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주들

[제87회] 이혜정 선생님과 함께한 주제와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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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6-17 23:34 조회1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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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주체는 스스로 배우고, 생각하는 학생입니다

 

정리 김민성, 성의정(18세)

 

고등학생이 된 첫해인 작년, 힘든 한 해를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매 시간, 매일이 수능과 내신이 중요해졌고, 저는 학교에서 한 인간 또는 학생이라기보단 걸어다니는 성적표나 다름없어졌습니다. 미술을 전공하고 싶지만, 미술에 주력하는 것을 포기하고 수학 성적을 올리기 위해 수학학원에 다니라는 권유를 들었습니다. 수능 비문학 유형을 잘 풀기 위해 독서를 할 때도 내용을 숙고하며 읽기보다는 빨리 읽는 법을 배웠지만, 정작 내용은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결국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학생들도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불만이 많습니다. 입시라는 관문 앞에 줄 세워지는 상대평가로 인한 경쟁은 지나치게 과열되었습니다. 학습자들은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학습보다는 어떻게든 정답을 맞히기 위한 수용적 학습 태도에 길들고 있습니다. 미래는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는데, 지금 받는 교육이 미래에 얼마나 쓸모 있을지 회의감도 듭니다. 2016년 우리나라에선 국정농단사태가 일어났고 많은 국민은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태를 일으킨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공부를 잘했던 엘리트들입니다. 우병우 전 수석, 조윤선 전 장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모두 서울대학교, 사법고시 합격자 출신입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국정농단 사태는 결국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인디고 서원에서는 이런 교육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공부를 하던 중 이혜정 선생님이 출연하신 EBS <시험>이란 다큐멘터리를 보았고, 이후 이혜정 선생님이 쓰신 『대한민국의 시험』을 읽었습니다. 이혜정 선생님께서는 ‘주입식 교육을 통해 암기하는 시험’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시험’으로 바뀌면 대한민국의 교육이 바뀔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육의 미래를 걱정하며, 교육에 대한 비판적, 창의적인 소통을 하기 위해 이혜정 선생님을 제87회 주제와 변주 자리에 모셨습니다.


