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주들

[제75회] 장하성 선생님과 함께한 주제와 변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12-26 11:51 조회498회 댓글0건

본문

 

 

세계의 균형을 맞추어 나가는 일

김상원(22세)

세계 전역에 한 경제 서적이 광풍을 일으키고 있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인데, 그 무렵 한국에서는 긴 시간을 들여 한국의 시장을 관찰하고 온몸으로 옳지 않은 자본주의에 대항해온 한 학자의 책이 발간되어 함께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장하성 선생님의 『한국 자본주의』이다. 선생님은 두 권의 책이 비슷한 시기에 출판되어 둘 다 읽어보지 않고 일부만 차용해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가볍게 웃으셨지만, 책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책과 이야기를 통해 느낀 것은 선생님이 정말 한국의 현장에서 느낀 것들, 겪은 것들을 엮어 냈다는 사실이었다. 원래 애정이 깊을수록 충고는 더욱 뼈아픈 법이다.

아직은 따뜻한 바람이 간간이 불어오는 11월 16일, ‘주제와 변주’에서 장하성 선생님을 만났다. 만남에 앞서 경제학을 특별히 전공하지 않아서 어쩌면 내가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경제민주화’부터 ‘재벌’까지 너무 흔히 들어왔고 또 나의 경제생활과도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라 흥미로웠다. 기본적인 경제 원칙을 지킬 수 있다면 태풍처럼 모든 것을 다 엎어버리지 않더라도 불평등과 부정을 없애 나갈 수 있다는 말씀에서는 희망을 느끼기도 했다. 소수의 욕심이 다수의 권리를 빼앗지 않도록, 누구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알맞은 대우를 받을 수 있기를, 경제의 핵심원리가 바로 정의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장하성 안녕하세요? 장하성입니다. 『한국 자본주의』를 쓰는데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어요. 그런데 실질적인 고민은 이미 그 이전에, 1990년에 한국에 돌아와 사회를 본 이후 시작되었어요. 특히 1998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가서 13시간 반을 주주총회를 했었는데 당시 그 일이 사회에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왜 교수가 잘 나가는 회사 발목 잡느냐고요.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을 상대로 시비를 건다? 많은 평가가 엇갈렸죠. 그렇지만 우리는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할 때, 내가 옳기 때문에 반드시 무슨 수단을 쓰더라도 정당성이 있다고 할 순 없어요. 사회는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에 설령 내가 옳고 상대가 옳지 않아도 주어진 틀 속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주주로서 법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생각한 거죠.
그 주주총회를 통해 저는 한국 사회에 우리가 자본주의 시장체제를 한다면 바르게 해야 한다는 걸, 최소한의 절차적, 법적 정당성은 있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우리나라의 중심적 권력이자 가장 큰 힘인 재벌그룹들, 그 실질적 경영을 하고 있는 재계 리더들이 도둑질을 일삼는 경제는 정의로울 수 없겠죠. 그래서 내가 어떤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하건, 한국 사회에 무엇이 바른길인지 찾아내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경제학을 가르치면 몰가치적으로 변하기 쉬워요. 그러나 가장 현실적이기 때문에 가장 가치관이 뚜렷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한국 자본주의』는 그런 고민에서 탄생한 책이기도 해요. 그래서 이 책을 쓸 때 세 가지 원칙을 아주 철저하게 고수했는데, 첫 번째는 객관화되지 않은 사실은 말하지 않았어요. 두 번째는 인류사적으로 아무리 훌륭해도 오늘 우리 한국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면 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세 번째는 책임지겠다고 결심했어요. 이 책에는 논쟁거리가 상당히 많아요. 그래서 이 책이 무슨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주장들에 반박을 함으로써 새로운 논쟁의 시작을 원한 거예요. 일반적으로 정의로운 자본주의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왜 수많은 종말론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있는가, 또 지금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주장들은 다 옳은가? 그런 논쟁의 시작점을 위해 이 책을 쓴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이와 관련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으면 좋겠어요.


 

 

 

 

 

 

 

 

 

 

 

 


인디고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지점들이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국가 자본주의는 필요치 않다고 결론지으시는 것인지 궁금하고, 요즘 공공성이 짙은 사업들이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사기업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는데, 민영화했을 때 효율성이 전보다 높다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장하성 국가가 안 해도 될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에요. 지금 의료민영화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가 국유화된 적 없다고 생각해요. 마찬가지로 교육도 완전히 민영화되어 있고, 시장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 반값등록금은 말이 안 돼요. 공적으로 길러낸 인재들이 공공의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이야기해야지 값만 반값으로 하고 끝난다는 건 천박하죠.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이미 버리고 있는 그것을 다시 하는 것에 논쟁이 되어야 해요. 철강회사나 통신회사는 국가가 하나 사기업이 하나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공적 영역인데 방치하고 있는 것들, 특히 교육 부분 이걸 다시 어떻게 정부의 역할로 할 것이냐를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 의료 복지 이런 것은 국가가 처음부터 시작했어야 해요. 그런데 엉뚱하게 KT, 포스코 이런 거 민영화는 논쟁거리도 아니죠. 보다 공적 영역에 있어야 하는 것을 시장화시키는 것은 옳지 않아요.

인디고 현재 학교에서 무상급식을 지원해주고 있는데, 무상급식은 워낙 논란이 컸잖아요. 그래서 저도 선별적 복지로 하는 게 더 효과적인지, 전면 무상급식을 하는 게 옳은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전면 무상급식이 전체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까요?

