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주들

[제78회] 나태주 선생님과 함께한 주제와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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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7-10 12:20 조회3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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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시인과 함께
꿈꿨던 시간

김기환(18세), 김상원(23세)  

시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시를 보통 시험으로, 교과서로 접하는 학생들에게 어쩌면 너무 어렵고 두려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리 시를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나태주 선생님의 『꿈꾸는 시인』을 읽다 보면 시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는 우리에게 인간이 얼마나 희망차고 존귀한 존재인지, 세상엔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이 많은지, 또 얼마나 고마운 것들로 우리가 숨 쉬고 있는지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쓴글이기 때문이다. 나태주 선생님은 직접 그러한 시를 써온, 이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지난 <인디고잉> 46호 ‘시가 내게로 왔다’ 코너에서 나태주 선생님의 시를 통해 깨달은 시의 아름다움에 대해 썼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직접 선생님을 뵙고 이야기 들을 수 있는 ‘주제와 변주’가 열려 정말 기뻤다. 선생님은 혹시 뒤쪽에 앉은 학생들이 보이지 않을까 내내 자리에서 일어나 학생들을 따뜻한 눈길로, 다정한 말투로 대해 주셨다. 한 마디라도 더 전하려는 에너지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평생을 시를 써오셨지만, 아직도 자신은 시인이 아니며 그것은 오로지 읽는 이의, 평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 속에서, 나태주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며 동시에 하나의 훌륭한 시와 같다는 것을 느꼈다.

 

 

 

 

 

 

 

 

 

나태주 안녕하세요. 저는 문학 강연을 많이 다니고 있는 데요.『꿈꾸는 시인』은 최근 2~3년 동안 문학 강연을 다님으로 제가 받은 선물입니다. 강연료보다 더욱 좋은 것은 젊은 학생들이 주는 감동. 내가 이야기를 함으로써 주는 것이 아닌 이야기를 함으로써 나 스스로의 반성 같은 것이지요.이책이 잘팔리고 안 팔리고는 잘 모르겠지만 젊은이들에게 더욱 가까이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제 나이가 71세인데 이제 제가 무슨 거짓말을 하겠어요? 이제는 거짓말을 하고 지울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젊었을 때는 흰 구름 바라보면서 가슴 두근거리고 여자들 따라 다니고 날이 밝으면 먼 데로 길 떠나고 싶고, 그런 것이 제 소망이고 꿈이었는데 요즘에는 밥 안 얻어먹고 욕 안 얻어먹는 것이 삶의 목표예요. 나이 많은 사람이 욕 안 먹기가 쉽지가 않지만,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정직하고 거짓이 없는 이야기를 한 책입니다. 쓰고 싶어서 썼고 쓰는 데에도 즐거웠고 다시 여러 번 읽어봐도 감사하고 재밌는 책이었습니다.

인디고 제가 책에서 재밌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나태주 선생님의 작가 소개를 보면 처음에 시를 접한 계기가 사모하는 여학생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시를 선택한 것이었다고 적혀있습니다. 혹시 그 이유가 기억나시나요?

나태주 저는 시를 읽는 이유 중에 하나가 생존이라고 생각해요. 생존,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읽고 쓰는 거지요.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는데 그걸 표현하지 못하거나 전하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할 때 우리는 힘들어져요. 오히려 돈이 없어서 배고픈 것보다 내 마음속에 있는 정서를 해결하지 못해서 더 힘들지요. 오늘날의 우울증, 힘들고 지친 삶의 얘기들이 바로 돈 없어서, 집 없어서, 옷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감정의 문제예요. 그래서 저는 내 마음의 감정을 잘 승화 혹은 형상화해서 내가 살아남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막 미운데 그 미운 말을 마음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이 얘기지요. 어떤 여자가 정말 좋은데 그냥 낚아채면 붙잡혀 가잖아요. 그렇게 하지 말고 아름다운 시, 음악 이걸로 바꿀 수도 있어요. 그런 걸 나름대로의 생존이라고 해요.

