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주들

[제79회] 김중미 선생님과 함께한 주제와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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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7-10 12:24 조회3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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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것의
즐거움

이윤영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지난 <인디고잉> 46호에서 우리는 『모두 깜언』을 읽고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였습니다. 혼자 앞만 보고 뛰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돌아보고 살펴보고 살자고 그리고 각자 자신의 삶에 치열해지자고도 다짐했었지요. 이 치열함이란 서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서로를 사랑하며 살자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살자고 하는 의미가 더욱 필요해진 지금, 김중미 선생님을 꼭 뵙고 말씀을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작품을 통해, 신문 칼럼을 통해 늘 함께 사는 것의 중요함을 이야기하는 작가이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5월 31일 따뜻한 봄날, 『모두 깜언』,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저자 김중미 선생님을 직접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주제와 변주가 시작하기 전, 선생님이 살아가는 곳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지금 열한 부부와 공동체로 같이 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집에는 고양이 4마리와 개 7마리가 같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유기견이거나 도시에서 품종견이라고 기르다가 못 키워서 버린 애들이라고 소개하셨어요.

“저와 저의 공동체에서 동물을 키울 때나 공부방에서 여러분 또래의 아이들, 더 어린아이들을 만날 때 지키는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선택을 받고 가장 많이 배려받고 또 가장 많이 존중해야 하는 존재는 가장 약한 존재들입니다. 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가 되려면 그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약하고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가난한 사람이 가장 높임을 받는 것. 어떤 생명들에게든 저 역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을 살아가는 답 중에 하나가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김중미 선생님. 그런데 선생님은 어렸을 때는 다른 사람과 도시락도 같이 먹지 않을 만큼 함께하는 것을 참 못했다고 하십니다. 그런 선생님이 어떻게 ‘함께 사는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함께 제79회 주제와 변주를 통해서 알아보시면 어떨까요?

인디고 : 책 『모두 깜언』의 주인공은 왠지 있을 법한 학생들처럼 느껴졌습니다. 주인공 ‘유정’이나 ‘우주’의 모델이 있었나요?

김중미 : 계기가 된 인물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모두 깜언』을 처음 냈을 때 저희 공부방 애들이 그랬어요. “뭐야 이거 내 일기 같잖아.” 그런데 그게 주인공이 자기 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활이 비슷하다는 거예요. 대도시 근처 농촌 학생들은 오히려 집단적으로 비교를 당하는 경우가 있어요. 더구나 부모님들이 농사를 하시건 주변의 인근 도시로 일하러 나가는 노동자이건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나 처지에 대해 당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밀려난 사람들 패배자라고 생각하죠.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져요. “나처럼 되지 않으려면 너 공부해야 해.”
농촌에 살면서도 흙 한번 만져보지 못한 아이들이 있어요. 집에서는 “너마저 농촌에 살면 안 된다”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오히려 잘 못 해요. 그래서 저는 ‘유정’이라는 아이를 통해서 농촌 아이들이 사회의 통념을 깨가는 주체가 되기를 원했어요. 생명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벗삼아 사는 것의 가치를 아는 인물이지요. 해마다 한 해에 한명씩은 그렇게 매력적인 녀석들이 있어요. 그런 모습을 통해서 현실은 암울하지만 여러분들이 이런 힘을 가진 청소년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어요.

인디고 : 책에 보면 아이들이 시골에 살면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농촌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부산에도 패배의식을 가진 청년들이 많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선생님께서 어느 신문사와 인터뷰한 것을 봤는데요. 공부방 아이들 중 성공한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오히려 선생님께서 성공한 삶은 어떤 삶인가 하고 되물으신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성공한 삶은 무엇입니까? 그 기준에 맞추어 공부방 아이들 중에 성공한 아이들이 있었나요?