이혜정 : 안녕하세요, 초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는 그냥 굉장히 성실하고 누구보다도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착실한 모범생이었어요. 그런데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다른 사람의 글이나 논문을 이해하고 빠르게 익히고 시험 기간에 토해내는 것들은 가능했는데, 그것에 대한 저의 의견이 없더라고요. 제가 다른 사람의 글을 읽었을 때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은 오로지 오타밖에 없어서 좌절스러웠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저 혼자 뒤집어 생각해보고, 트집 잡아보고, 이 훈련을 5년정도를 했어요. 그러면서 다르게 생각하는 근육이 생겼어요. 무얼 보더라도 또 다른 관점이 보이고, 또 다른 생각이 보이더라고요. 교육계에서는 IQ와 같은 지능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라고 인식됩니다. 반면 비판적 사고는 길러지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 교육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고 있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저에게 많은 학생이 “공부가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했어요. 아니, 서울대씩이나 들어오려면 적어도 공부의 신 정도는 되었을 텐데도 말이죠. 그래서 학생들이 공부하기 힘들다고 할 때 저는 “네가 더 열심히 하면 되지!”라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해도 안 돼요”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서울대생의 학습법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그렇다면 서울대에서 점수를 잘 받는 아이들만의 다른 학습법이 있을 수 있겠구나, 그것을 잘 보고 서울대 전체 학생들에게 보여주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연구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원래는 서울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보여주려고, 모든 인터뷰 영상들을 녹화하고 학생들의 수업하는 태도도 보고 집까지 따라가 체력관리까지 어떻게 하는지 찍고 정말 별걸 다 찍었어요.
그 몇백 시간이 되는 영상을 편집해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틀어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네 생각을 가지면 안 돼! 그냥 교수님이 하신 말 그대로 요약하지 말고 통째로 문장의 형태 그대로, 그리고 교수님의 용어, 관점, 논리, 흐름, 그 모든 것을 그대로 써야만 A+를 받을 수 있어”라고 얘기하는 것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틀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원래의 취지는 이 학생들의 공부법을 신입생들에게 알려주겠다는 목적으로 학교를 설득해서 어렵게 예산을 따냈는데, 최종적으로는 신입생들에게 틀어줄 수 없었던 예산 낭비를 한 프로젝트였던 것입니다. 교수님의 말씀 모든 걸 받아 적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에요. 수업시간에 앞자리에 앉는 게 중요하고요. 수업시간에 노트 필기를 다시 한번 더 정리하는, 세컨트 노트 테이킹이 중요해요. 그리고 재미없는 수업에도 집중을 잘하는 것이 중요해요. 한국에서는 수업이 재미없는 이유가 내가 몰라서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집에 가서 조금이라도 공부를 해서 오면 저 선생님의 수업을 이해할 수 있을 텐데하고 본인의 책임으로 돌려요. 그런데 미국은 그 선생님의 못가르친 책임으로 돌리더라고요. 내가 잘못이 아니라, 선생님의 잘못이라고 말이죠.
결국, 한국 교육에서 성공하려면 누가 얼마만큼의 정보들을 잘 수용하는가에 대한 정도에 달렸어요. 저는 이것이 엄청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책을 다 쓰고 나서 미안했던 것은 서울대학교에서 높은 성적을 받는 학생들이었어요. 왜냐면 그 학생들은 한마디도 빠짐없이 적어서 외워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얘기했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인터뷰할 수 있었던 이유가 4.0 이상의 성적을 연달아 두 학기를 받아야 했거든요. 그럼 그게 얼마나 자랑스럽겠어요. 그런데 저는 거기서부터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서울대 학생들조차도 자랑스러워했던 방법, 그리고 함께한 연구진들도 ‘이게 뭐가 문제지?’, ‘더 완벽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라고 하면서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그 지점, 그게 다 문제라고 생각해요. 미국 어느 학회에서 이 연구가 시리즈로 나와서 그 학회에서 연구를 발표하고 있는데, 한 한국인이 “당신이 여기 왜 있느냐?”고 질문을 하는 거예요. 저는 대답하지 못했어요. “이것은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대학의 문제이고 또 한국 전체의 문제인데,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영문저널로 영문학회에 와서 극소수의 학자들 앞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교육을 개선하는 데 무슨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까? 이때까지 대한민국에 교육부 장관이 없어서, 교육과 교수들이 없어서, 교육학 논문이 없어서 우리나라 교육이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뭐 하십니까. 당신은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왜 연구실적만 내고 있습니까?” 그런 말을 하셨어요. 그게 저한테는 뒤통수에 도끼를 맞은 느낌이었어요. 저한테는 학자로서 논문실적을 늘리는 게 저의 일이었거든요. 대중적인 책을 쓰는 것은 전혀 업적에 인정이 되지 않아요. 학자로서 저한테는 책을 쓰는 것은 시간 낭비였어요. 그런데 그때부터 전 제가 논문은 왜 쓰는 것인지, 교육에 아무 변화도 못 주는데 왜 쓰는 거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어려운 논문 첫 호의 일부와 취지와 이런 것을 가지고 20여 개 모르는 출판사에 보내봤어요. 