인디고 중학생 때 학교에서 백일장을 되게 많이 했어요. 제가 시를 잘 쓰지는 못하지만 시가 좋아서 항상 시를 써서 냈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꽤나 괜찮은 시였고 주변 반응도 괜찮고 해서 5번 정도 냈는데 한 번도 상을 못 받았어요. 물론 상을 받으려고 시를 쓴 건 아니지만 ‘왜 나의 이 아름다운 시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가’하는 생각에 너무 슬프고 그랬어요. 글을 쓰는 저의 자세에 대해서 돌아보게 됐는데 만약에 글을 쓰고 시를 쓸 때 이렇게 아무도 안 알아주고 사람들이 몰라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태주 어떤 대회에 나가거나 입상하는 것은 간발의 차이예요. 간발의 차이. 간은 사이 간間이고 발은 터럭 발髮이죠. 머리카락 하나 차이라는 뜻이에요. 저도 시를 써서 신춘문예로 데뷔를 했는데 그 작품이 초등학교 선생님들만 보는 작은 잡지의 독자 문예란에 냈는데 떨어졌어요. 신춘문예에 되는 작품도 떨어졌던 거예요. 그러니까 고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대회의 성적은 엄청나게 달라져요. 그래서 심사하는 사람은 좋은 사금이 쓸려나가는가 정신을 차려야 해요. 여러분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저렇게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겠죠. 그리고 지금은 아직 쓰고자 하는 시 세계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어요. 더 올라가 봐요. 시는 가능성과 방향성이 엄청나게 많은 거예요. 자기 마음처럼 올라가다 보면 진짜 나를 알아주는 그런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해요.

인디고 제가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문장 중에 하나가 “독자가 시인의 자리로 옮겨가려는 시도가 위험하고 경계할 점이다”라는 부분이었어요. 저는 시인을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한번 써보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거든요. 그래서 만들어져있는 시인이 있는 건 아닐 텐데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가 궁금합니다. 시인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경계에 부딪힐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태주 시인이 되는 방법이 너무 쉬워요. 시인이 너무 쉬운 만큼 그냥 나도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충분히 연습을 하고서 시인이 되어야 하는데 공부 안하고 시인이 돼요. 저는 지금도 제가 시인인지 아닌지를 모르겠어요. 시인은 독자가 시인이라고 해줘야 시인이 됩니다. 독자가 그렇다고 인정을 해줘야 시인이 돼요. 본인이 스스로 시인이라 그러면 절대 안 돼요. 법정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스님이 되려는 사람들이 법 스님 이름을 믿고 내가 스님 밑에서 스님이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온대요. 그런데 법정 스님이 내 밑에서 3년 동안 내가 시키는 일을 하겠느냐 그러면 사람들이 있을까요, 안 있을까요? 다들 가버린대요. 1년 후에 승복 입고 딱 온다는 거예요. 난 이제 1년 만에 스님이 됐습니다, 하고요. 그렇지만 그렇게 스님이 돼서 뭘 하겠어요? 법정 스님이 3년 동안 기다리라는 것은 3년 동안 모든 속세를 끊을 준비가 됐는지, 스님이 되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지내라는 거예요. 그런데 1년 만에 스님이 되고, 시인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 말은, 너무 빨리 시인이 되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인디고 최근에 「학원 가기 싫은 날」이라는 잔혹 동시 같은 잔혹한 작품이 많이 나오는데요. 부모로서 교육할 때 걱정스러운데, 잔혹 동시가 비판을 많이 받는데 비평가들 사이에선 시선이 다르더라고요. 떠오르는 생각을 여과 없이 쓰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나태주 저는 학생들은 그 시를 안 읽었으면 좋겠어요. 이 시는 그 학생보다도 부모님과 출판사와 삽화 그린 사람이 문제가 있어요. 걔가 커서 어른이 돼 돌아봤을 때 얼마나 후회스럽겠어요. 우리의 영혼은 아름다운 거예요. 제일 바깥에 있는 만나기 쉬운 감정이 나쁜 것일 뿐 우린 아주 좋은 사람들이고 글을 쓴다는 건 이 마음속의 아름답고 순결하고 깊은 영혼을 꺼내려 하는 것인데 이런 시를 쓰고 출판하기까지 했다는 것은 영혼으로 아이를 죽인 것이죠. 어린 아이가 철없이 한 소리를 이렇게 공론화시켜서 그 아이가 비난을 들어야 되겠어요? 열 살 아이는 행복해야 합니다. 시라는 것은 활자화되면 책임을 져야 해요. 이러한 시를 왜 냅니까? 책 천 권을 찍는 건 천 사람 보라고 내는 거잖아요. 이게 공적인 거라 사람들이 비정상적이라 생각하면 내면 안 됐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다 보여준다고 해서 화장실 모습까지 다 보여줄 필요가 없잖아요. 그게 인간적인 존엄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자신이 아름다워질, 당당해질, 부끄럽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이건 너무 인간을 부끄럽게 만들어요. 화가 나는 걸 생각하면 화가 나지요. 하지만 그건 그때의 마음인 거예요. 문제 해결이 책 내는 것밖에 없었나요? 학원을 안 보내면 되는 거예요. 그건 개인적인 문제예요. 그리고 이 사회 전반의 문제가 있다면 학원 안 보내는 운동을 하거나 큰 구조를 바꾸도록 노력을 하면 되죠. 동물적이거나 기계적인 노력이 아니라 식물적인 노력이에요.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 거예요. 사회구조를 바꾸는데 이걸 책 내서 충격주고? 그건 효과적이지 않죠.