김중미 : 제가 햇수로 29년을 같은 곳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87년에 처음 갔을 때는 공부방이 아니라 아기를 돌보는 아가방을 했어요. 아기들이 기기 시작하는데 엄마는 생계를 이어가야 하니까 아이 허리에 줄을 묶어서 전봇대랑 연결시켜 놓는 거예요. 그 주변에 돗자리를 깔아두고요. 그러면 아이가 온종일 거기를 뺑뺑 돌면서 노는 거죠. 처음 만석동에 갔을 때 신문 배달을 했어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그 지역을 자세히 알고 싶어서요. 신문 배달을 하다 보면 엄마, 아빠는 일을 나가고 문이 잠긴 집에 아이들이 있어요. 입학하기 전까지는 온종일 집안에 갇혀있는 거예요. 저희 공부방에 그렇게 2~3년을 지냈던 아이가 왔었는데, 자기 친구들의 눈을 고양이눈으로 그리는 거예요. 그 아이가 사는 집에 창문이 없었는데, 그 아이 눈에는 모든 사람의 눈이 그렇게 보였던 겁니다. 그렇게 일 년을 아가방을 운영하고 신문을 돌렸는데요. 제일 필요한 것이 공부방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을 보호해주고 한글이라도 가르쳐주면서 놀아주는 사람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했죠. 그때 마침 동생을 맡기러 온 아이가 “이모, 우리도 아가방처럼 공부방 해주면 안 돼요?”하고 물었어요. 그 아이가 지금은 38세인데요. 지금 저와 같이 사회복지사 공부를 해서 공부방을 하고 있어요. 아직도 그 친구들은 가끔 어린 시절 가난과 외로움으로 받았던 상처들이 힘들 때마다 삐죽 올라와요. 그러면 자신도 힘들고 주변 사람들도 힘들어요. 그런데 우리는 함께 힘들기 때문에 아픔의 강도가 줄죠. 그렇게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 친구들이 꽤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전셋집에 살면서 자식 둘 키운다고 뼈 빠지게 힘들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고자 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저는 이런 친구들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기의 주인이 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준으로 볼 때도 성공한 친구들이 많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10년 만에 결혼할 색시를 데리고 오는데, 그 결혼할 상대가 아주 착한 사람이면 그 아이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 남자아이들은 아주 말썽꾸러기였어요. 그래도 하나같이 색시들은 잘 데리고 와요. 저는 그 여자 분께 무릎 꿇고 절하고 싶어요.(웃음) 아이들이 그렇게 말해요. 자기 자신의 삶이 부끄러울 때는 공부방에 올 때뿐이라고 말이죠. 공부방에서 열심히 하는 이모, 삼촌을 보면 부끄러워진대요. 그런 양심을 갖고 사는 것만으로도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인디고 : 소설에 보면 유정이가 다친 고양이를 정성껏 돌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주변 친구들에게서 찾아보기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아마 그런 고양이를 보면 사진 찍고 SNS에 올리고 그런 식이에요. 청소년 사회에서 이런 모습을 조금이라도 바꾸어나가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김중미 :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 스스로도 여러분들이 소중하다는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여러분들에게 제가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돌봄을 받아보고 존중을 받아봐야 그 마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저는 우선은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라도 관심을 갖고 배려하고 그 친구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조커와 나』라는 단편집을 냈을 때 그 배경이 되었던 것이 4~5년 전 학교였어요. 인천에서는 변두리 지역일수록 학교폭력이 심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보다 그 둘을 모르는 척하는 방관자들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고 관계를 시작하면 책임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길고양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내가 구조해내는 것이 더 편할까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것이 편할까요? 모르는 척 하는 것이 더 불편하지 않나요? 그 상황이 계속 잔상이 남잖아요. 예를 들어 1년 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죠. 너무 감당하기 힘든 일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빨리 잊고 싶어 하지요. 국가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평범한 가족들까지 갈라놓았어요.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갈라놓기는 쉽지요. 그들의 약한 고리를 쉽게 파악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편해졌나요? 공부방 다니는 아이의 같은 학교 친구가 자살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문에 나오지도 않았고, 학교에서도 1주일 만에 애도 기간을 하고 끝냈어요. 중3이니까 공부해야 한다고 선생님들은 이야기했죠. 선생님들의 얼굴에서 슬픔은 느껴지지 않았어요. 죽은 친구는 전교생이 알고 있는 왕따였어요. 그 아이가 앉았던 자리에는 앉지 않으려고 했던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독한 왕따를 당했던 거예요. 그러니 그 아이의 죽음이 그 학교 친구들에게 모두 나 때문에 죽은 건 아닐까 한번쯤 고민하게 했죠. 나는 왜 그 따돌림에 침묵했을까 고민했을 거예요. 실제로 그 충격으로 저희 공부방 아이 중 한명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어요. 자살한 아이와 친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모순덩어리의 학교는 다니고 싶지 않다고요. 검정고시로 대학을 가게 된 이 아이가 어느날 “이모, 나 그런데 자살한 친구 이야기를 다른 친구들과 해봐도 될까요?”하고 물었어요. 다른 애들은 아닌 것 같은데 자기는 아직도 너무 아파서 그 친구 얘기 한번 해보고 싶다고요. 해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이 친구가 주도적으로 친구들을 모아서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함께 통곡하는 거예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다들 상처를 갖고 있었던 거죠. 그 기억이 곪아가고 있었던 거예요. 아이들 중에는 죽은 친구와 아주 친했던 친구도 있었어요. 자기들끼리 얼마나 미안했는지 무서웠는지 슬펐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어디에서도 말할 수 없었던 것을 털어놓았어요. 이 아이들이 자기네들끼리 얘기하고 열심히 잘살고 있어요. 침묵했던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면서. 지금은 지역아동센터에서 자원봉사도 하면서 그 상처를 치유해가고 있어요. 거창하게 길고양이를 용돈까지 써가며 병원 데려가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갖는 슬픔, 모순, 불평등에 눈을 뜨는 것이 시작입니다.