정말 큰 출판사 같은 경우는 뒤에 문제 인식을 빼고 ‘서울대학교에서 A+를 받는 학습법’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면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이 사게 될 것이고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판매 부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제대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출판사를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던 중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를 출판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책 제목이 역설적이래요.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서울대서는 어떤 애들이 A+를 받는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이런 애들이 A+를 받는지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저런 애들이 받고 있고 이런 애들은 낙오자가 되어있더라. 그리고 이런 애들이 저런 애들처럼 더 변하려고 노력하더라. 그게 진짜 제목이었어요. 제가 학생들에게 “네가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교수님과 생각이 다르면 과제나 시험에 네 생각을 쓰니, 안 쓰니?”라고 물어봤어요. 학점 4.0이 넘는 46명의 학생 중에 41명이 안 쓴다고 대답했어요. 근데 상당수 아이들의 이유는 “교수님과 제 생각이 다르다면, 제 생각이 틀렸겠죠”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들은 자기들이 교수님과 다른 생각을 하면 틀린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반응을 보면서 ‘누가 애들을 이렇게 키워놓았지?’ 생각했어요. 이게 학생들의 잘못인가요? 학생들의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럼 그다음 타겟은 교수들이 그렇게 평가했기 때문이잖아요. 그럼 교수들의 잘못인가요? 교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요, 물론 제도적인 문제가 있어요. 교수들도 평가기준에 의해 움직여요. 그럼 그 제도들을 대학은 왜 내버려 두는가. 대학도 대학교육 평가 지표에 의해 움직여요. 그런데 대학 교육평가지표에 어떤 연구를 하고, 몇 개의 논문을 썼는지는 평가할 수 있게 되어있지만 어떠한 능력을 가르치는지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는 것이죠. 국내에 어느 대학도 홈페이지나 자료에 교육목표를 보면 창의적인 인간을 양성하고 글로벌 리더 키우는 등 좋은 말은 다 있어요. 그런데 목표와 달리 최대한 수용적인 애들을 길러요. 목표와 결과가 다르다는 것을 점검을 해주는 시스템이 전혀 없어요. 어느 대학도 말이죠. 목표가 이건데, 결과가 다르게 나왔으면 그 차이점을 평가하고 모니터링을 하는 시스템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는 곳이 국내 어디도 없어요. 그런데 제 주변에 한국 교육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 혹은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자식을 한국 공교육에서 그냥 두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제가 엄청난 부유층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교육학자들 중에 돈 교수님 생각과 다르면 틀렸다 없는 사람 많거든요. 근데 전세금을 빼서라도 자기 애들을 한국 교육에서 탈출 시켜요. 탈출을 할 수 없는 여건에 있는 대다수는 공교육을 받고 있는데, 탈출하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빠져나가는 쥐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것을 얘기해주지 않고 나간다면 그 쥐들도 표류하다가 다시 돌아갈 배가 없어져요. 저는 공도동망이라고 생각해요. 일시적으로 내 아이들 탈출시켜서 교육시켜도 대한민국 공교육이 무너지면 그냥 대한민국호가 침몰하는 거고 내 후손들이 돌아올 대한민국이 없는 것이라고 말이에요. 저는 극심한 경쟁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 경쟁을 뚫고 나온 학생들도 세계 무대에서 돋보일 수 없다는 것이죠. 그렇게 열심히 해서 서울대에 갔다고 해요. 근데 졸업하면 2명 중 1명이 놀아요. 물론 서울대 실업률 데이터를 보면 2명 중 1명이 논다고는 되어있지 않은데요, 하지만 제 제자들이 저한테 와서 하는 말이 있어요. “선생님, 2명 중에 1명이 놀아요.” 그럼 제가, “아니, 뉴스에 보도되는 건 다르던데?”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갈 곳이 없어서 학원강사가 되는 것, 과외하는 것, 그 모든 것을 취업이라 카운트 한대요. 그래서 실제로 자기가 가고 싶은 데에 가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애들은 2명 중에 1명이에요. 그렇게 공부해서 서울대 들어가서, 취직한 10대 대기업의 신입사원들의 평균학점이 3.74래요. 3.74면 전 범위를 A-를 받은 거예요. 굉장히 잘한 거예요. 그래서 애들이 대학 입학과 동시에 학점에서 미친 듯이 레이스를 해요. 옛날과 달라요. 옛날에는 학점이 안 좋아도 SKY 나오면 그 학벌로 취직하기 쉬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바로 교육의 내용이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이 궁금해서 그 사과가 떨어지는 원리를 연구하는 지식이 그 외에 수많은 지식들을 생성하기 때문에 생성적 지식이에요. 누구는 그 원리를 이용해서 롤러코스터를 만들어요. 그걸 응용적 지식이라고 해요. 누구는 그 롤러코스터 만드는 안이 있으면 대량생산을 해요. 그건 제조업에 필요한 제조적 지식이에요. 제조적 지식이 창의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생성적 지식과 응용적 지식과 다른 점은 에러가 없어야 해요. 똑같이 그대로 해야 해요. 이러한 지식이 우리나라가 이때까지 해왔던 것이에요. 그런 지식으로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했어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미 응용적 지식과 생성적 지식이 필요한 시대로 넘어오고 있는데 인재들을 제조적 지식을 가지고만 배출을 해요. 그러니까 사회의 변화와 전혀 맞지 않는 인재가 양성되고 있는 것이지요. 청년들은 취직이 안 돼서 난리를 치는데 기업에서는 사람이 없다고 난리예요.