인디고 학교 문제집이나 책 같은 걸 사보면 시인이 직접 쓴 게 아니라 전문가 선생님들이 해석해 놓은 글이 있는데 실제로 선생님이나 그 시인들이 쓴 의도와 해석이 같은지를 묻고 싶습니다.

나태주 그렇게 책 속에 등장하는 시 해석은 시인의 본래 뜻과는 전혀 같지가 않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문학 강연을 거죠. 지금 우리는 계속 명사만 따지잖아요. 그러니까 시 한번 들었는데 자기가 참고서를 보고 깜짝 놀랐대요. 자기도 모르는 공감각이니 뭐니 이런 걸 보고 얼떨떨하다더라고요. 시인도 모르는 얘기를 참고서 쓰는 분들이 하시죠. 시인들은 사실 이론가가 아니에요. 시인들이 이론가가 되면 시 못 써요. 왜냐하면 시는 막 써야 하는데 이론부터 따지고 나가면 안 되죠. 시는 그냥 써야 해요. 개구리가 준비 조 안 하고 물속으로 풍덩 들어가듯이 감정 속으로 풍덩 들어가는 거예요 . 요즘 대학에서 강의하는 시인들이 많은데 대단히 미안하지만 대학에서 강의하는 시인들의 시가 평론가들한테는 환영을 받고 상당히 괜찮은 시로 평가될 수 있지만 독자들은 아마 읽어도 모르겠다고 그럴 거예요. 카뮈라는 사람도 “ 글을 어렵게 쓰면 평론가가 모이고 글을 쉽게 쓰면 독자가 모인다” 고 했어요. 박완서 선생님도 이전에 서울 교보문고에 와서 학생들하고 팬 사인회를 하면서 내