인디고 : 선생님은 왜 청소년을 위한 소설을 쓰시나요?

김중미 : 저는 청소년 시절 책에서 무척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가난한 동네에서 13년 동안 살면서 만나는 아이들한테도 힘이 될 수 있는 철학과 가치를 나누고 싶었어요.

우리 사회가 근현대시기를 거치면서 큰 사건들을 겪었잖아요.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이요. 가장 최근에 국민들 전체에 삶의 가치나 정신에 영향을 미친 것은 IMF라고 생각해요. 그 이후에 우리 사회는 더 돈이 최고인 사회가 되었어요. 함께 망하는 사회에서 나만이라도 살아남기 위해 더 발버둥 치는 사회가 되었어요. 물론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는 특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IMF를 겪고 나서 몇 년 후 언론에서는 마치 위기가 다 지난 것처럼 보도했어요. 그런데 빈민지역은 경제위기가 제일 먼저 닥치고 가장 늦게 회복되어요. 만석동이 그랬죠. 학교에 갈 아이들이 공부방으로 와요. 엄마, 아빠가 자고 일어나니 없어졌다구요. IMF 때 경기 활성화를 이유로 신용카드 사용을 국가에서 권장했어요. 신용카드를 써보지 않은 사람들한테는 그게 요술램프 같은 것이었죠. 그걸로 학비를 쓰고 생활비를 쓰고 다 했어요. 그런데 IMF 이후에 다시 직장에 가니 월급이 이전 월급의 70%밖에 안 되고 전부 비정규직인 거예요. 아무리 일을 해도 카드빚을 갚을 수 없고 판잣집조차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아이가 보는 앞에서 자살을 시도해요. 자정에 아이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뛰어와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나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지만, 이겨낼 길이 쉽게 안 보였어요. 저희 공부방 아이들 중에 본드하다가 감옥에 간 아이도 있고 아디다스 체육복을 닷새 동안 안 돌려 줬다고 절도범으로 몰려 소년원에 간 아이도 있었어요. 그런 애들을 보면 막막하고 힘들고 화가 나지만, 저 다락방에서 본드하고 있는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저 아이의 외로움은 얼마나 깊을까,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한겨레 신문》을 폈는데 창비 어린이 책 공모가 뜬 거예요. 그때 막연하게 어려운 시절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난은 너희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이런 일들을 겪어도 함께 살면 되니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괜찮아, 함께 이겨내면 돼. 그리고 너희가 벼랑에서 뛰어내리면 나도 함께 뛰어내릴게.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글을 썼어요. 고3 수업이 끝나는 밤 12시 30분부터 아이를 재워놓고 새벽 1시, 2시부터 시작해서 3시간~4시간씩 썼어요. 두 달을 그렇게 썼는데요. 당장 내일이 마감인데 맞춤법도 틀리고 주인공 이름도 뒤죽박죽인 거예요. 그래서 안 낸다고 했더니 남편이 이거 쓰는 동안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며 꼭 내라고 하더군요. 아까워서라도 내라구요. 그래서 한 번 더 보고 보냈어요. 그렇게 숨 가쁘게 소설을 보내고 나서 생각했어요. ‘내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구나’, ‘권정생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좀 더 쉬운 말로,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구나’ 하구요. 그리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공모전 발표날 밤에 공부방으로 전화가 왔어요. 제가 공모를 낼 때 제 이름이 부끄럽고, 그렇다고 필명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이름을 살짝 바꿔 ‘김미중’이라고 이름을 써서 냈어요. 1월 15일(발표날)에 계속 공부방으로 전화가 오는데 후배들이 그런 사람 없다고 계속 전화를 끊는 거예요. 저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저도 그렇게 써냈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렸어요. 저희 남편이 용케 그걸 기억하고 김미중이 저를 지칭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작품이 『괭이부리말 아이들』이에요.
저는 작가, 청소년 작가, 어린이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 꿈이 아니었고, 단지 여러분 또래의 아이들에게 용기도 주고 위로도 해주고 싶어서 글을 썼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글을 쓰게 된 것이구요. 제가 글 쓰는 일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지금 가난하고 외롭고 지금 마음이 아픈 아이들과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와서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니 신기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힘이 느껴집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 여러분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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