교육은 여전히 여기 있는데 사회는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업에선 사람이 없고, 사람은 직업을 못 찾지요. 이게 계속 반복되는 것이에요. 이제는 검색 한 번으로 알 수 있는 지식들을 외울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저는 직업 체험 프로그램과 같은 것 별로 안 좋아해요. 지금 제 아들이 중학교 1학년이라서 자유학기제를 해요. 자유학기제를 하면서 현존하는 직업을 체험하는데요. 걔가 커서 10년, 20년 후에 없어질 직업을 지금 체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미래에는 있을 법한 직업을 발굴할 수 있게 근육을 키워주고, 사고를 키워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실제로 저희 아들 직업 체험하는 것을 보니, 중학교 1학년 아들 눈에 병원은 병원처럼 생겼고 법원은 법원처럼 생겼다고 합니다. 일반 사무실은요, 그저 책상하고 컴퓨터예요. 얘가 보고 온 것이 그저 책상하고 컴퓨터지 그 이외에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아요. 그게 직업 체험을 하고 온 거예요.

 

인디고: 선생님께선 책에서 교사들이 토론 수업과 같은 진행 방식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고 하셨는데요. 정말로 학교에서도 그렇게 느낍니다. 그런데 간혹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토론 수업을 진행하려고 해도, 이제는 학생들이 토론 수업이란 말만 나와도 한숨을 먼저 쉽니다. 왜 이런 걸 하느냐 하는 것이지요. 이미 이렇게 수능식 수용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는 학생들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혜정: 저는 개인한테 계란으로 바위를 치라는 얘기는 차마 못 하겠어요. 그래서 저는 죽어라 국가 전체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제 책의 판매량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영향력이 없진 않아요. 누가 보느냐 하면, 정치인들과 교육부 관계자들이 유심하게 보고 있더라고요. 다행히도 저는 그들이 타겟 독자였어요. 교육 시스템을 뜯어고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서 끊임없는 갈등은 어떻게 해야 내게 조금 더 유리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 시작합니다. 내가 좋은 대학을 하고, 학점을 잘 받으면 나는 대한민국 시스템 속에서 유리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과연 정말로 그럴까요? 서울대에서 학점 4.0 넘는 학생들을 보면서 연구 전에는 이런 학생들을 둔 부모님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워할지를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애들의 공부방법을 잘 배워서 우리 자식들한테도 잘 전수를 해줘야지, 이런 각오로 연구를 시작했지요. 하지만, 다 끝나고 나서 연구진들이 다 모여서 나라면 저런 학생을 뽑지 않겠다고 공통적으로 얘기했습니다. 학생들이 착하지 않은 게 아니에요. 다들 착하고 성실합니다. 제가 미안하지만, 학생들의 사생활까지 물었어요. 제가 느낀 것은 뜨겁지가 않다는 거였어요. 서울대에서 최고 학점을 받는 애들이 뜨거움이 없어요. 학생들에게 졸업하고 나서 무얼 하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전 직업을 물었던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하고 싶은 컨텐츠를 얘기한 사람이 없었어요. 모두가 대기업, 대학원, 고시. 이 세 개 이상으로 얘기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사랑을 말하는 데도 뜨겁지 않았어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성적만으로는 20년 전까진 먹혔지만, 지금은 안 먹혀요. 이제 서울대를 가든, 서울대에서 학점을 잘 받든,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을 하든, 이게 생명력이 얼마 안 가요. 그리고 대학 가면 20살인데요. 우리가 100살까지 살 거잖아요. 짧게 살아도 90살이에요. 나머지 70년 어떡할 거냐는 말이죠. 자기 콘텐츠, 자기 생각을 가져야 해요. 내 생각, 내가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알파고가 하지 못하는 것
