서 서로의 다른 관심사들에 대한 책을 돌려 읽었었죠. 이들 중 한 명이 시를 썼는데 이 양아치들의 공동체는 곧 왕따들의 공동체라고 했어요. 내가 전체 세상을 따돌리겠다고 왕따라는 거예요. 왜? 나는 이 세상이 마음에 안 드니까. 그래서 이 우정이 너무 소중해 제가 전시회를 열어줬는데, 그때 아이들도, 주제도 이전과 달랐어요. 지방대학을 다니느라 자주 만나지 못할뿐더러 그중의 한 명이 경영학과를 갔는데 빽빽이 자신이 간 이유를 써서 냈더니 교수님이 “꿈 깨” 하신 거예요. 이런 좌절을 거듭한 바람에 내가 책을 읽고 이렇게 살자고 결심했는데 현실은 다른 거 아니냐고 묻는 거죠.
내가 믿었던 텍스트와 실제는 얼마나 다를까요? 이건 개인의 삶으로밖에 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이것이 곧 『80일간의 세계 일주』 내용이죠. 생각한 것을 실제로 삶을 살아내는 것으로 증명하는 내용이잖아요. 그러니까 책을 정말 열심히 읽으면 난 그 삶을 살아야 해요.

인디고 : 듣다 보니 하나의 문장이 생각났어요. 니체가 말한 “복종하는 자는 결코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나의 삶 속에서 학교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여겨질까 하는 질문이 맴돌았어요. 그래서 질문을 드리자면 선생님이 책에서 새벽 3시 얘기를 들려주셨는데 잃어버린 삶을 찾고 싶은 욕망이 느껴졌어요. 《한겨레》에서도 ‘새벽 3시’를 연재하고 계신데, 이걸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정혜윤 : 새벽 3시는 자기가 자기를 표현하는 시간, 홀로 있는 시간이에요. 모두가 잠들었고 밤이고, 그래서 평소의 저에 대해 생각해보니 복수심이 많고 아쉬움도 많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드는데 그 목소리를 한 단어로 형상하자면 ‘마술 라디오’인 거예요. 한 청년이 글을 쓰는데, 아직 별로 좋은 글을 못 썼어요. 그러다 집에서 카프카의 『변신』을 읽는데 너무나 깜짝 놀라요. 아무 설명 없이 갑자기 주인공 잠자가 벌레가 됐다고 하는데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의심 없이 다 믿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소설가가 유토피아나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구나 하고 놀라요. 이 청년이 마르케스인데 그렇게 『백년간의 고독』을 썼어요. 이게 마술적 리얼리즘이죠. 이 책읽으시면 알겠지만 배경이 마콘도라는 마을이에요. 그 마을은 지구 상에 없는 공간이에요. 그래서 우리도 자기만의 마콘도를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그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이게 마술이에요.
볼라뉴라는 작가는 『2666』이라는 책에서 오장육부 리얼리즘을 주장해요. 보리스 엘친이 꿈에 나와서 동무, 인간의 역사는 세 개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다, 두 개는 수입, 지출 나머지 하나가 마술이다, 라고 해요. 그리고 우리가 살기 위해 필요했던 그 마술이라는 게 뒷담화, 학력, 야합, 배신 이런 게 아니냐고 물어요. 저는 이 세 번째 다리가 세월호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혼자 잠 못 이룰 때 드는 생각이 어떤 거였으면 좋겠는가? 라고 한다면 저는 세사르 바예호의 시,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가 필요해요. 너무 슬픈데, 내가 나거나 여자라서가 아니라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슬픈 것이라고 해요. 인간이라서 슬픈 것이 희망이라고요.

인디고 : 책을 읽고 슬픔에 대해 생각을 했는데 되게 아름다운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슬플 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슬픔 자체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어요. 요즘 사람들은 슬픔을 잘 표현하지 않고 표현하는 방법도 잊은 것 같아요. 선생님께 슬픔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혜윤 : 저는 늘 라디오를 통해 뉴스를 전하지만 아이템이란 단어를 안 써요. 나에겐 소재인데 누구에겐 삶일 수 있으니까. 슬픈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는데, 그들을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할 때 슬픔이 커졌던 것 같아요. ‘너희 고등학생, 너희 노동자’라고 하면 그들을 규정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한 사람으로 끌어내는 순간 이미 공명하는 슬픔이라는 게 있어요. 인터뷰해보니 이해할 수 없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늘 품고 있는 질문들을 갖고 걸어가는 사람들이었어요. 좋은 고민들을 가졌지만 그것을 나눌 네트워크가 없었던 거죠. 제일 무서운 일은 내가 슬퍼하지 않으려는 순간, 고통을 겪지 않으려는 순간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저희가 사는 세상에서 슬프지 않고 살기는 힘든 거라고 생각을 해요. 남을 규정하기 쉬워졌고 아니라면 나를 증명해야 하니까. 그렇지만 버틸 힘이 있게 슬퍼해요. 희망을 보면서 슬퍼하자. 세상이 지옥일 때, 지옥같이 살지 않는 방법은 내가 지옥이 되는 방법과 이 지옥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을 찾아내 공간을 넓혀주는 것이 있어요. 저는 오래전 두 번째 방법을 결심했고 제 인생의 변주가 있다면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의 슬픔과 기쁨』은 그런 책이에요. 힘든 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은 멀리서 왔어요. 놀라운 것은 힘들었던 이들이 일생에서 가장 좋았던 그 사랑의 손길을 돌려주고 싶어 한다는 거죠. 현대자동차 고공 농성하는 데 갔는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분들이 같이 와서 맨 앞에서 최루액을 다 맞고 물을 맞으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같이 있어주고 싶어했고 끝까지 버티는 걸 보았어요. 짐작도 못 했던 그 기억을 되돌려 주려고 함, 그 인간의 모습에 저는 버틸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생각할 땐 약한데 우리라고 하면 슬프되 슬픔에 휘말리지 않고 계속 움직였고, 아주 슬프진 않았던 거예요.