장하성 우리나라에서 복지가 시작된 지 별로 오래지 않았는데, 실질적으로는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기초생활보장법이 만들어져서 복지가 시작되었고 그전에는 동사무소에서 호구조사를 해서 쌀이나 연탄을 주었죠. 이 법은 국민의 인간다운 삶의 최저 수준은 정부의 책임이다,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선별적, 보편적이라는 말이 오해를 많이 일으킨다고 생각해요. 전면적 복지국가로 가는 것에 대한 지나친 과욕 때문에 모든 것을 보편적 복지화하는 것에 이념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결국 복지는 국가가 재정능력이 있느냐는 거예요. 더 심각한 것은 의료문제예요. 의료보험 자기 부담 상한가라는 것이 있는데, 보편적 복지로 100만 원까지만 개인이 부담하자라는 좋은 생각이지만 재정으로 거의 불가능해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난치병, 불치병을 겪는 분들이 있고 재정부담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죠. 그런 데부터 먼저 해야 한다, 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을 수 있죠. 무상급식은 단지 경제적 수준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조금 다르긴 합니다.

인디고 『한국 자본주의』에서 선생님께서는 투표를 결정하는 것 중 하나가 유권자들의 근시안적 시각이라고 하셨는데요. 이 외에도 기억상실 투표나 계급배반 투표 등이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장하성 한 개인이 어떻게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겠느냐, 해봤자, 라는 심리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심리가 광범위하게 공유될 때는 내가 바라지 않는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죠. 투표는 기본적으로 심판적인 성격을 가져야 해요. 그걸 기억 투표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잘했는지, 못 했는지 상관없이 투표를 해요. 또 자기 계층의 이익을 위한 투표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한국 사회는 계층 분화를 한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나의 계층이 정확하게 어떤지 모르고 여론에 휩쓸리는 거죠.
우리가 또 투표율이 굉장히 낮은 나라인 이유가 주로 저소득층, 청년층에서 불참을 많이 해요. 특히 여러분 세대가 중요한 게 저임금 수치의 대부분이 여러분이고, 실업의 대부분이 여러분이에요. 미래는 여러분 것인데 스스로 결정할 것을 포기해버리는 거예요. 여러분이 정치에 참여를 많이 해야 해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시작은 투표예요.


 

 

 

 

 

 

 

 

 

 

 

 


인디고 제 친구들 중에서는 사회적 분배에 대해 승자가 노력으로 이끌어낸 것을 강제로 끌어내리려고
한다는 의견을 가진 친구들이 많습니다. 노력했기 때문에 그만큼을 돌려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친구들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요?

장하성 서울의 경우 강북의 수많은 고등학교 중에서 우리나라의 유명하다는 대학에 단 한 명을 보내지 못하는 학교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곳의 아이들이 아이큐가 낮아서 그럴까요? 본인의 노력과 큰 관계가 없어요. 그런데 한국사회는 좋은 대학을 나오면 일정한 기득권을 가져요. 이게 정의로워요? 그런데 사람들은 본인들이 노력해서 얻은 거라고 생각해요. 왜? 실제로 노력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노력 외의 구조적 사회적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부분을 대개 무시하고 싶어 해요. 그리고 노력 부분만을 강조해요. 그런데 모든 경우에 그렇지 않아요. 교육문제로만 말씀드렸지만 사회 구조가 많은 결과를 이미 결정을 합니다. 내 능력으로 얻었어, 라고 말하는 것은 오만하고 자기 합리화에 불과합니다.

인디고 지금 무한경쟁의 시대인데, 중국과 미국에서는 화폐전쟁을 시작했다고 하고 우리나라도 경쟁을 지속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사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활동을 활성화함으로 국가 경제 자체의 규모가 커질 수 있다고 얘기하는 데 사실인가요?

장하성 자기 나라의 화폐가 국가적으로 통용되느냐 아니냐가 중요해요. 돈은 인쇄하는 거잖아요. 우리는 그런데 찍어봐야 우리 안에서만 유통되니까 많이 찍어봐야 의미가 없어요. 미국은 반면 다른 나라에 가서 써버리면 돼요. 이게 화폐전쟁의 틀이죠. 세계 모든 나라가 자기 나라의 화폐가 세계에서 통용되길 원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인쇄를 해서 세계에서 통용 가능한 것이 있어요. 그게 바로 기업의 주식이에요. 그래서 기업의 경쟁력은 정말 중요하죠. 그런데 문제는 대기업들이 더 성장해서 돈을 벌어올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나간다는 거예요. 제2의 대기업 신화들이 생겨나야 하죠. 미국은 불평등한 사회이지만 새로운 창업자들이 성공하는 사회예요. 지금 이미 있는 대기업을 보호해주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에요. 새로운 도전자들은 나오는 족족 망하고 있어요. 재벌이 안 하는 사업이 없으니까요. 젊고 새로운 생각을 가진 이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발전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인디고 살아가면서 만나는 일상적인 경제적 불의함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최저 임금에 대한 논의는 많지만 더 큰 문제는 사실상 최고 시급이 된 상황에서 정말 많은 친구들이 최저 시급에 못 미치게 받으면서 일을 한다는 건데요. 이렇게 사소한 권리마저 잘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장하성 피케티는 자본세에 대한 이야기, 소득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한국은 자본세에 대한 논의를 할 구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임금이죠. 지금 시급 이야기를 했는데, 시급이 오르기 위해서는 자영업자들의 문제가 먼저 해결이 되어야 해요. 그래야 법이 현실에서도 의미를 갖죠. 그런 걸 지금 수정해야만 하는 구조입니다. 단순히 최저 임금을 올리는 것이 문제 해결이 아니라 구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해요. 우리 세대가 세상을 바로 만들지 못해서 지금 고통이 생긴 거고 그래서 여러분 세대가 바꾸어야 해요. 약자를 배려한다고 더 큰 약자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