가 독자들이 알아듣기 쉽게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 물었을 정도예요. 그러니까 독자들이 알기 쉽게 글을 쓰려면 작가가 힘들게 써야 해요. 냥 내 멋대로 아는 대로 쓰면 너무 쉽긴 하겠지만 작가들이 내려와야 헤요 . 그렇다고 무조건 유행가 같은 시를 쓰라는 것은 아니고 독자들의 마음속에 그 바탕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아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 읽을 때는 따지며 읽지 말고 느끼면서 읽으세요. 사실 감정이 하나는 아니잖아요. 읽을 때마다 다르잖아요. 노래도 우리가 한번 불러서 안 되니까, 읽을 때마다 노래가 다르잖아요. 기분 좋을 때 부르면 더 좋아지고 슬플 때 부르면 더 슬퍼지는 게 노래 아니에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시는 따지면서 읽는 게 아니라 느끼면서 읽는다. 그리고 쓰는 것도 느끼면 쓴다. 느끼니까 모르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 시인은 무식한 사람이에요. 저도 몰라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내가 끌리는 대로 써요. 또 인생도 느끼면서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너무 인생살이에 무엇, 명사, 대명사 이렇게만 사는 것 같아요. 애들한테 이렇게 말하잖아요. 너 뭐 될래? 어떻게 뭐가 돼요, 사람이 되지. 그러지 말고 우리는 동사형으로, 형용사형으로, 부사형으로 살아야 해요. 젊은 시절에 판·검사를 하고 높은 사람을 하고 무엇을 하고.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요. 그 시절 그걸 하면서 어떻게 했느냐 이게 중요하단 말이에요.

인디고 요즈음 선생님을 제일 떨리게 하고, 기쁘게 하고, 기분 좋게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태주 나는 여기의 젊은 사람들을 보면 가장 기뻐요. ‘후생가외 後生可畏’ 라는 말이 있듯이요. 저는 사실 정말 축복 받은 사람이에요 . 패혈증 직전까지 가고 했던 죽음의 위기가 있었는데 이런 악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부산까지 와서 젊은 사람들 만나는 게 정말 기쁘지요. 저는 선생을 오래 한 사람으로서 한꺼번에 인사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한사람 다 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나하나의 존귀한 점을 존중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려는 것은 「풀꽃 」에 대한 거예요 . 왜 풀꽃인가? 저는 이 시가 아이들한테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나이를 먹어서 보니 큰 저는 키도 작지만 마음도 작고 생각도 작고 생활도 조그마해서 지금도 꽃을 보면 그냥 계속 보고 싶어요. 애들처 그리고 사진 찍고 싶고요 . 행복이라든가 뭐 이런 것들은 큰 데 있고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데 있고 나한테 있고, 있던 자리에 있고 오래된 것 속에 있다는 걸 일깨워준 것이 아이들한테 얻은 것이에요. 하루는 그림을 그리는 것을 같이 공부했어요. 나가서 풀꽃 그림 그리자 했는데 아이들이 풀꽃을 그리면서 대충 보고 그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얘기를 했어요 . “얘들아 풀꽃 그림을 그리려면 자세히 안 보고 대충 보면 안 되잖니? 대충 보지 말고 자세히 봐라, 그럼 예뻐.” 또 애들은 오래 안 보잖아요. “얘들아 그러지 말고 오래 좀 봐봐, 그럼 사랑스러워.” 내가 애들을 이렇게 달랬죠. 그리곤 애들을 쳐다보니까 다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너희들도 그래.” 그랬어요. 그러고 났더니 지가 말을 하고 지가 주워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교장실로 돌아와서 아이들이 그림 그린 것을 보면서 내가 아까 뱉어낸 걸 적었어요. 자세히 봐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를 쓸 때 읽는 책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책 속에서 시가 나오는 줄 아는데 책에서는 시가 절대 나오 지 않습니다. 시는 문자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음성에서 나오는 거예요. 입에서, 입말에서 시가 터져 나와야 쉬워지고. 감동이 있고 현실감이 있고, 생명력이 있고 오래 살고 그리 고 독자들한테 많이 갑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바로 시는 문자에 있는 게 아니고 우리의 말, 우리 삶에 있다, 우리 하루하루에 있다는 겁니다 . 그 지겨운 삶 속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참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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