인디고 : 요즘 친구들은 힘들다고 하는데 자신이 왜 힘든지 진정한 이유는 얘기하지 않고 시간을 나
누지 않아요. 또 들어주는 사람도 책임이 있어 부담을 느끼는데 우정을 어떻게 나눠야 할까요?

정혜윤 : 우정의 위기는 서로를 경쟁하는 것에서 시작해요. 사실은 부모가 학부모가 되는 순간 멘토가 등장했다고 생각해요. 자기 계발과 심리 상담이 대유행하고 있잖아요. 성공한 이들의 기술과 노력을 단시간에 습득하고 싶은 것 같은데 진심을 털어놓을 데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죠. 사람과 접촉할 줄 모르는 세대에요.
서강대에서 한 번 비정규직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을 때 아주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어요. 나는 열심히 할 동안 너흰 놀았잖아, 라는 보상심리 때문이죠. 좁은 문을 통과하다보니 다들 각박해지고 진짜 괴롭기보다 푸념이고 기분 전환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도 당연히 시간이 아깝죠.
책임이란 건 가장 인간의 맨얼굴을 보는 순간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건 그런 거예요. 사람은 반드시 인생에 맥락을 잡고 싶은 때가 있어요. 그때를 만나세요. 우정이란 많이 걷고 일상의 시간들을 함께 보내는 건데 그럴 수 없는 게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공유할 수 없음, 이게 슬픈 일이에요. 그러니 세상이 각박하게 할지라도 틈새를 찌를 수밖에 없어요. 후배들이 인터뷰를 하러 많이 오는데 공부는 딱 생각날 때면 하고 밖으로 나가라, 많이 경험을 하라고, 절대로 미리 판단하지 말라고 말해요.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직 젊고 많이 살지 않았으니까 질문을 기억하고 질문에 따라 살라고 하죠. 왜냐하면 대답을 가지면 현실에서 반드시 깨집니다. 대답을 아직 습득하지 않은 것처럼 살면 그 질문이 풀리고 알게 될 것입니다. “내 친구 말에 책임을 져야 하나?”는 질문을 잊지 말고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거죠. 평생 추구할 질문을 찾아야 해요. 수단을 습득할 방법이 굉장히 중요해져서 정작 중요한 걸 못하는 있지만 내 질문을 놓지 않고 사는 건 정말 중요해요.

인디고 : 『그의 슬픔과 기쁨』을 청년들이 함께 읽었는데, 많은 부분이 충격적이었어요. 이런 고통이 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그런데도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아무것도 몰랐고 문제들은 왜 우리 삶에서 이렇게 떨어져 있는 것 같은지. 고민은 많은데 답은 없었어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누가 이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지, 어떻게 불러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혜윤 : 제가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왔을 때, 크레인 앞의 바닥에 앉아 구호를 외치면 크레인 위에서 우리의 말에 랜턴 불빛을 왔다 갔다 하며 응답을 했어요. 그 모습을 보니 우리가 조난자 같고 그 불빛이 등대 같았죠. 그 순간 ‘내가 여기 왜 왔지?’ 했어요. 이렇게 내가 있던 위치가 깨지는 순간 질문은 반드시 생성됩니다. 그때 또 누군가 한진중공업의 담을 넘어가자고 외쳤어요. 담은 너무 높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고 시도해본 적 없는 일인데, 담에서 밧줄이 이렇게 내려오고 사람들이 엎드려서 인간 사다리를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정신없이 담을 올랐는데 겁이 나고 그렇지만 그 너머에서 노동자들이 “기다렸습니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김진숙 위원이 자신만 보지 말라며 함께 있는 노동자 개개인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데, 그 목소리를 제가 녹음하면서 어느 순간 울고 있었어요. 그 평범함 때문에. 그때 그 느낌, 목소리를 부르고 싶다, 그 작업을 하고 싶다고 느꼈어요. 왜냐하면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의 사정을 궁금해 하는 순간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의 슬픔과 기쁨』의 부제도 ‘그들은 어떻게 사랑하는 사이가 됐나?’예요. 이는 곧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있나?’이죠. 처음에는 물질, 현실에서 출발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영혼의 문제가 되는 거예요. “야 사람이 의리가 있지. 염치가 있지. 책임이 있지.” ‘어떻게 연대할까?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유일한 길은 절대로 먼저 규정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참고 들어보려 애쓰는 것, 이것밖에 없어요. 가서 보고 듣는 유일한 방법.
사람이 바뀌는 것은 두 가지 빛 때문이라고 하죠. 내부의 빛과 외부의 빛인데 희망의 원리는 이 내부의 빛과 외부의 빛이 만나는 일이에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에게도 외부의 빛은 있었어요. 그것이 바로 옆 사람의 등판이에요. 내가 누구 옆에 있는가? 누구의 등을 보고 있는가? 나는 아무래도 이 사람들하고 같이 있어야겠어, 라고 결정하고 그렇게 살아버리는 것, 오직 그것으로부터 시작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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