인디고: 책에서 4차 산업혁명을 말씀하셨는데 기술이 그쪽으로 많이 발전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기술적 특이점이 와서 기계가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때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혜정: 기계가 사람을 능가하게 되면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알파고가 못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요. 그것은 알파고를 만드는 것이에요. 처음에 알파고를 만들 생각 누가 했어요? 인간이 했어요. 알파고가 미술 작품도 그럴듯하게, 작곡도 그럴듯하게 합니다. 그건 빅데이터로부터 평균적으로 괜찮은 것을 만들거든요. 그런데 그건 빅데이터가 있을 때 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꾸준히 암기해서 빅데이터를 누적하는 공부가 아니라, 알파고가 생각하지 못하는 다른 것을 해야 합니다. 남들이 다 똑같이 하는 건 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생각하는 근육을 기르라는 거예요. 그리고 창의적인 생각은요. 덤으로 오는 것이 아니에요. 기계공학에서 창의적인 사람이 다른 곳에서도 창의적이진 않아요. 창의적인 능력은 특정 능력에서만 창의적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서 창의적인 애가 다른 데서 창의적이진 않을 수 있어요. 그냥 이두박근을 계속 키웠는데 다른 근육이 생기진 않아요. 그러니까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훈련의 첫 번째는요, 다른 종류의 생각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생각의 과정을 보는 시험
인디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것은 인문학 공부라고 하는 타이틀로 공부를 좀 해오면서 이런 것들은 왜 공식과목이 될 수 없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책에서 소개한 국제 시험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나, IGCSE(International 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에서는 이미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도덕, 윤리학이라고 말하는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와 같은 시험을 치고 있는데요.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것이 시험을 통한 평가는 아니더라도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그런 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혜정: 완전 그거예요. 특히 TOK(Theory of Knowledge)라는 지식론은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안다는 것을 공부하는 무엇인가? 그런데 내가 접근 할 수 있는 지식은 누가 편집해가지고 나한테 집어넣고 있는가?” 그런 것을 파악하는 공부에요. 여러 가지를 다 보는 거죠. 말그대로 지식론이에요. 지식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문제가 “자연과학에는 프로그레스progress라는 게 있는데 아트art에는 프로그레스는 없다는 것에 대해 너는 얼마나 동의하는가?” 였어요. 저는 이런 질문을 우리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에요. 한국에서는 아주 짧은 시간에 이 질문을 다루지만 제대로 공부하려면 한 학생이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9개월 동안 공부합니다. 한번 쓰고 피드백을 받고, 다시 쓰고 피드백을 받고 하는 이걸 9개월을 해서 하나의 주제를 깊게 파고드는 거죠. 사실은 방학 3개월을 제외한 1년입니다. 학생은 이 주제를 탐구하는 동안 ‘프로그레스에 대한 의미는 앞으로 가는 것인가인데, 그렇다면 무엇이 앞일까? 진짜 앞일까? 예를 들어서 생명의 신비를 알려고 들어갔는데 다시 나오면 그러면 이건 앞으로 간 것일까? 아니면 뒤로 간 것일까? 아니면 옆으로 간 것일까? 그러면 앞인지 뒤인지 분명하지 않으면 리그레스라고 봐야 되나?’ 이런 질문을 밥 먹으면서 1년 동안 탐구하는 것이죠. 계속 얘기합니다. 그러면 남편하고 저는 숙연해지곤 하는데요. 질문이 되게 깊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말했던 질문, 토론, 사고, 과정, 이 프로세스를 약간 의무적으로 커리큘럼에 포함한 게 바로 이런 국제 시험이에요.
이과 문과 상관없이 이 시험이 들어가요. 물론 문과는 수학을 이과는 영어를 높은 클래스를 안 들어도 되겠지만, 지식론은 무조건 들어야 해요. 그래서 제가 지식론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문과 애들은 이런 사유에 강하고, 이과 애들은 조금 약하지 않을까요? 글을 쓰는 실력도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요?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글 쓰는 실력을 보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과정을 보는 것이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생각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1년 내내 이걸 가지고 얘기합니다. 자기 주제를 얘기하고, 자기의 진전사항을 얘기하면 또 다른 애들이 토론하고, 서로 같이 말하고, 이런 생활을 1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주제를 시험 9개월 전에 주고, 이후 시험을 치는 거죠. 그러니까 시험 문제 딱 주고 논술처럼 막 푸는 게 아니에요. 물론 몇몇 교과에는 그런 것도 있죠. 그런데 교과 시험에서도 뒤집어쓴 것이 있지만 내부적으로 며칠, 몇 달에 걸쳐서 쓰는 것도 있어요.

 

진정한 배움을 위하여
인디고: 쿠바에 간 적이 있는데 거리 한복판에 『레 미제라블』을 쓴 작가 빅토르 위고의 하우스가 있더라고요. 이 사람이 여기 온 적 있었나? 저는 궁금했어요. 겨우 겨우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와서, 여기 왜 빅토르 위고 하우스가 있냐고 물었죠. 그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쿠바 혁명 당시에 쿠바에 있는 모든 가정에서 『레 미제라블』을 읽었다고 해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선생님은 높은 연구 실적으로 이 책을 내셨지만 이 책이 사실 한국 공교육에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레 미제라블』이 되었으면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책에서 변화를 위한 해결책으로 시험 제도의 개혁을 제안하셨는데요. 그런데 문제는 수능과 내신을 이혜정 선생님이 말씀하신 새로운 시험 문제로 출제한다고 할 때 그걸 평가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교사는 어떻게 양성할 수 있을까요?

 

이혜정: 제가 진짜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IB에 한국어 시험이 있거든요. 한국어 시험의 출제자가 한국인 일 거잖아요. 어떻게 이런 문제를 냈지? 너무 궁금해서 찾아가 봤어요. 그런데 외국어 강의는 다 똑같아요. 똑같은 사고력을 문학적 이해력을, 글에 대한 비판적 사고력을 평가하고 기르는 것은 똑같은데 오로지 이게 영문학이냐 국문학이냐 불문학이냐 소재만 차이가 있어요. 모든 과목이 언어와 소재 차이만 있을 뿐 가르치고, 평가하고 기르는 능력이 똑같아요.
 지금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반값 등록금, 저소득층을 위한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무슨 종류의 능력을 기르는지와 무관하게 싸기만 하면 된다, 공평하기만 하면 된다 하는 생각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은 어떤 능력을 기르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흔히 말하는 공평은 발이 250인 아이나 200인 아이에게 모두 230을 신겨야 하는 그런 논리예요. 저는 그것을 정의라고 보지 않아요. 그런데 이런 얘기는 선거에서 받을 표를 생각하면서 밀려요. 저는 안타깝습니다. 이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정책이 아니고, 좌우의 얘기가 아니고, 진보 보수의 얘기가 아니고 전교조와 교총의 얘기가 아니에요. 우리나라 전체의 얘기에요. 이거는 우리나라 교육은 저소득층만 괴로운 게 아니에요. 고소득층도 괴로워요. 못하는 학생들만 괴로운 게 아니에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도 괴롭습니다.
초・중・고 선생님들은 그렇다 쳐도 서울대 교수들은 미국 박사예요. 미국에서 공부했잖아요. ‘근데 왜 이래?’하는 비판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 속에서는 그렇게 해도 되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첫째는 가르치는데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바로 내가 알고 있는 걸 쏟아놓고 떠나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깜짝 놀란 게 교수들이 질문을 받았는데 강의실에서 답 못할까 봐 두려워해요. 여전히 교수는 모든 정답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편견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거죠. 또 하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학생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거의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교수가 학생들이 창의적인 걸 싫어해요. 제가 교수님께 “그런데 그런 정보는 검색하면 나오지 않나요? 그런데 그걸 꼭 다 외우고 시험 봐야 해요?”하고 하면 교수들은 “그게 기본이잖아요. 그걸 모르면 어떻게 해요?” 하는 프레임에서 못 벗어나요.
새로운 교육을 하려면 뭔가를 버려야 해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교과서를 외우는 것을 못 버려요. 국가에서 수능을 바꾸면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을 바꿔서 어떻게든 높은 점수를 받으려 하잖아요. 약간 강제적인 행위가 바꿀 수 있어요. 교육이란 말, 영어로는 ‘educate, education’에는 모두 주어가 교사예요. 가르친다는 teach도 주어가 교사예요. 그런데 배운다learn는 주어가 학생이에요. 전 여러분들이 진짜 배움을 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들이 주체가 됐으면 좋겠어요. 누가 시키는 거, 벗어날 수 없는 거 아는데, 지금 당장 벗어날 수 없다면 일부 순응하고 타협하세요. 그러나 생각할 시간을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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